이 영화 왜 좋은가
감독 : 다르덴 형제
장르 : 성장, 드라
별점 : ★ 5.0
한줄평 : 절망의 페달질이 희망의 페달질이 되기까지
다르덴 형제는 언제나 소외된 이들의 삶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비춘다. 그리고 그들을 연민의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고, 존엄한 인간으로 존중한다. <자전거 탄 소년>역시 외롭고 버려진 소년을 응원하는 영화이다.
영화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소년 시릴로 시작한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찾는 이야기가 중심일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더 나아가 버림받은 이후 소년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이야기한다.
시릴은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를 찾아내 사랑을 갈구한다 .부모를 사랑하는 데 이유를 찾지 않는 시릴의 순수함은 관객의 마음을 아프게 찌른다.
아버지는 별다른 설명 없이 아들을 거부하고, 소년은 아무 잘못 없이 버려진다. 그런 시릴을 품어주는 사만다의 친절도 이유가 없다. 그녀가 왜 시릴을 품어주었는지 영화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아마 그녀 또한 버려진 경험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유 없는 버려짐을 이유 없는 사랑으로 덮어주는 것,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위로이다.
영화에서 시릴은 쉼없이 움직인다. 멈추는 순간 마주하게 될 '버려졌다는 진실'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거친 페달 소리는 세상에 내지르는 소리 없는 비명과 같다. 빼앗긴 자전거를 되찾으려는 것 또한 자신의 정체성과 아버지와의 연결 고리를 회복하려는 투쟁이다.
영화에서 시릴의 감정은 대사가 아닌 행동으로 폭발한다. 감독은 시릴의 불안, 폭력성, 충동까지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그 역동적인 움직임을 통해 소년이 가진 무한한 생명력과 극복의 가능성을 바라본다.
이 영화의 인물 설계는 매우 정교하다. 아이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보다, 곁에 있는 어른에 영향 받는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어른들의 군상 :
자식을 유기하는 무책임한 아버지
아무 조건 없이 소년의 손을 잡아준 사만다
자식의 잘못을 무조건 덮는 방조하는 아버지
소년들의 대비:
버림받았으나 잡아줄 손이 없어 강도가 된 소년
버림받았지만 사만다라는 빛을 만나 세상을 배우는 시릴
부족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왜곡된 가치관을 갖게 된 소년
시릴은 방황하며 나쁜 형과 어울려 강도짓을 저른다. 돈 때문이 아니라, 그저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형'이라는 관계가 간절했기 때문이다. 감독은 소년의 잘못을 단순히 타이르거나 가혹하게 처벌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치르게 함으로써 세상을 배우게 한다. 여기서 감독의 캐릭터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드러난다. 잘못을 덮어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책임을 지고 다시 일어서게 돕는 것이 진정한 어른의 역할임을 사만다와 감독은 몸소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시릴은 보복을 당해 나무에서 떨진다. 잠시 죽은 듯 누워있던 소년은 기적처럼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묵묵히 자전거를 타고 사만다에게로 향한다.
이제 시릴의 자전거는 아버지를 찾기 위한 방황의 도구가 아니라, 사만다와 약속한 저녁 식사, 즉 자신을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구원의 바퀴가 된다. 시릴은 이제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 새로운 삶을 향해 페달을 밟을 뿐이다.
영화는 우리에게 말한다. 아이들이 나무에서 떨어졌을 때, 그들이 다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대단한 사회 시스템이 아니라 "같이 저녁 먹자"고 말해주는 단 한 사람의 온기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