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과 방문기
벚꽃이 만개하던 4월 초
거리는 온통 분홍빛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무렵
내 얼굴에도 한창 꽃이 피어있었다.
“김서방은 아직 청춘이네 “
영상통화 중, 내 얼굴을 보고 장인어른께서
하시던 말씀이다.
마침, 아내도 계속해서 잔소리를 하고 있고
이래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난생처음으로 피부과에 가봤다.
사실, 이렇게 피부과 방문이 늦어진 것은
다름이 아니라 피부과에 대한 내 선입견 때문이다.
피부과는 보통 의료 목적보다는
미용 목적으로 방문하는 곳으로
의료행위를 하는 곳보다는
장사는 하는 곳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요새 뭐 하나 잘 되는 것도 없는데
피부에 뭣하러 그렇게 또 돈을 쓰나' 하며
미루고 미루다,
마침내 내 얼굴에 여드름 꽃이 만개할 무렵에나
아내가 추천한 피부과로 오게 된 나.
"어떻게 오셨나요?"
"네. 여드름 때문에요."
"마스크 좀 잠시 내려보실래요?"
"오. 많이 심하시네요."
"네.."
"아무래도 여드름 압출이랑 이것저것 해서 총 9주 패키지로 하시는 게..."
"저기 제가 피부과도 처음이고, 압출은 아예 처음인데"
"네."
"그 혹시, 그냥 약 먹고는 안될까요? "
"네. 안되세요. 절대로 절대로 하셔야 됩니다."
"네.."
그렇게 무려 100만 원이나 되는 9주 시술 프로그램을
3개월 할부로 계산하게 되었다.
"탈의하시고, 앉아계시면 안내해 주실 거예요. "
"네.."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하. 압출 아프다던데.'
'이거 돈만 엄청 쓰고 아프기만 한 거 아닌가. 모르겠네'
이제라도 취소해 달라고 무릎 끓어야 하나 생각하며
대기하고 있는데,
"ㅇㅇㅇ 맞으시죠? 저 따라오시면 됩니다."
"네."
"신발 벗고, 여기에 누우시면 돼요."
천근만근인 몸을 뉘인 후,
"혹시, 압출 처음이세요?"
"어. 네 사실 피부과가 처음이에요."
"아. 이거 정말 아프실 텐데.."
"아 굳이 그런 말씀은 안 해주셔도 되는데요."
"네. 그래도 솔직히 말씀은 드려야 되는 것 같아서요. 이거 정말 아프거든요"
"하... 네..ㅠ.ㅠ"
알코올솜으로 얼굴을 소독한 뒤,
압출기라는 것으로 내 얼굴을 짓누르는데
간호사 선생님 말 대로 정말로 아팠다.
그래도 사내대장부.
몇 개 정도는 참을 수 있겠다 싶었다.
"저기, 잠시만요. 이거 몇 개나 하는 거죠?"
"몇 개요? 얼굴 전체가 다 이러신데요? 한 30분은 걸리셔요."
"헙. 네"
문제는 몇 개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누릅니다."
"네"
-훅
"아!"
참으려고 해도 자동으로 나오는 신음소리.
참 세상에는 안 겪어본 고통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30분 동안 압출을 받는 내내
시술이고 나발이고 집에 가고 싶었지만
할부 3개월로 끊은 내 돈이 아까워
발가락만 꼼지락 거렸다.
지난해, 난생처음 다래끼 제거 시술을 받았을 때
이후로는 내 인생에 이런 기회? 가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희망을 했었는데,
한 해도 안 가서, 또 이런 고통이 오다니
여드름을, 그리고 늦장대응을 한 나를 저주하고 싶었다.
" 다음 예약은 언제로 해드릴까요?"
" 네. 그 오늘 너무 아파서요. 제가 좀 생각을 해보고요"
"아 ㅎㅎ 많이 아프셨죠? 네. 그 보통 2주 이내로 방문을 권장해 드리니, 그전에 예약해 주시면 됩니다."
"네"
고난의 행군을 마치고,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보니
거기에는 얼굴에 폭격을 맞아 피범벅이 된 내가 서 있었다.
'아. 이거 이렇게 하는 게 진짜 맞나?'
'사기당한 거 아닌가'
긴가 민가 하며 병원을 나섰다.
그렇게 시술 후 일주일이 지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다행히, 사기는 아닌 게 붉은 기운도 많이 가라앉아있고
피딱지들도 거진 다 떨어져 있는 모습이
아내 말로는
"그래도 한 게 훨씬 나아. 내가 뭐랬어 이 양반아."
"하여튼 일을 키우는데 선수다 선수. 쯧쯧"
그렇단다. 아내 말이니 믿어야지.
창 밖을 보니
벚꽃이 다 졌다.
이제 내 차롄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얼굴에 또
붉게 봉긋 여드름이 솟아 있다.
또 피부과 갈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난다.
늦은 봄, 내 눈에서 봄 비가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