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해석의 화살표

창작 SF 단편 연재소설 《플랑크의 미아》

by 하선

"저 창 밖에 펼쳐진 수억 개의 천체들. 저건 더 이상 보고 즐길 멋진 풍경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가 하루라도 빨리 해결해야 할 골칫덩이들일 뿐이지요."


정적을 깨는 부영의 차가운 말에, 정윤의 마음은 삽시간에 땅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부영의 하루는 늘 아침 해가 뜨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멈추지 않고 우주를 가로질러가는 함선 생활이었다. 이런 곳에서 엄밀히 말하면 '해가 뜬다'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기준에서 '해가 뜨기 전'이라는 표현은 '알람이 울리기 전'이라는 의미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눈을 뜨고 싶은 실제 시간에 맞추어 알람을 앞당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 기상은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 이루어졌을 때에만 의미가 있었다. 수억 킬로 멀리 떨어진 태양의 우주적인 움직임, 또는 하찮은 알람 소리에 의존하고 싶지는 않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화성과 금성의 최신 뉴스를 확인한 후 지구 기업들의 주식 차트를 살펴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 후에는 목성과 4대 위성의 능동 연계 상황을 간단히 체크한 뒤 아침 운동을 위해 방을 나서는 것이 수 년째 이어져온 그녀의 생활 루틴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 뭐, 괜찮아 보이네."


수 주간 온통 까만 우주만을 담고 있던 창문에, 오늘은 환하게 빛나는 목성이 들어와 있었다. 목성 동향 레포트를 펼쳐볼 필요도 없었다. 잠시간 창 밖을 지켜보던 부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짧은 순간 동안 그곳에선 어떤 그리움, 지겨움, 혐오, 안쓰러움 같은 감정들이 빠른 속도로 흘러 지나갔다. 그러나 잠시 뒤, 부영은 언제 그랬냐는 듯 미련 없이 뒤돌아 방을 나섰다. 방문을 나서는 그녀의 등 뒤로 블라인드가 탁 하고 드리워졌다. 그렇게 남겨진 창문의 모양새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은 회색 벽과 다름없었다.


오늘은 몇 년 만에 맡게 된 신입사원 교육 강의일이었다. 부영에게도 이런 신입사원 교육이 설레던 때가 분명 있었다. 아마도 20년도 더 지난 과거에, 그녀가 신입사원의 입장으로 함선에 올랐던 시절에는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먼 이동 거리 탓에 주기적인 신입 인원 충원 자체가 불가능한 이 테라포밍 업계의 특성 상, 그녀는 너무나 오래 '신입사원' 이어야만 했다. 만년 막내로 지내던 그녀의 인내심은 3년 차를 넘겼을 때쯤 바닥이 났다. 이후 목성 사업이 확장되면서 처음으로 중도 보충 인원이 파견되었을 때, 그녀가 느꼈던 기쁨은 무거운 진흙과도 같은 피로함에 깔려 저 아래 가라앉아 있었다.


부영은 그 시절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했다.

다른 행성 개척은 어디 쉬웠겠냐만은, 목성은 인류 역사 상 처음으로 맞이한 가스 행성이었다. 발을 디딜 땅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던 만큼, 결코 만만한 정착 대상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모르고 출발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준비해 두었던 수십 가지 돌파 계획들이 수년에 걸쳐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목성 사업단 수뇌부는 적잖이 당황했다. 두뇌가 판단력을 잃자 팔과 다리부터 시작하여 손과 발, 온몸이 하나둘씩 가동을 멈추었다. 그 혼돈 속에서, 누군가는 일이 없다며 즐거워했고, 또 누군가는 평소 눈여겨보았던 다른 행성의 사무직 인터뷰를 준비했다.

목성에 진심을 쏟아부었던 이들에게 남은 건 결국 긴 공백뿐이었다. 그들은 그저 공기와 중력뿐인, 그 추상적인 행성에 서서히 압도되어 갔다. 5개월에 가까운 시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건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고작 이렇게 손에 잡히지도 않는 허허벌판이었다.


그 때 최하단에 방치된 막내 사원의 무력감을, 부영은 오래도록 잊을 수 없었다.

