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용 에어컨뿐만 아니라 자동차 에어컨 시스템에서도 냉매는 필수 물질이다. 푹푹 찌는 한여름에도 찬 바람을 만들어주는 냉매는 분명 혁신적이지만 그동안 환경 문제로 시행착오를 여러 차례 겪어온 바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 흔히 쓰이던 R-12(프레온 가스)가 지구 오존층 파괴의 주범으로 밝혀지며 사용이 금지되었고 이후 R-134a 냉매가 최근까지 널리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환경규제는 갈수록 엄격해졌고 R-134a 냉매 역시 온실가스 유발 물질로 분류되며 2011년부터 유럽에서 사용이 금지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이산화탄소 1kg이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을 수치화한 척도 '지구온난화지수(Global Warning Potential)' 기준 150을 넘는 냉매의 사용이 금지되었는데, R-134a는 무려 1,430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메르세데스-벤츠가 한국 시장 판매용 전기차에 R-134a 냉매를 적용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유럽에선 이미 퇴출
한국에는 규제 없어
EQE, EQS 등 국내에서 판매되는 벤츠 전기차들의 엔진룸 라벨에는 R-134a 냉매가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바겐과 아우디는 최근 한국 시장에 출시한 Q4 e-tron과 ID.4 등 전기차에 R744를 사용하며 현대차그룹, 한국지엠, 쌍용차 등 국산차 업계도 2017~2018년을 기점으로 모든 차량에 R1234yf를 적용했다.
R1234yf는 HFC 계열인 R-134a 등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대체 냉매로, GWP가 4에 불과해 유럽 기준 150 이하를 충족시킴은 물론 오존층 파괴와 지구 온난화에 영향을 거의 주지 않는다. 독일자동차제조자협회(VDA)가 R1234yf를 대체하기 위해 적용한 R744는 GWP가 1로 현재 사용되는 모든 에어컨 냉매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냉매 원가만 10배 절감
"환경 보호에 최선 다했다"
심각한 유해성이 입증되어 퇴출당한 구형 냉매를 한국 판매 차량에 적용한 벤츠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행법상 R-134a 냉매를 규제하는 법안이 없으며 친환경 냉매 적용이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이기 때문이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논란의 소지가 충분함에도 벤츠가 굳이 R-134a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벤츠를 제외한 대부분 제조사가 사용하는 R1234yf, R744 등 3세대 냉매를 차 한 대에 채우려면 약 50~60만 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R-134a를 포함한 2세대 HFC 계열 냉매는 10분의 1 수준인 5~6만 원에 채울 수 있다. 허술한 국내법을 이용해 원가절감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국내 자동차 업계 일각에서는 "위법성을 떠나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실현에 박차를 가하는 마당에 더러운 냉매를 친환경차에 사용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디젤 게이트나 다를 바 없다"는 비난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