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가치를 결정하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UX
한 해가 지나가는 시점, 2018년 크리스마스가 지났다. 그리고 어느덧, 필자가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Digital Healthcare Partners, 이하 DHP)에 합류한 지도 1년 하고도 절반이 넘었다. 한 번쯤 활동 정리(?)가 필요하기도 하고, 내가 왜 DHP에서 파트너로 일하는지에 대해 소개도 필요하겠다 싶다. 이번 글에서는 유일한 HCI* 전공자로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이하 UX)을 검토하는 파트너로서의 소회를 핵심적인 몇 가지로 구분 지어 끄적여보고자 한다. 제목은 거창하지만 끝은 미약할 예정.
*HCI란 Human-computer interaction의 약자로, 우리나라 말로 하면 인간과 컴퓨터 상호작용이라는 분야이다. 말 그대로 인간과 컴퓨터가 상호작용 하는 방식에 대한 기술을 다루고 그 효과를 연구하는 분야라고 생각하면 된다.
DHP의 존재는 처음 DHP가 만들어질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필자가 파트너로 합류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DHP는 엄연히 의료 전문가들이 주축이 되는 "의학적인 전문성과 네트워크에 기반한 헬스케어/의료 전문 엑셀러레이터"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파트너로서 부적절한 사람일 것이라 생각하는데, 의학적인 전문성이 없는 비의료인(지식iN스러운 잡 의학지식은 많지만...)인 데다가 냉정히 말해 의료 분야의 네트워크도 없었기 때문이다(지금은 아주 약간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트너로 제안을 받고, 또 약간의 고민을 거쳐 합류를 결정하게 된 것은 디지털 헬스케어라는 분야에의 워딩에 바로 '디지털'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디지털 제품이나 서비스를 경험하는 것에 관해 다루는 학문이자 분야가 바로 UX인데, 디지털 헬스케어 역시 결국 사용자가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경험의 고려를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분야라는 점에서 필자가 기여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그리고 2018년에 어느 정도는 이러한 기여점을 찾아 DHP 파트너로서 활동을 늘려갔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우리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 주었는데, 이 혜택은 사용자인 우리가 직접 경험함으로써 그 가치를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이 가치는 그냥 우연히 경험하게 된 것이 아니다. 스마트폰 시장을 새롭게 재정의한 애플도, 빅브라더로 온라인 커머스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을 장악해가는 아마존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치열한 연구와 테스트를 거치는 분야가 바로 UX이다. 글로벌 컴퍼니라 불리는 수많은 회사들은 저마다 HCI Research Center 혹은 UX Research Group을 설립하고 앞다퉈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것이 곧 가치를 판단할 '경험(experience)'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는 이러한 UX 측면에서 보면 이제 막 태동하고 있는 신생 중의 신생 분야다. 아직 연구해 본 연구자도 별로 없고, 깊은 고민을 해볼 만한 기술적 도전이나 산업의 성숙도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애플이나 아마존, 구글, 우버, 에어비앤비와 같이 각 분야에서 소위 UX 끝판왕이라 불리는 대표성을 띄는 회사를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 바꿔 생각해보면, 디지털 헬스케어의 UX를 혁신적으로 설계하고 제공하는 회사가 사용자에게 무궁무진한 가치를 전달할 것임은 물론, 궁극적으로 앞서 언급한 회사들과 같은 반열에 오르는 차세대 유니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DHP를 합류하면서 특명이 있었거나 파트너로서 어떤 역할을 해달라는 구체안은 전혀 없었지만, 필자는 DHP 파트너로서 이러한 측면에서 UX 관점에 기반한 스타트업의 가치를 중점적으로 본다. 왜냐하면, 감히 단언컨대 결국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도 핵심 가치가 UX가 되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오만방자할 정도로 UX의 가치를 높게 본다). 그래서 DHP 포트폴리오 기업이나 DHP Office Hour를 통해 만나는 수많은 기업들에게 필자가 DHP 파트너로서 기대하고 던지는 종류의 질문들은 주로 "여기서 사용자는 누구인가요?"와 같이 기초적인 질문에서부터 "사용자가 무엇을 경험할 수 있고, 어떤 기대 효과가 있죠?"와 같은 것들이다. 물론 아쉽게도 이러한 질문에 UX를 제대로 이해하고 답하는 대표님들을 아직 많이 보지는 못했다.
