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전기차의 핵심’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터리’라고 대답할 것이다. 실제로, 전기차는 배터리로 주행거리가 결정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전기차는 배터리에 따라 성능과 가격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완성차 업체들도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배터리를 탑재할 때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 생산하는 배터리는 주행거리가 길지만 가격이 비싸고, 중국의 배터리는 주행거리는 짧지만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뇌에 빠지다 보니, 결국 완성차 업체들은 ‘미래 자동차 배터리 투자’라는 방식으로 배터리 자체 개발을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늘은 한국과 중국 배터리의 차이와 미래 자동차 배터리의 종류 및 투자 현황을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국내 3대 배터리 업체들이
고전 중이다?
SK이노베이션,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 국내 3대 배터리 업체들이 중국 CATL의 질주에 맥을 못추고 있다는 소식이다. 올해 1~5월 기준 중국의 CATL은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점유율 31.2%를 차지하며 1위를 차지했다. 이는 국내 3대 배터리 업체들의 점유율을 다 합친 33.5%와 비슷한 수준이다.
사실, CATL의 상승세는 엄청난 물량 공세 덕분이다. CATL은 중국 제조사뿐만 아니라, 유럽을 비롯한 미국, 한국 완성차 업체까지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물량을 공급하고 있다. CATL은 높은 기술력과 품질을 갖추고 있으며, 가격도 한국 배터리에 비해 저렴한 편이기 때문에 테슬라를 비롯한 완성차 업체들에게 선택을 받고 있다. SNE리서치는 “지난해 두각을 보였던 국내 배터리 3사가 올해는 중국 공세에 다소 위축된 상황이다”라며 “중국 업체의 유럽 진출이 확대 될수록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더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의 인산철 배터리가
뜨는 이유
그렇다면, 중국의 배터리 점유율이 높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가격’때문이다. 한국이 생산하는 NCM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높아 1회 충전 주행거리가 비교적 길다는 장점이 있지만, 니켈과 코발트, 망간 등을 사용해 만들기 때문에 가격이 비싼 편이다.
반면 중국이 생산하는 LFP 배터리, 즉 인산철 배터리는 NCM 배터리에 비해 부피가 크며 주행거리도 짧다는 단점이 있지만, 리튬과 인산철을 배합해 만들어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며 화재 위험도 적다는 장점이 있다.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중국의 저렴한 배터리를 사용하면 전기차 가격을 내릴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경쟁 차종과 비슷한 가격을 유지하면서도 판매 마진을 더 낼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의 배터리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현 상황에 대한
전문가의 반응은?
한국, 중국, 일본이 각각 비슷한 파이를 가져갔던 이전의 상황과 다르게, 현재는 중국이 엄청난 속도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LFP 배터리 수요가 증가하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NCM 배터리가 시장의 주력이 될 것”이라며 “국내 업체들이 LFP 배터리를 개발하다고 해도, 이미 LFP 시장점유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CATL, BYD 등의 중국 업체와 경쟁해 이길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LFP 배터리를 새로 개발하기 보다는, 현재 생산하는 NCM 배터리를 계속해서 생산하는 것이 나은 방법이라는 의견이다.
이창민 KB증권 연구원은 “LFP 배터리의 추가적인 성능 개선 가능성은 제한적이지만, NCM 배터리는 니켈 비중을 늘리고, 코발트 비중을 줄이는 하이니켈 트렌드로 나아가면서 주행거리는 더 늘어나고 제조원가는 줄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따라서 현재 국내 업체들이 갖고 있는 기술의 강점을 살리는 것이 필요하며, 시장의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게 계속해서 NCM 배터리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각각 다른 대응 방침
그렇다면, 이 레이스의 중심에 서 있는 각 배터리 업체들의 대응 방안은 어떨까.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LFP 배터리를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LG에너지솔루션 장승세 전무는 “LFP 배터리의 장점을 고려하여, 에너지저장장치 시장에 우선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SK온 지동섭 사장도 “최근 완성차 업체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LFP 배터리를 개발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삼성SDI는 두 업체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걷는다. 기존에 삼성SDI가 개발하던 NCA 배터리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NCA 배터리는 니켈, 코발트, 알루미늄으로 만든 배터리다. 삼성SDI 송치헌 그룹장은 “현재 NCA 배터리에서, 가격이 비싼 코발트를 제외하는 ‘코발트 프리 배터리’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며 “LFP 배터리 못지않은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FEST를 통한 전고체 배터리 개발
팩토리얼 에너지
이러한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각 완성차 업체들은 “이젠 우리가 배터리 개발까지 해야 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은 ‘미래 배터리 투자’라는 이름으로 계획을 실현하기 시작했다. 국내 완성차 업체인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팩토리얼 에너지와 공동개발협약을 맺고 전략적 투자를 약속했다. 앞으로 이들은 전고체 배터리의 셀, 모듈, 시스템뿐 아니라, 배터리 양산과 실제 전기차에 장착하는 단계까지 아우르는 통합적 기술 개발을 추진할 예정이다.
