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레터, 1955

이 영화 왜 좋은가

by 나썽


러브레터, 1995

감독 : 이와이 슌지

장르 : 성장, 로맨스, 드라마

별점 : 4.0

한줄평 : 겉은 차갑지만 속은 따뜻한. 차가운 계절과 따뜻한 기억.




겨울이면 생각나는 영화 러브레터


《러브레터》는 겨울 그 자체다. 차가운 공기, 하얀 설경이 주 배경이다. 영화는 죽음을 다루지만 죽음에 짓눌리지 않는다. 남은 기억, 남은 사람들의 따뜻함을 보여준다. 그 온기로 감정을 천천히 녹아내리게 한다. 그래서 차갑지 않고 오히려 포근하다.




줄거리 : 과거로 현재를 치유한다


히로코는 죽은 남자친구의 졸업앨범을 보고 옛 주소로 편지를 보낸다. 그곳에 누가 살든 상관없다. 그를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답장이 온다. 남자친구와 이름이 같은 여자 이츠키로부터.


서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히로코는 남자친구가 학창 시절 여자 이츠키를 좋아했지만 이루어지지 못했고, 자신의 외모가 그녀와 똑닮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되자 히로코는 비로소 남자친구에게서 자유로워 진다.


히로코는 그를 완전히 소유할 수 없다는 것, 그에게도 과거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애도는 잊는 게 아니다.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다. 이상화를 벗기고 실제를 보는 것. 그 인간을 사랑했던 자신을 인정하는 것. 남자친구를 마음속에서 보내며 히로코는 마지막 인사를 한다. “그 곳에서 잘 지내고 계십니까?”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차가움이 따뜻해지는 온도의 시각화


영화에서 히로코는 세 가지 온도에 둘러싸여 있다. 차가운 죽음, 따뜻한 기억, 뜨거운 가능성. 남자친구 후지이는 겨울 산에서 죽었고 히로코는 그 차가움 속에 갇혀 있다. 히로코를 짝사랑하는 아키바는 뜨거운 불을 다루는 일을 하며 히로코의 곁을 묵묵히 지킨다. 후지이들의 과거는 따뜻하다. 학창 시절 도서관 창가로 쏟아지는 노란 빛, 미숙한 학생들의 애정표현.


그녀는 그 사이에서 천천히 녹는다. 치유는 급작스럽게 오지 않는다. 봄이 오듯, 서서히 온다. 흥미로운 건 영화가 히로코에게 "새로운 사랑"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키바는 가능성으로 남는다. 히로코가 선택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중요한 건 그녀가 다시 무언가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차가움에서 벗어나 다른 온도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겨울 일본 감성의 진수


눈 덮인 거리, 오래된 목조 건물, 낮은 하늘. 카메라는 요란하지 않고 여백을 담는다. 인물들의 감정보다 인물이 서 있는 공간과 그들을 둘러싼 공기를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흔히 말하는 ‘일본 감성’을 마주한다. 과장되지 않는 감정, 말하지 않는 것의 힘, 그리고 여백의 미학이다.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고 그 자리에 두는 태도. 설명 대신 침묵을 선택하는 방식이 이 영화의 정서다.


편지라는 매개 역시 상징적이다. 전화도 문자도 아닌, 손으로 쓴 편지. 느리고 우회적이며 불확실하다. 하지만 바로 그 느림 속에서 감정은 깊어진다.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 편지를 읽고 다시 읽는 시간. 이 영화는 그 시간의 무게를 존중한다. 빠르게 소모되는 감정이 아니라, 천천히 스며드는 감정. 《러브레터》는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는다. 눈처럼 천천히, 조용히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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