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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현 Dec 09. 2020

오늘 우린 더뮤지컬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휴간(休刊)에 감사하며,

글을 조금 쉬었다.


최근 브런치에 올린 대부분의 글들은 멜론티켓 객원 에디터로 쓴 글을 옮긴 것이고, 직접 쓴 지는 6개월 정도 되었다. 작년 말 회사를 옮기고, 새 업무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글을 쓸 여유가 없었던 탓도 있지만 올해는 전적으로 COVID-19로 인해 연극/뮤지컬계가 위축되었던 것이 컸다. 글을 쓸 맛이 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더뮤지컬'이 무기한 휴간 소식을 알렸다. 공연계 지인에게 국내 최초 뮤지컬 매거진 더뮤지컬이 휴간 위기에 몰렸고, 여러 방법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회사 공연/티켓 관련 부서에 더뮤지컬 인수나 후원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없어지면 안 되는데, 하는 한 가지 간절한 마음이었다.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절대 폐간이라는 표현은 이 글에서는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더뮤지컬은 결국 무기한 휴간 결정을 내렸다. 2000년 7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무려 20년이 넘는 대장정이었다. 필자가 뮤지컬을 접하고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2013년부터 지금까지 매월 양질의 글과 사진에 감탄하며 즐거워했기에 못내 아쉽다.


대학생 때는 더뮤지컬을 살 오천원 돈이 없어 학교 중앙도서관과 더뮤지컬이 비치된 대학로 카페를 찾아가며 신간을 읽어댔다. 특정 월호가 읽고 싶은데 도서관에 없으면 학교 시스템을 통해 구매를 신청하기도 했다. 원래 남의 돈으로 읽는 책이 더 즐겁다. 직장인이 되고 한 달에 잡지 한 권 정도는 살 수 있는 여유를 부리게 되었다. 때가 되면 불투명한 비닐 포장지에 담겨 배송되는 뮤지컬 배우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낙이었는데, 내년부터는 그렇지 못한다니 서글프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도 언젠간 더뮤지컬에 기고를 해봐야지 생각했다. 일종의 목표 같은 것이었다. 구독자가 감사하게도 천오백 명을 넘고 멜론티켓에 기고도 했으니 내년에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더뮤지컬에 보내봐야지 생각했다. 진짜다. 운이 좋으면 이 소박한 글들에 관심을 가져주실지도 모르고, 기회가 닿는다면 원고료를 받지 않으면서라도 기고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요즘은 꿈을 잃은 기분이다.


더뮤지컬 2020년 12월호


이틀 전 당분간 마지막이 될 더뮤지컬 2020년 12월호가 도착했고, 늦은 시간까지 찬찬히 읽었다.


표지에는 가장 대중적이면서 가장 팬덤이 큰 배우 조승우가 섰다. 그 누가 이보다 더뮤지컬의 마지막을 잘 장식할 수 있을까. 그의 인터뷰 역시 특정 작품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자신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뮤지컬을 시작하며 가졌던 마음,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조명해 준 더뮤지컬에 대한 감사, 그리고 알려지지 않았던 뒷이야기들. 그의 시작과 현재가 더뮤지컬의 시작과 현재와 결이 잘 맞아 좋았다.

(홍광호 배우가 투이로 무대에 섰던 영국 웨스트앤드 공연 〈미스 사이공〉에 조승우가 엔지니어로 함께할 뻔했다는 이야기는 너무 놀라웠다. 런던행 티켓 끊을뻔했네!)



한편으로는 매니악했다. 수많은 뮤지컬 관계자들의 이야기로 점철된 12월호의 내용이란. 배우, 앙상블, 연출, 음악감독, 작곡가, 작가 등 공연을 만드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애도로 그려진 마지막 호는 참 뮤지컬 전문 매거진의 마지막다웠다. 누군가에게는 '그들만의 리그'겠지만, 우리가 볼 때는 '우리들의 리그'니까. 좋았다.


더뮤지컬 발행인인 클립서비스 설도권 대표의 인터뷰 와 닿았다. 더뮤지컬을 이끌어 온 것은 자본의 논리가 아니라 사명감이었구나. 공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애정이 시장에 영향을 주고 한국 뮤지컬 시장을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었구나, 싶어 큰 감명을 받았다. (그런데 대표님이 전 회사 팀장님과 좀 많이 닮으셔서 당황했다)



뮤지컬과 연극을 주제로 얕은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이 시장이 얼마나 작고 어려운지를 실감하게 된다.


일례로 최근 가장 핫한 플랫폼인 유튜브에서조차, 뮤지컬/연극 주제의 1위 채널은 '실버버튼'도 받지 못한다. 공연 무대 영상을 편집해 가장 높은 콘텐츠 퀄리티를 자랑하는 '씨뮤'나 '플레이디비' 채널조차 구독자 5만을 넘기 어려우니 말 다했다. 그러면서도 특정 콘텐츠는 수백만 조회수를 찍으며 반복 재생되니, 사업이나 수익의 관점에서는 너무나 어려운 시장이다.


때문에 'ROI(투자 대비 수익률)'가 나올 리 만무하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도 책으로 내기도 어렵고, 글을 실어 나를 플랫폼도 부족하다. 네이버 책/문화 세션이나 멜론티켓 매거진 정도가 유일하다. 그나마 브런치에서는 글을 읽어주시는 구독자 분들 덕에 부푼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 필자 역시 유튜브 콘텐츠나 팟캐스트 같은 콘텐츠 확장을 고민해 보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시간을 내 콘텐츠를 만들어내기에는 효용 대비 리스크가 너무 크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 뮤지컬의 VOD 제작 및 사업화를 제안하기도 했었는데, COVID-19가 이렇게 퍼질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세게 푸시해볼 걸 그랬다)



그러니 더뮤지컬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더더욱 고마울 따름이다.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나 20년의 세월 동안 국내 뮤지컬 시장과 함께 성장해 온 페이스메이커 같은 존재가 더뮤지컬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상황으로 인해 더뮤지컬뿐 아니라 모회사인 클립서비스조차도 생존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설도권 대표의 말이 안타까운 이유다.


그래서 폐간(廢刊)이 아닌 휴간(休刊)에 감사한다. 언젠가 돌아올지 모른다는 여지를 남겨둔 것이니까.

더뮤지컬은 당분간 발걸음을 멈추지만, 언젠가 다시 손을 잡고 함께 뛸 날을 기다린다.


고마웠습니다, 더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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