목성 사업단은 화성과 금성 사업에서의 시행착오를 이미 거쳐온 경력자들, 그리고 공인된 능력과 십수 년 경력을 갖춘 전문가들로 가득했다. 그들 한 명 한 명은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존경을 받아 마땅한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이 머나먼 우주 건너편까지 와서 하고 있는 일이라곤 발을 동동 구르며 본부의 철수 명령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부영을 가장 괴롭혔던 건, 그런 그들의 모습이 지금 그녀의 눈에 얼마나 우습게 보이든, 앞으로 10년 혹은 20년 뒤 부영에게 찾아올 가장 희망적인 버전의 미래라는 사실이었다. 그마저도 만약 그녀의 노력과 운이 부족하다면, 닿을 수조차 없는 곳이었다.

그 현실을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았다. 존경의 감정은 서서히 불신과 경멸로 변해 갔다.


"하지만 지금의 여러분은 이미 이 이야기의 끝을 알고 있죠. 본부는 결국 철수 명령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목성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나름의 방식을 찾아 개발에 성공했죠.

그 돌파구가 바로 이 '능동 연계 시스템'이었습니다. 거대한 땅 조각을 만들어 마치 갈라진 달걀 껍데기처럼 목성 주변에 덮고, 그 대륙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능동적으로 실시간 제어하는 거죠. 목성 주변을 맴돌고 있는 위성들에 기지를 건설하고, 그 기반을 활용해서요."


연단에 선 부영이 강연장을 둘러보았다. 절반 정도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 외 나머지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사실은 부영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존재 사실 이외에 그 어떤 정보도 공개되지 않은 TR1612의 테라포밍 사업에, 목성의 운영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면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부영이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는 하나의 행성을 테라포밍 한다는 행위에 대한 무게감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행성이든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잔뜩 일어나기 마련이고, 우리는 어떻게든 그것을 해결해 나가야 하지요. 그것이 이 사업에 몸담기로 마음먹은 이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우리 회사의 기본이 되는 기업문화이기도 하고요.

이제 설명은 됐고, 질문 위주로 받겠습니다. 자유롭게 손 들어주세요."


몇몇의 손이 연달아 오르락내리락했다. 사소한 적응 노하우부터 다소 무게감 있는 커리어 고민까지. 부영은 그 질문들에 단박에 대답하기도, 잠시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질문에 친절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대체로 냉정하고 까칠한 쪽에 가까웠다.


"신입사원들에게 기대되는 성과가 어떤 건지 궁금합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과거 제가 신입사원일 적 들었던 조언을 그대로 돌려 드리죠.

회사는 신입사원들에게 아무런 업무적 성과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의 전공 분야는 그저 다른 이들보다 아주 조금 더 공부해 본 내용일 뿐, 현업과는 전혀 다를 겁니다. 그냥 백지라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경력자들을 지켜보세요. 그리고 눈치껏 도울 일을 찾아내세요. 아직 도저히 할 수 없는 일 투성이라면, 선배들과 최대한 친해지세요. 누군가 먼저 다가와 나에게 일하는 방법을 알려주길 기다리는 건, 마치 우주에 조난당한 나를 누군가 먼저 찾아내 구조해 주길 바라는 헛된 희망과 같습니다.

신입사원들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성과는, 일하는 방법을 직접 알아내는 거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팀 선배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도 제대로 일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요?"


"이유를 먼저 살펴봐야죠. 두 가지 경우가 있겠네요. 첫째, 혼자서는 기본적인 무중력 중심계조차 작동시키지 못하는 막내에게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칠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쁘다. 혹은 둘째, 내가 시간을 내어 일을 가르쳐주고 싶을 만큼 그 막내가 사랑스럽게 느껴지질 않는다.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겠죠. 하지만 어떤 경우이든 해결책은 딱 하나입니다.

더 웃으세요. 웃으며 한 번 더 다가가세요.

일하는 방법도 모르는 이들에게 회사가 왜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주는 걸까요? 일을 안 해도 괜찮을 정도로 여러분들이 특별해서? 아니죠. 일하는 법을 배우기 전까지 받는 월급은,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여러분의 웃는 얼굴값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에게 두 번 세 번 웃는 건 어렵죠. 마음에 상처도 받고, 자존심도 상하고요. 하지만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해서라도 도움을 이끌어내는 데에 성공했다면 그보다 더 쉬운 방법도 없습니다.

높은 업무 강도에 지친 팀일수록 분위기는 아주 딱딱하게 굳어있을 겁니다. 그 틈 속에서 일을 배우는 건 전쟁 같은 일이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풀어내고 내가 배울 걸 배워내는 것. 그 능력이 여러분들의 미래 성장 곡선을 가파르게 올려 줄 겁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야 합니다."


