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부부의 겨울 여행

by 은연중애


일상생활에 특별한 일이 안 생기고 조용히 지낸다는 것은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근래에는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에서 당연히 해야 할 루틴-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청소하기 같은-을 수행하는 데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이 쌓여가고, 원인 모를 답답함이 느껴졌다. 이런 때가 바로 분위기를 바꿔줄 타이밍이다.

지난주에 남편과 삼박 사일 여행을 다녀왔다. 가까이 시동생 가족이 살고 있어서 다행히 시어머니를 부탁하고 갈 수 있었다. 시동생 가족들과 가까이 살며 서로 의지하고 지낸 지도 20여 년이 지났다.

‘60 넘은 나이에는 친구끼리 가는 게 재미있지 남편과 가는 것은 좀 심심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편으로 하면서, 떡국, 빵, 과일 등 평소의 식탁을 배낭에 옮겨 담고 출발했다.


첫날, 일요일 오후, 영하 14도의 칼바람 속에 문경새재에 도착하여 새재길을 걸었다. 해는 뉘엿뉘엿 저물고 사람 하나 없는 새재길을 잔뜩 웅크리고 걷다가 발견한 얼키설키 비닐로 덮은 간이식당 하나. 15가지 산채 나물로 된 전과 따뜻한 차로 몸을 녹이고 돌아와 조령산 휴양림에서 쉬었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겨울 산속의 저녁, 방바닥이 지글지글 끓는 오두막에 누워서 쉬는 데 한없이 몸이 풀어졌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었다. 집에서도 특별히 대단한 일을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집에서는 주중이나 휴일이나 할 것 없이 늘 종종거렸다. 입맛 까탈스러운 시모의 식사 상차림으로 항상 긴장되기도 했고. 그런데 ‘시간 맞춰서 밥 안 차려도 된다’라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녹았다. ‘이것이 진정 휴식이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튿날, 기온은 더 내려갔어도 문경새재의 바람은 잦아들었고, 햇볕이 눈밭 위에 가득 들어차서 사방이 빛이었다. 눈밭을 걷자니 두껍게 챙겨 입은 옷으로 인해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아무도 없는 드넓은 눈밭이 다 나의 것이었다. 두어 시간 걷다 보니 눈밭을 바라보는 내 눈도 차가운 공기 속에 같이 시원해졌다. 자유로웠다. 춤사위가 몸을 휘감아 돌았다. 남편 안 보는 틈을 타서 눈밭에서 혼자 빙그르르 춤을 추었다.


물기 다 빠지고, 두꺼운 껍질만 남은 겨울 고목 같은 어머니, 평소에는 연락 없다가도 힘들 때는 고민을 털어놓는 출가한 아들들, 여전히 서먹하기만 한 며느리들이 떠올랐다.


‘그래! 내가 다~~~ 품고 갈 수 있다’

호기로운 마음이 들었다. ‘나의 노년은 이들을 다 품고도 쭈그러들지 않고 자유하리라!’ 마음에 결기가 생겼다.


추운 겨울, 그것도 월요일이어서 산에도, 들에도, 풀어진 넥타이 같이 꼬부라진 국도에도, 어딜 가도 사람이 없었다. 오직 환한 겨울 햇빛만 온 천지에 가득했다. 햇빛 반짝이는 아스팔트 바닥, 칩거에 들어간 갈색 산, 눈 덮인 빈들, 옷 벗은 가로수. 남편과 함께하는 여행길은 편했다. 아무런 일정을 짜지 않아도, 무엇을 먹을 건지 신경전을 벌이지 않아도, 누가 돈 낼 것인지 신경 쓰지 않아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가도 괜찮았다.


