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나가고 싶다는 것은 오랜 소망이었다. 외국에서 혼자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 나이가 50 중반을 훌쩍 넘겼지만 한 번도 혼자 살아 본 적이 없었다. 학교 졸업하고 취직, 취직하고 결혼, 그리고 두 아이, 지금까지 헐레벌떡 살아온 인생이었다. 그러나 혼자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은 소망은 변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절절해졌다. 도대체 혼자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것이 궁금했다.
어느 정도 절실했냐 하면 내가 살고 싶은 집, 방, 그리고 동네까지 그림으로 그릴 수 있었다.
현실의 나의 집 부엌 창문에는 쓰고 남은 폐식용유, 식기 세제 따위가 놓여있지만, 내가 혼자 사는 집 부엌 창문에는 화분이 놓여있다. 내가 혼자 사는 방의 침대 위치와 창문도 눈에 선했다. 창문은 작은 것이 아니라 거실 유리문처럼 통으로 되어있어서 바로 베란다로 나갈 수 있다. 그리고 현대식 마트가 아니라 시골 골목길을 걸어서 장을 본다. 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내 모습이 보였다.
이 상상은 얼토당토않게 정말 이루어졌다. 나는 한국어 강사가 되자마자 남편에게 소리 질렀었다. “나는 1년 후에 외국에 나갈 거야!” 그때 남편은 시답지 않게 대꾸했었다. “그래 보시게.”
그런데 정말 1년 후, 알게 된 지 불과 얼마 안 된 선생님이 갑자기 수업을 못 하게 된 사정이 생겨서 내게 수업 부탁을 하셨고, 서울에서 춘천까지 먼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새벽 일찍 나가서 대신 수업을 했다. 그 작고 소소한 선한 행동이 마술을 불러왔다.
그분은 문체부 소속 세종학당 해외 파견 강사로 합격이 되어서 연수를 가느라 수업을 못 하신 거였고 내게 곧 추가 모집이 있다는 정보를 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어머니 모시고 있어서 집에서 허락이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주저하는 내게 "아이고, 요즘 시어머니들은 며느리 집 나가면 더 좋아해요~." 라며 격려를 해 주었다.
그 말을 듣고도 여전히 주저하는 나를 위해 그녀는 원서 작성까지 도와주었다. 소위 말하는 ‘인생의 은인’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합격했다! 많은 양의 지원서류뿐 아니라 추천서도 필요했고, 토익 성적에, 면접에, 모의 수업까지 모든 과정이 떨렸고, 벅찼고, 단계 단계에서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합격자 중에 여성으로서는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다.
이것이 2018년 나에게 일어난 내 인생의 기적이다. 늘 애쓰고 힘씀에 비해 결과는 기대한 것에 비해 너무 적거나 아예 없었던 그동안의 인생이었다. 헛발질, 헛수고의 반복인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저 먹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로부터 2년 동안 내가 베트남에서 혼자 살면서 경험하고 느낀 일들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더불어 그것은 상상했던 것처럼 달콤하지만은 않았으며, 자유로웠지만 고독했던 여정이었다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