부영의 차가운 조언에 강연장은 다시 한번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우후죽순 몰려오던 질문들도 잦아든 시점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슬슬 강연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부영이 다시 입을 뗐다.


"반대로 제가 여러분에게 질문 하나 드리며 오늘 강연 마치겠습니다."


여전히 무거운 커튼이 드리워져 있어 숨이 턱 막힐 만큼 어둑한 공간이었다. 그 공기 사이엔 질문을 받던 시간이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표정도 있었고, 이제 막 집중력이 풀리기 시작한 눈들도 보였다. 하지만 부영의 목소리는 그 분위기를 다시 한번 붙잡아 매듯 낮게 울렸다. 600개가 넘는 눈들이 부영에게 향한 채, 그녀가 뱉을 다음 문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뒤이어 해야 할 말, 혹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고르는 듯 긴 정적을 이어가던 부영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천천히 말을 다시 이어가기 시작했다.


“여러분이 목적 행성에 도착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수년을 준비해서요. 꼭 본인이 신입사원이라고 상상할 필요도 없습니다. 각자 최소 십 년 가까이 한 분야만 파온 전문가들이 되었다고 치죠. 어떤 사람은 중력 안정화만 연구했고, 어떤 사람은 대기 분석만 했고, 또 어떤 사람은 거주 모듈 설계만 했습니다. 그렇게 수백 명이 각자의 전문성을 들고 이 먼 우주까지 왔습니다.”


부영의 시선이 강연장을 천천히 훑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우리가 준비해 온 모든 기술이 전부 쓸모없어졌다면. 그런 상황이 왔다면,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질문의 의도를 가늠하려는 표정들이었다.

그 때, 부영이 닫아둔 커튼을 확 걷어내었다. 순식간에 목성이 내뿜는 광채로 가득 찬 강연장은 눈 부시게 밝아졌다. 목성의 인공 지표면 위로 거대한 공업 시설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보이지 않는 항로를 따라 셀 수 없이 많은 화물수송선들이 목성에서 4대 위성들로 이동하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거대한 공업 행성의 모습이었다.

강연장의 사원들이 넋을 잃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찰나, 부영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목성 얘기입니다.”


강연장 여기저기에서 웅성웅성, 작은 움직임이 일어났다.


“'새로운 행성으로 인류의 영토를 확장한다'. 우리 회사의 최고 지향 가치입니다. 아마도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라면 이미 모두 알고 있겠죠.

이에 알맞게, 초기 목성의 목표 지점은 ‘안정적인 거주지’였습니다. 화성과 금성이 그러했듯이요. 아시다시피 우리 회사는 앞선 두 행성의 테라포밍 경쟁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단독으로 따낸 첫 사업인 목성 역시 우리가 일구어낸 방식들을 그대로 활용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죠.

그리고 지금껏 설명한 능동 연계 시스템, 즉, 발을 내딛을 수 있는 지표면을 만드는 업무는 목성을 인류의 거주 행성으로 만들기 위해 처음으로 고안된 기술입니다. 우리는 예정된 타임라인대로 첫 정착민들을 유입시켜야 했습니다. 그게 목성 사업의 목표라고 모두가 믿고 있었죠. 그래서 거주 모듈을 설계한 팀이 있었고, 중력 보정 기술을 준비한 팀이 있었고, 대기층 안정화를 연구한 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본부에서 지시가 내려옵니다.”


부영의 목소리가 아주 조금 낮아졌다.


“다른 모든 업무를 잠정 중단하고, 목성 본토의 고위험 대기층 에너지 탐사를 즉시 시작하라는 명령이었죠."


강연장에 앉아 있던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부영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여러분은 아마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거주 행성 프로젝트가 갑자기 에너지 공업 사업으로 바뀐 건가? 그럼 지금까지 준비해 온 건 전부 쓸모없어진 거야? 그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강연장은 다시 조용해졌다.


“당시 현장의 반응도 똑같았습니다. 기존에 집중하고 있던 일들은 에너지 탐사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 업무였습니다. 전면적인 인력 재배치가 필요했고, 어떻게 머리를 굴려봐도 새로운 목표에 전혀 기여할 수 없는 분야들이 넘쳐났죠.