둘째 날 저녁은 노천온천을 즐길 수 있는 호텔에 머물렀다. 몸은 따스한 물속에 있지만 볼에는 차가운 공기가 스치고 갔다. 엄마로, 며느리로 살다 보니 매사에 자기주장을 하기보다는 수용하는 스타일이 되어버린 내가 평소와는 달리 남편에게 노천 온천에 올 것을 고집했다. 와보니 좋았다. ‘너무 오랫동안 하고 싶은 것을 하기보다는 해야만 하는 것을 하고 살았구나’ 싶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해야 내가 무엇을 원하는 것을 알겠다.


노천탕에서 푸른 하늘에 구름 흘러가는 것을 쳐다보았다. 어린 시절 이후로 구름을 유심히 쳐다보는 것은 참 오랜만이었다. 솜사탕 한 움큼을 뜯어놓은 것 같은 구름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일렁이는 물결은 청자색 조약돌 같은 무늬를 만들었다.


그런데 뒤에서 갑자기 시어머니의 익숙한 ‘흐음음’ 숨소리가 들렸다. 시어머니가 노천탕에 막 들어오시려고 하면서 환한 미소를 띠고 계셨다. 순간 식겁했다. 얼른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아이고 어무이! 아들 반듯하게 잘 키우셔서 당신 아들이 저를 이래 좋은 데 델꼬 왔네요. 어무이, 고맙심니더.’

아무래도 어머니와 너무 오랜 세월 같이 살았나 보다. 이곳에 와서까지 환각이 떠오르다니.


다음날 아침 호텔 노천 온천욕을 다시 한번 하고, 벽면 전체가 유리로 되어있는 아름다운 레스토랑에서 조식으로 양식을 먹었다. 오렌지 주스, 소지지, 베이컨, 스크램블드 에그, 토스트, 커피. "호텔 조식은 역시 우아한 서양식이지!:

살짝 비싼 가격이 걸리기도 했고, 마침 주가가 떨어져서 핸드폰을 심각하게 보는 남편 눈치가 보이기도 했지만, 노천욕에 양식 호텔조식까지 먹고 나니 귀부인이 된 기분이었다.


삼일째 숙박지는 장령산 휴양림이었다. 휴양림 가는 길에 들렀던 육영수 여사 생가의 장대한 규모는 나를 놀라게 했다. 또한 옥천 문화 체험관의 정갈한 버섯찌개 식사는 누구에게든지 가격이나 분위기 면에서 추천할 만했다.


가장 좋은 것은 가장 마지막에 오는가. 장령산 휴양림의 ‘치유의 숲길’을 산책하며 남편과 살아온 지난 세월 동안 마음에 힘들었던 것을 털어놓았다.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뜨거운 뭔가가 올라와 고통스러웠다. 잊고 있었던 일인데도 막상 얘기하니까 생생하게 올라왔다. 고통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말을 해야 치유가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얘기를 계속 이어나갔고, 남편은 묵묵히 들어주었다. 이윽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말을 들어주는 남편이 있어서 고맙다는 마음이 들어왔다. 남편이라고 할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그 전쟁 같던 젊은 날의 결혼 생활을 참고 넘어섰더니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잘 익은 술과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장령산 치유의 숲길>


밤에는 찬바람 속에서도 젊었던 시절처럼 밤하늘의 별을 헤아렸고, 다음날 아침 휴양림 족욕장에서 족욕하고, 대청호에서 값비싼 송어회를 먹는 호사도 누리고, 청남대에 들러서 데이트하는 젊은 연인들처럼 과자 한 봉지를 나눠 먹으며 맑고 고요한 청남대 호수를 감상하고 집으로 올라왔다.

<청남대 호수>

어머니는 가까이 사는 성실한 동서 덕분에 잘 계셨다. 복이 많으신 분이다. 나는 다시 근무 의식을 장착했다. 흐트러져있던 집을 오자마자 정리하고, 미루어두고 주저주저했던 몇 가지 결정들을 순식간에 바로 내렸다. 동안 신경을 아프게 건드려왔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무 감정 없이 그저 잠잠히 보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것이 여행의 효과인가 보다.


밖은 한겨울인데 벌써 벚꽃 필 날이 기다려진다. 그때쯤이면 다시 한번 떠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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