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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대디 Jun 07. 2023

칼로 물 베기

도돌이표

그런 말이 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다’


전생에 검객이었나 싶을 정도로

부모님은 매일 물을 베셨다.


“매일 싸우시면서 결혼은 왜 하셨어요?”라는 질문엔

“그건 네가 어려서 뭘 몰라서 그래”

“사는 게 다 똑같다. 그냥 이렇게 사는 거지”

하시며 끝에는 항상 이 말을 붙이시곤 하셨다.


“그래도 내가 너 하나 보고 산다. 이쁜 우리 아들”

어렸을 때에는 이 말이 얼마나 부담스럽던 지.

하루빨리 씨끄러운 집을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절대로 나는.

부부싸움은 하지 말아야지,

적어도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으면

자식만 보면서 사는 비참한 인생은 살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했건만

 

어제도,

별 것 아닌 일에 서로 언성을 높여가며 싸우고

‘어휴. 이놈의 집구석, 아들만 없었어도..’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는 나는.


결국 그렇게 원하지 않았던 내 부모의 삶을

살고 있다.


애초에 모든 ‘관계’라는 것은

‘줄다리기’와 같아서,

한쪽으로 치우질 때면

반대쪽 줄을 잡고 있는 사람은

더 힘들기 마련이라, 어떻게 해서든

뺏긴 균형을 찾기 위해 아등바등할 수밖에 없다.


그게 안 되면 그냥 손에 쥐고 있던 줄을 놓는 수 밖에는.


우리 부부사이가 한창 안 좋을 무렵,

부부관계 개선에 진전을 찾고 자

찾았던 상담사님은

부부 모두에게 똑같은 말로

“어차피 상대방은 바꿀 수 없으니, 결국

 내가 바뀌어야 합니다.”를 강조하셨다.


이게 무슨 스님 같은 말씀이신지,

그때에는 아내도 나도 인정할 수 없었지만

틀린 말은 아닌 것이

매번 비슷한 일로 다투게 되고

서로의 이해의 폭을 좁히지 못하고 대화가

항상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돼”

“이게 그렇게 어려워?”

“왜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해”

“아니 됐다. 네가 그렇지 뭐. 그만 얘기해.”


이런 식으로 끝이 나는 걸 보면

누군가는 줄을 잡고 있는 손의 힘을 풀던지,

그게 아니면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답은 알지만 선뜻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그래도 상대방이 언젠간 알겠지’라는

눈곱만큼 남은 기대감과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내가 왜 변해야 해?‘라는

알량한 자존심과 더불어


상대방이 쉽게 변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 또한 쉽게 바뀌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고


결국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닌,

내가 쥐고 있던 줄을 스스로 놓음으로써

서서히 이 ‘관계’에서 기대했던 그 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 또는 ‘포기하게’되는 것이

한편으로는 굉장히 무섭고 씁쓸하기 때문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뭐, 이렇게 말은 했지만

줄을 완전히 놓는 게 아니라,

힘들게 내 쪽으로 당기고 있지 말고

상대방에게 적당히 맞춰주면서


균형 따위는 생각하지 말고

손에 힘 빼고 상대방이 당기는 데로

그냥 끌려가는 것도 방법이다.


하. 근데 이놈의 자존심이 문제라,

지기 싫어하는 나는

매일 같이 화를 부른다.


사실 열에 여덟 번은 내가 져주는 데,

둘이 문제다. (아닐 수도..반성하자)


언젠가는 웃으면서 매일 져 주는 나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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