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대 시어머니와의 밀당

by 은연중애

시어머니는 연세 90을 진작에 훌쩍 넘으셨는데도 비교적 건강하시다. 키는 작으시지만, 덩치가 상당하시고, 허리도 꼿꼿하시다. 머리도 염색하셔서 까맣다.

우리 집은 3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다. 그런데도 무거운 당근 꾸러미, 양배추 등을 들고 끙끙거리시며 잘 올라오신다.

복지관도 하루 종일 잘 놀다 오신다. 심지어 당신이 가장 사랑하시는 손자가 집에 와도 복지관 가셔서 당구 치셔야 하는 시간이 되면 안절부절못하신다. 당신의 소중한 루틴은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으신 분이다.

그 연세에 은행 업무도 스스로 잘 보신다. 못 읽으시고, 안 들리시는데도 말이다. 절대 며느리에게 의지하지 않으신다. 은행 직원이 참 고생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잔고가 도대체 얼마일까?’ 궁금할 때도 있다.

한마디로 참 씩씩하신 분이다.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그런 어머니가 나에게 잔심부름은 참 야무지게 시키신다. 죽 하나를 끓여도 간을 어찌해라 저찌해라 세밀한 것까지 지시하신다. 지난번 죽은 참 맛있었는데 이번 죽은 그에 비해 맛이 없다고 평가도 하신다.


어머니가 젊으셨을 때는 늦게 퇴근하는 나를 대신하여 요리를 많이 하셨다. 그러나 지금은 당신이 직접 하지는 않으시고 이래저래 시키시니 잔소리로만 들린다.

며느리에게 이래라저래라 시키실 때마다 나는 ‘새경 받지 못하는 종’이라는 느낌이 든다. 어릴 때 우리 친정어머니가 늘 할머니 죽을 끓이시던 모습이 겹쳐져 오면서 슬퍼진다. ‘그렇게 몸부림쳤건만 친정어머니의 팔자를 내가 벗어나지 못했구나’ 하는 참담함도 느낀다.


며칠 전에는 마침내 폭발해서 어머니에게 고함을 크게 질렀다.

“어무이 드시고 싶은 것은 어무이가 해 드셔요! 자꾸 며느리에게 시키게 되면 어무이는 그만큼 천덕꾸러기가 돼요. 며느리 눈치 보게 돼요. 그걸 아셔야지요!”

내가 하기 싫다는 말은 마음 저 밑에 감추고 시어머니를 위하는 척 포장하여 말했다.

항상 눈에는 번쩍번쩍 빛이 나고, 목소리가 쩌렁쩌렁 무섭던 시어머니가 이번에는 기가 죽은 작은 음성으로 애처롭게 말씀하셨다.

“나도 그랄낀데...아무리 해도 불을 못 킨다. 까스가 있으마 내가 할 수 있을낀데”

우리 집은 가스레인지를 인덕션으로 바꾼 지 몇 년 되었다. 조작 방법을 몇번 가르쳐 드렸지만, 그때뿐 어머니는 인덕션 조작을 못 하신다. 그러나 어머니는 스마트폰도 잘 사용하시고, 유튜브도 잘 들으신다. 조작 방법을 모르신다는 변명이 완전히 믿어지지는 않는다. 배우기 싫어서, 요리하기 싫어서, 안 배우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다시 큰소리로 대꾸했다.

“은행 열씸히 댕기는 그 정신으로 배우려면 왜 못 배워요? 어무이 정신으로는 배우고도 남아욧!”

그리고는 그날 오후 휴대용 가스버너를 당장 구해왔다. 어머니가 인덕션 사용하지 않더라도 요리하실 수 있도록.

어머니께 가스버너를 구해왔다고 말씀드렸다. 아무 대답이 없으셨다. 표정이 약간 복잡해지셨다. 나도 마음이 복잡해졌다. 차라리 어머니가 90대 연세에 맞게 몸이 좀 여위시고, 얼굴에 주름만 가득하시고, 머리카락은 하얗게 세시고, 목소리는 가냘프시고, 허리도 구부정하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측은지심이 생겨서 챙겨드릴 마음이 절로 생길 수도 있을 텐데.


어제는 어쩌다 평소와 달리 어머니만 집에서 식사하시고, 남편과 둘이서 점심 외식을 하게 되었다. 괜히 마음이 찔리고, 염려도 되었다. 죄송한 마음에 딸기, 포도, 요플레 등 어머니 드실 것을 평소보다 더 많이 챙기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친절을 베푼 것은 어머니에게는 편하게 행동해도 된다는 일종의 신호처럼 느껴지시는 것 같다.

어머니는 시어머니로서의 기세를 훅 다시 잡으셨다.

저녁 식사로 들깨 미역국도 있었고, 두툼한 갈치도 구웠고, 푹 삶은 양배추를 들기름에 무쳐서 내어드렸는데 대뜸 김치 넣고 갱시기죽 안 끓였다고 지청구를 하셨다.

머리에 스팀이 올라오면서 다시 휴대용 가스버너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밥 다 차렸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쩌냐고요! 어머니가 직접 끓여드시라고욧!’

라는 말이 마음 저 깊이에서 울려왔다. 말은 안 했다.

이럴 때 내가 잘하는 것은 밖에 나가서 바깥바람 쐬는 것이다.

두어시간 바깥바람 쐬고 집에 돌아오니 남편이 뒤설거지를 깨끗이 해 두었다. 일단 상황이 종료된 것이다.


어머니는 젊으셨을 때 그 기개가 장군에 비길할만했다. 그때 생각하면 나는 고양이 앞에 쥐 같은 신세였다. 물론 맞벌이하는 나를 대신해 아이들을 돌보느라 고생도 많으셨다. 그 특유의 강건하심으로 인해 내가 직장 생활하는 데 덕도 많이 봤다.


그러나 세월은 흘렀다. 어머니는 점점 우리에게 의존하시게 되었고 눈치를 보게 되셨다. 연세 90이 넘어가시면서 특히 나의 눈치를 많이 보신다. 반대로 나는 젊었을 때의 감사함을 잊어버리고 어머니께 점점 음성이 높아지게 되었다.


나도 이제 60대가 되었지만 아직은 몸이 건강하고 맞벌이하는 자식을 대신해 종종 손녀를 돌봐주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나역시 시어머니처럼 자식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올 것이다. 가능한 그날이 늦게 오기를 바라긴 하지만 말이다.

사람 살아가는데 여러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 어머니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본인이 먹고 싶은 것은 본인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인생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내려놓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한 인간의 자존감과 직결되어 있다. 살아있는 한 먹는 일은 계속되므로.


노후에 자식과의 관계는 어느 정도 가까운 것이 좋을까?

어머니와 35년을 함께 살아보니 한집에 사는 것은 너무 가까운 거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노후에 자식과 너무 가까워지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멀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나무가 서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라서 숲을 이루듯이, 꽃이 서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꽃밭을 이루듯이 그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살기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