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커피 한잔과 한가롭게 책 읽는 여유를 부리려는 순간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흥분하여 속사포처럼 내뱉는 이야기 가운데 짜증, 좌절이 함께 핸드폰을 통해 전해졌다.
내용인즉슨 96세 되시는 친정어머니가 변이 안 나와서 세 시간이나 화장실 비데에 앉아계셨다는 것이다. 걱정이 된 언니는 장애인 콜택시 ‘부름이’를 대기시키고, 응급실 갈 준비를 다했는데, 엄마가 기어코 안 가시겠다고 고집을 부리셔서 결국 ‘부름이’를 돌려보내고 말았단다. 이때를 놓치면 한밤에 119를 부르게 될 수도 있다고 언니는 걱정했다. 작년에도 그런 경험이 있었던 언니의 촉이 발동한 것이다.
병원을 가느니 안 가느니 씨름을 하는 와중에 부모 자식 사이에 해서는 안 될 험한 말도 오가고 거의 몸싸움까지 하게 된 모양이다. 몸무게가 30킬로 채 안 되시는 연약한 몸에 연세는 이제 백 세를 향해가는 엄마이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시는지 한번 고집을 부리시면 결코 꺾지 않으신다.
친정어머니는 오랜 세월 병중에 계셨다. 며느리도 더 이상 모시기 힘겨워해서 요양병원에 입원하시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으신 엄마를 보는 순간 친정 언니가 도저히 엄마를 병원에 그대로 두고 올 수가 없어서 환자복을 도로 벗게 하시고 언니 집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렇게 모신 지 8년째다.
나의 한가로운 오후는 언니의 이러한 희생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먹먹해졌다. 나 또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처지이니 그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언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말이 안 나왔다.
겨우 이 말을 했다.
“엄마는 이제 놓아드려도 돼. 언니 정신 건강, 몸 건강에 신경 써. 그게 더 중요해. 내가 이번 주에 내려갈까? 언니 바람이라도 한번 쐬게?”
언니는 본인 대신에 당번을 서겠다는 나의 말을 완곡하게 거절하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그 말이 내 가슴에 날아와 박혔다.
“우리 성당 사람은 시어머니 모시다가 먼저 죽었어.......”
물론 나를 걱정해서 한 말이겠지만.
뒤돌아 생각해 보면 친정어머니도 한 가정의 안주인으로 당신 몫을 다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 기억에 우리들 점심, 저녁 도시락을 다 싸서 보내주시는 것이 그분의 일상이었다. 또한 엄마는 다림질 선수였다. 다림질할 빨래 거리가 늘 수북이 쌓여있었다. 엄마의 오후는 다리미와 함께였다.
가을철이면 마당 한편에 쌓여있던 수백 포기의 김장용 배추가 생각난다. 설 명절이면 또 어떠했나? 엄마는 들깨나 참깨를 큰 솥에 조청과 같이 넣고 고아내서 아주 큰 나무판에 부어서 칼로 잘랐다. 이것이 우리 집 참깨강정, 들깨강정이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 감히 엄두도 못 낸다.
그러나 무심한 세월은 건듯 흘러버렸고, 이제 병원 가는 것부터 시작해서 먹는 것, 배설하시는 것, 의사소통하시는 것, 생활 전반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자식에게 의존해야 한다. 나이 60 중반을 넘어 70을 향해가는 언니에게는 이 생활이 참 버겁다. 물론 엄마도 마음속으로는 알고 계시고 미안해하신다. 차마 언니에게 바로 말 못 하시고 나에게 말 좀 전해달라고 하신다.
친정어머니를 보면서, 또 연세 90이 넘으신 시어머니가 노쇠하는 과정을 날마다 지켜보면서 나의 노후를 그려본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니 신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다. 언젠가는 나도 먹는 것, 움직이는 것, 자는 것, 배설하는 것을 스스로 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식에게 의존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물론 자식이 부모 모시는 시대가 아니기도 하다). 나이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자식은 자식의 자리에 있고 부모는 부모 자리에 있을 때가 좋다. 부모가 자식을 혼낼 때는 미래가 있고 그 안에는 교육의 의미가 있다. 반대로 자식이 부모의 위치에 서서 부모에게 화를 내야 하는 상황에는 오직 절망만 있다. 부모도 자식도 마음이 비참해진다.
부모는 늙어도 부모고 자식은 늙어도 자식이다. 부모가 자식이 되고, 자식이 부모가 될 때까지는 살지 않을 수 있는 복을 받기를 소망한다.
몇 시간 후 언니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감사하게도 엄마가 마음을 바꾸셔서 병원 가시겠다고 했단다. 언니의 목소리가 기분이 좋아서 들떠있다. 나도 덩달아 기쁘다 못해 눈물이 맺힌다.
친정 언니가 하늘이 주시는 온갖 복을 모두 다 받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