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서 특별한 이유도 없이 전원 생활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졌다.
어릴 때 마당 있는 집에서 비오면 비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몸으로 부딪치며 자란 탓인지, 베란다 창만 닫으면 바람 한점 안 들어오는 아파트는 그 평수와 상관없이 늘 답답했다.
날이 갈수록 이 갈망은 점점 강해졌다.
하늘도 내 마음을 알아주셨던가?
친척 오빠가 짓던 밭을 어떤 비용도 낼 필요없이 우리 부부 마음대로 사용하라고 맡기셨다. 이제 80을 바라보는 오빠는 직장 퇴직 후 10년 가량을 재미있게 농사를 지으셨다. 빈둥지 증후군을 앓았던 올케언니도 밭을 일구고 수확하는 노동을 하는 가운데 마음이 많이 회복되셨다.
세월은 흘렀고, 오빠는 이제 기력이 딸려서 밭을 내놓았으나 사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 손 안 가는 밭은 점점 황폐화되었고, 온갖 해충이 생겨 마을에 피해가 생겨 동네 사람들의 민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기는 쉬워도 팔기는 어려운 것이 전원주택 혹은 교외 농지의 맹점인 것 같다.
이런 사정이 있는 까닭에 팔기 위해서라도 밭을 잘 관리해 둘 필요가 있는 오빠와 퇴직해서 시간도 있고 아직은 힘도 있는 남편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고, 덩달아 남편따라 나도 밭에 오게 되었다.
봄비가 살짝 내려 쌀쌀하고, 하늘도 꾸물꾸물한 날,
겨우내 묵혀두었던 밭으로 드디어 출동했다.
평생 한번도 밭을 가꾸어본 적이 없어서 마음 속으로만 그리고 있을 때와는 달리 막상 밭을 봤을 때는 처음 만난 처녀총각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밭에는 잠시 쉴 수 있는 컨테이너가 있고 간단하게 살림을 할 수 있는 도구들도 갖추어져 있다. 그렇지만 컨테이너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내부는 어지럽게 물건들이 흐트러져있었고 창문이고, 데크의 테이블이고 간에 먼지만 가득하고, 쓰레기가 여기저기 굴러다녔다.
감히 일 할 엄두가 안 났다.
속이 시끄러워 남편에게 밥먹으러 가자고 조르기만 했다. 남편은 밥만 축내지 도대체 도움이 안 된다며 투덜댔다.
추어탕 한 그릇 얻어먹고 나니 몸도 좀 따뜻해지고
그래도 밥값은 해야겠다싶어서 컨테이너 박스 실내를 정리했다.
남편은 밭 한쪽 편의 비닐하우스에 상추 모종을 심고 물을 큰 양동이에 끙끙거리며 몇 번이고 날라서 부었다. 나는 컨테이너 창유리도 닦고, 싱크대도 닦고, 흐트러진 물건들을 정리하니 제법 사람 사는 집 같다.
컨테이너 정리를 하면서 나의 지난 세월이 생각났다. 30여년을 사내자식들,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늘 긴장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20여년이 지났다. 한집에 오래 살다 보니 답답하게 느꼈다.
이제 60이 넘어서 남편과 둘이서 이곳에서 새로운 인생의 한 장을 열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올라왔다.
청소하는 내내 새들 지저귀는 소리가 나를 황홀하게 했다.밭에는 초록색 새순이 파릇하고,라일락 나무에 꽃이 피고 약간 쌀쌀하긴 하지만 스치는 바람을 맞을 수 있어서 좋았고
탁 트인 밭을 보니 알 수 없는 해방감이 느껴졌다.
일을 다 마친 뒤에는 남편과 커피 한잔하며 마무리했다.
서울 집에 도착하니 방금 머물다 온 들판과 새삼스럽게 대조가 되었다. 문 하나만 열면 바깥 바람이 그대로 들어오는 작은 컨테이너 박스에 비하면 우리집은 외부로부터 완벽히 차단되어 있어서 안전하고, 넓고, 모든 것이 잘 정돈되어 있는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욕실 욕조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한참을 누워있었다.
바깥에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간이화장실, 욕조는 아예 없고, 밭 한쪽에 덩그러니 있는 콘테이너 박스. 도대체 뭐가 좋았을까.
그런데 나는 벌써 마음이 정해졌다.
그곳에 가기로.
책을 읽어도 그곳 처마 밑의 테이블에 예쁜 테이블보 하나 깔고 볼 생각이다.
햇볕과 바람이 들어올 것이다. 눈맛은 시원할 것이다.
손녀가 놀러와서 흙을 밟았을 때 아이의 얼굴에 피어오르는 기쁨이 보였다. 온 가족이 모여 함께 한끼 식사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남편은 행동이 빠르고 일을 잘하는 편이다. 어릴 적에 농촌에서 자랐다.나는 굼뜨고, 밭일을 전혀 해 본 적이 없다. 게다가 나이 들면서 무릎이 점점 좋지 않아서 구부려서 뭔가를 할 엄두는 내지 못한다. 남편도 내가 뭔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아예 기대도 하지 않는다.
나는 전원 생활에서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우울하기도 했다. 그러나!현실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일할 몫이 있다는 것이 판명났다.
남편은 밭일은 잘 했지만 정리정돈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남편 뒤를 따라다니면서 뒷마무리 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남편이 온갖 푸성귀를 뜯어오면 나는 비빔밥을 만들 수 있고, 설거지도 할 수 있다.
올봄에는 한주에 한번 정도 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실전에 들어가기 전에 일단 연습을 해볼 것이다.
연분홍빛 설레임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