중력기술팀 같은 곳은 사정이 좀 나았습니다. 행성의 중력 기준치를 인간이 아닌 채굴용 로봇의 표준에 맞추어 조정하는 연구에 착수했으니까요. 인프라로봇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지표면을 안정시키고 거주 모듈을 개발 중이던 인류정착팀, 정착민의 대중교통수단과 공공 시스템을 기획 중이던 토지기획팀을 비롯한 수많은 부서들의 할 일이 통째로 사라졌습니다. 반면 에너지연구팀과 채굴팀은 갑작스럽게 올라간 업무 우선순위 때문에 야근을 밥 먹듯이 해야 했죠.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저는, 더 이상 존재의 의미가 사라진 인류정착팀 막내였습니다."


부영이 하던 말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골랐다.


“존재에 위기가 찾아오자, 각자만의 자기합리화가 피어났습니다. 같은 지시를 바탕으로 움직이는데도, 각 팀은 자기 방식대로 그 지시를 해석했죠. 그리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부서들이 선택한 방향은 물론, 지시와 관련된 새로운 일거리를 찾는 거였습니다. 단, '우리의 전문성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말이죠. 그것이 설령, 순 억지인 업무들일 지라도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선택입니다. 내 존재 이유를 지켜내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니까요. 하지만 사업의 전반적인 효율 측면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손실이 있었습니다. 같은 화살표를 보고 있었는데도, 모두가 서로 다른 산으로 올라가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 겁니다. 아마도 본부가 이 사실을 눈치채기까진 시간이 꽤나 걸렸을 거예요. 아무래도 목성에서 지구까지의 거리가 가까운 건 아니니까요."


부영은 혼란했던 그때를 떠올리듯, 잠시 말을 멈추었다. 창 밖의 목성은 아직도 야속하리만치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뒤편의 그림자를 떨쳐내듯 고개를 저은 부영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 다시 질문입니다.”


강연장의 시선이 다시 그녀에게 모였다.


“이런 상황이 우리가 도착할 TR1612에서 또 벌어진다면 말이죠.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판단하겠습니까?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요?”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러니까 이곳이 인생 첫 회사인 신입사원들이 모여앉은 자리였다. 이런 주제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상상 만으로도 이미 거대한 혼란이었다. 회사가 방향성을 바꾼다고? 그래서 내 자리가 없어져? 그런 부당한 일은 그냥 애초에 발생하면 안되는 거 아냐? 언론에 제보하면 저녁 뉴스에 나올만한 일 아닌가?


불편한 정적이 길게 이어졌다. 그 끝에, 부영과 눈이 마주친 한 사원이 마지못해 입을 열려던 그 순간. 강연장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먼저 튀어나왔다.


"근데 결국 같은 말 아닌가요?"


강연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갔다. 목소리의 주인은 정윤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몰린 과도한 관심에 정윤은 얼굴이 새빨개졌다. 당황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미 던져진 말이었다. 정윤은 잠깐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아까 말씀대로 회사의 목표는 '새로운 행성으로 인류의 영토를 확장한다'인데요, 이 거시적인 목표 측면에서는 변한 게 없는 것 같아서요. 거주 행성을 만들겠다는 거나, 에너지 탐사를 하겠다는 거나.

목성이 가졌던 에너지 잠재력은 사업단 출항 전부터 모두가 인지한 공공연한 사실이었던 걸로 압니다. 게다가 회사엔 목성 사업만 있는 게 아니고, 에너지 기술이 발전해야 앞으로 더 먼 행성으로 갈 수 있으니, 사실상 방향성이 바뀐 적은 없는 것 아닌가요?

목성을 거주 행성으로 만드는 과정에서도, 적극적인 에너지 사업이 선행되는 건 당장은 혼란해도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도움이 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구요."


정윤이 조금 더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결국은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과정일 뿐인데, 그저 해석의 차이에서 온 문제는 아니었을까요?"


강연장의 공기가 아주 미묘하게 변했다. 부영은 그런 정윤을 또렷하게 쳐다보았다.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 건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저 당돌한 말을 이어가는 신입사원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목성 사업단에서 애초에 회사의 지향가치를 잘못 해석했던 것 아니냐, 이거죠?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네요."


아차, 이 말이 그렇게 되나?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거지?

뒤늦은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오는 정윤이었다. 하지만 정윤의 당황한 얼굴에 아랑곳하지 않고 부영이 말을 이었다. 정윤이 뭐라 변명할 짧은 틈 조차 없었다.


"방금 말씀하신 분, 소속과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부영의 질문에 정윤의 눈앞이 아득해졌다. 강연장에 앉아 있던 600개의 눈들이 전부, 더 이상 부영이 아닌, 정윤에게 향해 있었다.







[4화 끝]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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