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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L Jul 09. 2018

의사인 듯 의사 아닌 의사 같은 비의사들

 의료현장에는 의사 외에도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약사, 치위생사, 간호조무사, 조산사, 임상심리사, 응급구조사, PA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활약하고 있다.


개원가에서는 코디네이터, 마케터, 통역사, 제약회사 영업사원, 영양사 등 그 수가 더 많아지며

의사 한 명에 5명 이상이 함께 일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한국 의료계에서는 이러한 전문가들을 파라메딕이라고 칭한다.

파라메딕은  para(주변) 그리고 medicine(의료)의 합성어로

의료계 종사자 중 의사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일컫는 은어로 쓰인다.

(원칙적으로는 응급구조사만을 칭하는 단어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이들이 의사가 아니라고 절대 실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그 분야만큼은 의사들과 다를 바 없다.

거의 반은 의사라는 뜻으로 semi doctor(반의사, 준의사)라고도 할 수 있다.


흔히들 한 번쯤은 감기를 기가 막히게 낫게 진료하는 동네 약국이라던지

성형외과 의사보다 보톡스, 필러 미용시술을 잘하는 야매 시술자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심지어, 꽤나 복잡하고 세밀한 과정이 필요한 외과적 수술을 하는 비의사도 적발이 되었었다.


 지난 2013 년, 경남 김해의 한 종합병원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로, 

의사 대신 의료기기 판매직원과 간호조무사가 1,000여 차례에 걸쳐 불법으로

 맹장, 무릎 관절, 허리 디스크 수술 등을 시행하였고

또 2014년에는 남자 간호조무사에게 관절염 환자 등을 상대로 무릎 절개,

수술부위 봉합 등의 수술을 하여 적발되기도 했다.

 

의료기기 납품업체 직원마저 고난도 수술을 할 수 있다면

 왜 굳이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야 하는 것일까?





 의사들은 교육을 받을 때 필히 인간이 세포에 불과할 때인 발생학부터 시작하여

생리학, 병리학, 조직학, 분자생물학, 약리학, 해부학의 기초 의학을 비롯하여

임상인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정신과, 치과, 법의학까지 의학에 관련한 전반적인 모든 것을 6년에

걸쳐 책을 통해 배우고 5-7년 동안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통해 더 경험 있는

의사 지도하에  직접 환자를 통해 수련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한 두 전문분야 (예, 소화기내과, 소아 류머티즘 질환)를

평생 연구 수련하게 된다.


물론,  위의 기사에 나온 800회 이상의 정형외과 수술을 한 의료기기 납품업체 직원처럼 아무리

고난도의 수술이라도 손재주만 조금 있다면 한 가지 의료행위를 계속 반복하다 보면

누구든지 잘하게 될 수 있다.


한 가지 차이점은, 위의 기나긴 수련 동안


 경험 있는 의사는 항상 예외적인 돌발 상황이 생길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처할 수 있다.

 

 이런 돌발 상황을 많이 겪은 경험이 많은 의사들은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지 모른다"는 말을 잘 한다.

 경험 없는 병아리 의사 일 때 비전문 분야의 질병을 겁도 없이 치료를 하고 성공했던

 아슬아슬했던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안도한다.







이번 이야기는 의사보다 더 나은 비의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레지던트 1년 차, 아직은 빳빳하던 가운을 입고 병실을 누비던 병아리 의사일 때의 일이다.

병실 주치의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가 주치의로서 책임감만 무거웠고

상태가 안 좋은 환자가 있으면 어찌해야 할지 발만 동동 굴렸다.  


인턴 때부터 자주 얼굴을 보아 정이 들은 노인 환자가 있었다.

갑작스레 경과가 나빠져서 오늘 밤 고비도 못 넘길 것 같아

 병동 스테이션에서 관련 문헌을 검토하고 있었다.  

참고문헌이나 유사사례도 없고 윗 연차 선배들도 모르겠다고 했다.

해결방법을 못 찾으면 환자를 잃고 과장님은 해외학회에 가셔서 더 물어볼 데도 없는 난처한 상황이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이나 이메일이 없었다.)


그대로 돌아가시면  보호자 할머니가 슬퍼하실 모습을 생각하니 막막했다.

 “내일 저녁 회진 전까지 무슨 수를 쓰더라도 호전시켜 놓아야 한다.” 마음을 다잡지만

치료방향에 묘수가 안 떠올라 고민하다가 회진 준비 중이던 수간호사님께 도움을 청했다.



“저, 000호실 환자 분 그대로 두면 오늘 못 넘길 거 같아요. 이런 case 보신 경험 있나요?

경험이 저보다 많으시잖아요.  저보다 경험 많으시니 직접 치료한다면

어떻게 치료할지 조언이 큰 도움이 될 텐데요!”



수간호사님이 대답했다.

  “ 저는 판단하는 훈련을 받지 않아, 제가 치료하면 환자를 많이 죽일 겁니다. 저보다 경험이 적어도 잠시라도 훈련받은 선생님이 치료하는 게 환자에게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조언조차 거절당했지만 일리 있는 말이었다.



 오후 내내 고민하고 있었는데, 퇴근하시던 그 수간호사님이 지나가며 살짝 귀띔을 한다.


 " XXX선생님이 7년 선배죠? 전에 보니 그분은 이럴 때 ㅇㅇㅇ을 쓰던데요. 참고하세요! “  

묘책이다. 순간 머리가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수간호사님은 경력 30년의 간호학 박사 및 교수님에 심전도 판독도 능숙하고,

 심장병동에 주로 근무 한터라 의학지식이 대단하신 분이셨다.

게다가 아무리 초짜 의사라도 영역을 존중해 주시는 존경스러운 분이셨다.

그 후로도 그 수간호사님에게 종종 여러 귀띔을 듣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분은 나 같은 초짜 의사를 볼 때 어떤 마음이 드셨을까? 

그리고 왜 경력 1년에 불과한 내가 혼자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신 걸까?


답은 하나였다.

  


의술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단 한 번의 판단 미스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전문가들 모두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고 신뢰해줄 때 최상의 의술이 나올 수 있다.




수간호사님은 초보 의사이던 내가 그걸 혼자 터득할 수 있도록 인내하신 것일 테다.







#애경내과 #신도림역 내과 #구로동 내과

www.akclinic.imweb.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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