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림축구, 2002

이 영화 왜 좋은가

by 나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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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축구, 2002

감독 : 주성치

장르 : 코미디, 스포츠, 액션

별점 : ★ 4.5

한줄평 : 실패한 인생들이 소림 무술로 꿈을 차올리는, 웃음과 희망의 블록버스터.



소림축구 — 결정적 장면 셋

주성치의 왕팬으로서 소림축구를 다시 보았다. 역시나 명작이다. 이 영화가 단순한 코미디를 넘어선 걸작인 이유는, 황당한 웃음 속에 인간에 대한 진심 어린 시선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 시선이 가장 선명하게 빛나는 결정적 장면 셋을 소개하며 찬사를 보내본다.


1. 만두 가게 앞 플래시몹 — 약자를 향한 따뜻한 시선

아성(주성치)은 사부를 잃고 거지가 된 소림 무공의 계승자다. 쓰레기를 주우며 근근이 살아가면서도, 소림무술이 다시 빛날 날을 믿으며 매일 몸을 단련한다. 그가 태극권으로 만두를 빚는 아매를 만나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정수다. 볼품없는 외모의 손님이 벌떡 일어나 형편없는 노래로 화답하더니, 만두 가게 앞 소시민들이 하나둘씩 눈을 빛내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진지한 플래시몹이 펼쳐진다.

황당하고 골때리는 이 장면이 명장면인 까닭은, 주성치가 바라보는 인간에 대한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안다. 소외된 약자들도, 변두리의 소시민들도, 겉으로는 바보같아 보이는 사람들도 저마다 꿈과 열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생계를 위해, 가족을 위해, 일상을 위해 그것을 꾹꾹 눌러두며 살아갈 뿐이라는 것을. 가게 주인의 불호령 한 마디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리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웃기면서도 어딘가 뭉클하다. 주성치는 그 어떤 인물도 비웃지 않는다. 재능이 없어도, 한물 갔어도, 미숙해도 한 명 한 명 모두가 소중한 존재임을 그는 믿는다.


2. 나이트 소림승려 무대 — 웃음 속의 슬픔

한때 철두공(무쇠 머리) 일인자였던 큰 형님은 지금 나이트클럽 매니저로, 악랄한 사장에게 매일 맥주병으로 머리를 얻어맞는 신세다. 소림무술은 끝났다며 아성의 부탁을 번번이 거절하던 그가 처음으로 웃는 장면이 바로 이 무대다. 소림승려 복장을 한 두 사람이 캘리포니아 드리밍에 맞춰 진지하게 노래한다. '소림쿵푸는 대단하다네~' '난 무쇠다리~' '넌 철두공~' 자기들도 웃겨서 킥킥댄다. 아성이 능청스럽게 건달들에게 윙크를 날리지만 돌아오는 건 맥주병이다.

이 장면은 웃기다. 그러나 동시에 너무나 씁쓸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소림무술은 동네 건달들의 술자리 흥을 돋우는 데 소비된다. 권위를 잃고 매일 맥주병으로 머리를 까이는 가장의 처절함이 코미디의 껍데기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주성치 영화의 진수는 바로 이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봐야만 웃을 수 있다. 생각을 하고 보면 눈물 짓기 시작한다. 웃음 속에서 슬픔을 포착하고, 슬픔 속에서 웃음을 꺼내는 것. 그리고 이 건달들이 결국 아성, 큰 형님과 함께 축구팀이 되어 경기에 출전한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한때 적이었던 이들마저 품어내는 관대함, 함께라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다.


3. 세로로 선 동전 — 작은 희망을 밀고 나가는 것

둘째 형은 형제 중 유일하게 속세에 적응해 금융회사 직원이 되었지만, 밥 먹을 여유조차 없이 늘 날이 서 있다. 아성이 소림 축구팀을 꾸리자고 하자 그는 단칼에 거절한다. 성공 확률은 0%, 동전의 앞도 뒤도 아닌 '옆면'이 나올 확률이라며 동전을 던진다. 아성이 떠난 뒤, 둘째 형이 바닥을 보니 던진 동전이 아스팔트 틈새에 세로로 서 있다.

이 단 하나의 작은 연출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담는다. 불가능해 보여도 가능성은 존재한다. 포기하지 않으면 기적은 일어난다. 거지였던 아성은 결국 축구 스타가 되고, 한물 갔던 소림쿵푸는 세상을 바꾼다. 소림축구가 명작인 이유는 바닥에서 시작해 위로 올라가는 이 여정 안에 웃음과 슬픔, 희망과 절망이 모두 촘촘하게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 여정의 출발점에 세로로 선 동전 하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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