왜 그럴까? 사실 UX에 대한 이러한 종류의 질문들은 초기 스타트업에게 특히 많은 challenge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아직 완성하지 않았거나, 필드 테스트(field test) 수준의 사용자 인터뷰 정도 만으로는 UX를 논하기가 매우 어렵고 논리성이 결여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기존의 UX 방법론들이라 불리는 것들로는 혁신적이고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스케일업(scale-up) 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스타트업마다 필자는 UX 전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사실상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우선순위가 되고 UX는 회사가 좀 더 커질 때 비로소 고민하는 실정이다. 그나마 UX도 기획자나 GUI 디자이너가 할 수 있다고 믿는 이상한 생각들 때문에 더 폭망으로 가기 십상이다. 할 말이 많지만, 이 부분은 넘어가자.
소비자는 필요에 의해 소비하지만, 사용자는 경험에 의해 사용한다. 기본적으로 이 관점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접근해야 제대로 된 UX를 설계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은 소비자(customer) = 사용자(user)라고 생각하고 일반적인 차원의 접근하는 수준에 머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소비자와 사용자는 엄연히 다르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이 차이에 대한 이해는 더욱 중요한데, 왜냐하면 소비해보지 않았거나 경험해보지 않은 범주의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특히 이 분야에서 많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DHP 포트폴리오 회사 중 하나인 닥터다이어리(Dr.Diary)의 당뇨 애플리케이션이나 메디히어(Medihere)의 전문성 기반 의사 연결 애플리케이션 등은 과거에는 소비해본 적도,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서비스들이다. 서지컬 마인드(Surgical Mind)의 VR 기반 수술 시뮬레이터나 뮨(Mune)의 주사기 폐기 하드웨어 역시 새로운 제품들이라 할 수 있겠다. 휴먼스케이프(Humanscape)나 젤리랩(Jelly Lab), 브이알애드(Vrad), 쓰리빌리언(3 Billion) 등도 각기 영역에서 소비 혹은 경험해 본 적 없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필자는 DHP에서 소비자와 사용자의 영역을 구분하고, 특히 사용자의 측면에서 DHP 파트너이자 투자자로서 그 가치를 검토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소비자가 비즈니스 모델(Business Model, 이하 BM)의 측면에서 고민해야 할 영역이라면, 사용자는 경험 디자인(Experience Design)의 측면에서 고민해야 할 영역이다. 그런데 BM은 비즈니스의 대상에 따라서는 일반적인 사용자의 유무와 관계없이 소비자를 설정하고 이에 맞는 모델을 설정하면 되지만, 그 소비자가 설령 B2B에서와 같이 또 다른 대상 기업이라 하더라도 결국 최종 시점에 가서는 사용자와 마주하게 되므로 '사용자'라는 영역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필수 불가결한 영역이다. 즉,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애플이나 아마존, 구글, 우버, 에어비앤비와 같이 우리 일상에 스며들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 혹은 플랫폼을 제공하는 스타트업이 나오려면 제일 중요한 가치는 UX일 것이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아마존을 창업한 후 한시도 빼놓지 않고 집중한 단 한 가지는 '사용자'라고 했다.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이나 서비스 역시 앞으로 적용될 혁신적인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우리 삶에 혜택을 부여할 것이다. UX는 그러한 측면에서 모든 스타트업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어찌 보면 전부인 핵심 가치라고 본다.
앞으로도 필자는 DHP에서 많은 혁신적인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UX의 가치를 불어넣고, 궁극적으로 이를 통해 회사 가치를 상승시키는 일에 집중할 것이다. 많은 스타트업이 DHP에 문을 두드리길 기대하며.
Dr. Jang, 장진규 박사
Scientist and Angel Investor, 과학자이자 엔젤투자자
DHP Partner, jinkyu.jang@dhpartners.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