현대기아차와 협약을 맺은 ‘팩토리얼 에너지’는 FEST라는 독점적 고체 전해질 재료를 통해 전고체 배터리 개발을 하는 업체다. 전고체 배터리는 현재 사용되는 리튬 계열 배터리의 액체 전해질을 고체 전해질로 대체하여, 안정성과 에너지 밀도가 더욱 향상된 차세대 배터리다. 특히, 팩토리얼 에너지가 개발하는 전고체 배터리는 현재 사용되는 리튬 이온 배터리보다 20~50% 높은 주행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리튬 메탈 배터리를 만든
솔리드 에너지 시스템
현대기아차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솔리드 에너지 시스템’에도 1억 달러의 연구개발협약 및 지분 투자 계약을 진행했다. SES라고도 불리는 솔리드 에너지 시스템은 리튬 이온 배터리의 단점을 보완하는 차세대 리튬 메탈 배터리를 개발한 업체다. 리튬 메탈 배터리는 전고체 배터리에 액체를 10% 섞어서, 전고체 배터리의 단점인 전도성과 내구성을 보완한 배터리다. 에너지 밀도가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30% 정도 높고, 충전은 12분 만에 10%에서 90%까지 고속 충전이 가능하다.
솔리드 에너지 시스템은 GM과도 공동 연구 계약을 맺으며 초기 프로토타입을 개발하고, 24만 1,402km의 주행 테스트를 실시했다. GM의 마크 로이스 사장은 “SES의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일반 배터리의 2배 이상 높기 때문에, 고성능 차량의 경우 배터리 무게는 줄어들고 주행거리는 늘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전고체 배터리 개발 업체
솔리드파워와 퀀텀스케이프
솔리드파워는 솔리드 에너지 시스템의 경쟁자로, 지난 28일 SK이노베이션과 협약을 맺었다. SK이노베이션은 솔리드파워에 3,000만 달러를 투자하고, 함께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 및 생산하기로 약속했다. 또한, 솔리드파워는 포드와 BMW로부터 1억 3천만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하기도 했다. 현재 솔리드파워는 성능을 30% 개선하고, 1회 충전 주행거리 900km를 목표로 하고 있다.
퀀텀스케이프도 떠오르는 전고체 배터리 업체 중 하나이다. 퀀텀스케이프는 15분만에 80%까지 충전이 가능한 전고체 배터리 기술을 공개해 화제가 되었던 업체다. 폭스바겐은 퀀텀스케이프에 3억 달러를 투자하며, 퀀텀스케이프의 기술을 활용해 전기차 배터리 시범 생산시설을 설립하기로 했다. 또한, 빌게이츠도 퀀텀스케이프에 투자했다고 전해진다.
전기차의 심장은 배터리다. 그렇다 보니, 배터리의 가격으로 전기차의 가격이 달라지기도 한다. 때문에 많은 완성차 업체들은 대중성을 강조한 모델에 낮은 가격의 중국 배터리를 탑재해, 가격을 낮추려 하고 있다. 이에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시장 점유율의 확보를 위해 발빠른 대응을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국내외 완성차 업체들도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차세대 배터리에 투자를 함으로써 수직계열화를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기차의 A부터 Z까지 자체생산을 하려는 것이다. 물론, ‘꿈의 배터리’라고도 불리는 차세대 배터리를 빠르게 채택해 시장을 선점하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다. 이렇듯, 전기차 배터리는 아직까지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시장이기 때문에, 이러한 배터리 전쟁은 전기차 시장이 좀 더 활성화되는 동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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