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있는 시어머니
부득이하게 집을 비워야 할 일이 생길 때 제일 신경 쓰이는 것은 시어머니 식사이다.
어머니께 식사 메뉴를 여쭤봤다.
“어무이 뭐 잡수시렵니까? 오뎅국 드릴까요? 사골국 드릴까요?”
“아무끼나. 아무끼나 물란다.”
‘아무끼나’.
‘아무거나’의 경상도 사투리다. 어머니가 자주 하시는 말이다. 말은 단순하지만 그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해석하기는 어렵다. ‘거시기’라는 말이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럴 때는 선택지를 여러 가지로 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먼저 당신이 손만 내밀면 즉시 드실 수 있는 것들을 식탁에 준비했다. 바나나, 삶은 고구마, 그리고 가장 좋아하시는 음식인 치킨. 국은 뭐 드실지 모르니 어묵탕과 사골국을 두 개 다 준비했다. ‘이 중에 뭐 하나는 어머니 마음에 드는 것으로 걸려라! ’ 하는 마음으로.
그러나 내 생각은 오판으로 드러났다. 아침에 서둘러 나가는데 어머니가 식탁을 쓰윽 한번 둘러보시고 혼자 중얼거리셨다.
“물 끼 암 것도 엄네. 떡국 한 그릇 뜨듯하게 묵으마 좋을낀데”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네. 떡국 한 그릇 따뜻하게 먹으면 좋을 건데.)
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런 당황스러운 순간이 완전히 낯설지만은 않았다. 어머니는 당신이 드시고 싶은 것을 평소에도 잘 표현하지 않으신다. 여쭤보면 ‘아무끼나’가 답으로 돌아온다. 이유는 모르겠다. 뭘 드시고 싶으신지 잘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다가 막상 차려진 음식을 보시고야 비로소 생각이 나실 수 있다. 혹은 며느리에게 당신이 드시고 싶은 것을 당당히 말씀하시기 미안할 수도 있다.
이 시대의 어른들은 당신 욕구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시는 것 같다. 참는 것이 미덕인 시대를 사셨던 분이지 않은가.
며칠 전 장가간 둘째 아들과 차를 타고 갈 일이 있었다. 좀처럼 속내를 얘기하지 않는 아들인데 밀폐된 공간에 둘만 있으니 비로소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여러 얘기 중 하나가 마음을 쳤다.
“oo 이(나의 둘째 며느리다)가 그러는데 엄마는 oo 이에게 뭐 먹고 싶냐고 왜 묻지 않느냐고 하더라고요. 장모님은 내게 꼭 물어보시거든요.”
아무 말도 못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며느리가 집에 왔을 때 성의껏 음식 대접을 했다. 그러나 ‘뭐 먹고 싶니?’라고 물어보지는 않았다. 요즘처럼 자기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미덕인 시대에 자란 새 며느리에게는 이것이 크나큰 문화 충격으로 다가왔나 보다.
수영장에서 샤워 중에 불쑥 그 생각이 다시 났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아들에게 변명을 했다.
‘아들아. 엄마는 36년 차 며느리로 너의 할머니한테 여태껏 그런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없다. 할머니한테 “뭐 드시겠냐”고는 수도 없이 물어봤다. 그런데 이제는 며느리한테까지 물어봐야겠냐? 이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음식을 안 해준 것도 아니고. 엄마 인생은 뭐냐? 나 때는 말이야. 스물일곱에 시집와서 너 낳을 때 빼고는 명절 때마다 전 다 부치고 말이야. 나도 결혼 전에는 아무것도 안 했거든!’
곧바로 아들의 대답이 머릿속에서 음성 지원으로 들려온다.
‘엄마. 엄마가 하는 말이 바로 꼰대가 하는 말이라고요!!!!!’
그렇다. 이런 말을 하면 아들에게서 꼰대라는 공격을 바로 받을 것이다.
이 말은 안 하기로 한다.
대신 나를 위로하기로 마음먹는다.
요즘 같이 자식들이 집에서 안 나가는 시대에 취직해 집 나가서 다행이다.
요즘 같이 결혼 안 하는 시대에 결혼해서 다행이다.
공룡이 멸종한 것은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이다. 살아나가려면 시대에 적응하자!
우리 어머니 시대에는 일제강점기, 육이오 사변도 겪었는데 그에 비하면 껌이다!
아, 그리고 또 어떻게 나를 위로해야 하나?
아무리 어떻게 나를 위로해도 결론은 한 가지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대가 변했다.
이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권위와 복종’은 끝났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권위와 순종’도 끝났다.
딱! 한 가지 ‘공평’,'평등'이 모든 관계의 열쇠가 되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남편과 아내가 이제 모두 친구(?)가 되어야만 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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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막차를 탄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