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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민 Jan 31. 2020

이유있는 파격의 조건

연기하려는 학생은 연기를 통해 파격을 보여주려고 하고, 영화를 하려는 학생은 스토리를 통해 파격을 보여주려고 하고, 연출은 하려는 학생은 워크숍을 통해 파격을 보여주려 한다. 특히 어떤 대학 입시의 경우는 갓 쓰고 오고, 한복 입고 오고, 실기시험 중 신체를 노출하고, 독특한 소도구를 가져오기도 한다. 여학생들의 경우 의상에서 튀어 보이기 위해 예쁘고 노출이 강한 옷을 선호한다.


하지만 모두 조급한 마음에서 나온 잘못된 판단이다. 입시의 핵심을 잘못 짚은 엉터리이자, 교수들이 가장 싫어하는 행동들이다. 나는 이 모든 행동을 쇼(Show)라고 정의한다. ‘쇼하고 있네’ 이것이 교수들의 진짜 속마음이다. 예술에 대한 기준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네가 한예종 입시를 지원했든 수시를 지원했든 서울예대를 자원했든 마찬가지다. 예술대학을 지원했다는 말은 네가 한 사람의 독립된 예술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는 뜻이다. 예술가의 가장 큰 매력의 당위성은 독자성에 있다. 개성에 있고 자신만의 매력에 있다. 때론 주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고집불통처럼 보이더라도 어찌 됐든 자신의 색깔과 개성대로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것이 예술가의 매력이자 영혼이다.


파격을 위한 파격이 의미 없는 이유


반대로 예술가의 영혼을 죽이는 최고의 독은 다름 아닌 따라하기다. 그것도 영혼이 없는 따라하기, 무의미한 따라하기, 아이돌 가수 따라하기, 슈퍼스타 K 따라하기 그냥 적당히 가볍게 TV에서 길들여진 문화 따라하기 등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 왜 입시에서 쇼가 통하지 않는지 아는가? 그 쇼가 예술가의 독자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기 때문이다. 그저 따라하기 뿐인 행동이 어떤 예술적인 개성과 매력을 나타낼 수 있겠는가. 앞서 언급한 일부 대학의 연기과 실기 고사 사례들이 보여 주듯이 수많은 입시생이 끼와 예술적 창조성을 헷갈려 한다. 독특하게 튀는 것과 창조성을 혼동하고, 독특한 기행을 예술적 창조성이라고 착각한다. 네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똘끼 있는 행동을 상상해 보라. 하지만 시험장에선 이런 학생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너무나 자주 만난다. 정말이다.


갓 쓰고 오고, 신체를 노출하고, 검술을 하고…. 그러면 독특할 것 같은가? 연극영화 입시 1년만 경험해 봐도 그런 학생들을 흔히 만난다. 파격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하지만 파격만을 위한 파격은 금방 싫증이 난다. 이런 파격이 의미가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모두가 같은 이유로 발버둥 치기 때문이다. 자소서만 해도 그렇다. 독특하고 파격적으로 쓰는 학생들이 정말로 많다. 그러나 입시에서 (특히 한예종 교수들은) 그런 자소서는 무조건 배제하고 본다. 이런 자소서들은 구구절절 영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구구절절 읊어댄다. 하지만 결국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접근이다. 때론 폭력적으로 읽히기도 한다. 내가 영화를 이렇게 좋아하니 너는 반드시 뽑아 줘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실기에서의 다양한 파격 역시 폭력이다. 이렇게 튀니 나를 뽑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강요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너만은 합격해야 할 한 가지 이유


다 좋다. 네게 영화가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소중하고, 네가 얼마나 영화를 사랑하는지는 자소서를 통해 충분히 알겠다. 그런데 감독으로서 뭘 할 수 있을까? 그동안 어떤 준비를 구체적으로 해왔는가? 어떤 남다른 시도들을 해왔는가? 어떤 작품세계를 갖고 있으며, 어떤 작품을 할 것이며, 그 꿈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가? 교수들은 이렇게 물어보는데 많은 학생은 ‘나는 열정이 있어요!’라고 같은 대답을 반복한다는 거다. 학교에서 마련한 기준을 넘어서는 어떤 준비를 해왔는지, 예컨대 언어나 영어나 논술이나 스토리 구성은 어떤 준비를 했는지, 어떤 예술적 시도들을 해왔고, 어떤 도전을 해봤고, 어떤 작은 결과를 스스로 성취해 봤는지에 대한 답은 없다는 것이다. 이 많은 학생을 다 떨어뜨리고 너만은 합격해야 할 이유에 대해 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직 ‘열정이 있어요!’라는 대답밖에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소서가 폭력적이라는 말이다. 교수는 그다음을 원한다. 열정 다음의 구체적인 계획을 원한다는 것이다. 파격은 반드시 그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저 시선을 끌기 위한 파격은 쓰레기일 뿐이다. 그것은 아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과도 마찬가지다. 많은 학생이 스토리를 구성하면서 이유 없는 파격만을 쓰곤 한다. 이유 없이 파격적인 소재, 이유 없는 판타지, 이유 없는 엄청난 비약들…. 교수들이 가장 싫어하는 스토리 구성이다. 근거 없이 오직 비약만을 거듭하는 스토리. 네가 파격을 보여주고 싶다면, 파격 자체에만 주목해선 안 된다. 파격을 보여주기에 앞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 자기 생각과 아이디어, 주장을 관철할 효과적인 도구를 찾다 보니 비로소 파격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쇼가 아닌 이유있는 퍼포먼스를 하라


주장이 먼저다. 그 생각이 보다 발전된 형태와 결과로 드러나는 게 파격이다. 김기덕 감독 영화의 파격이 단순한 주목끌기용 파격이었다면 절대로 높은 평가를 못 받았을 것이다. 피에타의 마지막 장면은 자극적이다. 하지만 누군가 그 장면을 본 사람이 그러더라. 이름답다고. 매우 끔찍한 장면이지만 아름다운 미장센이라고. 어떻게 그 잔인한 장면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한다. 그게 진정한 의미의 파격이다. 이유가 있는 파격이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파격을 위한 파격은 쓰레기다. 입시에서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파격을 위한 파격을 감행하는 것이다. 그게 영화과 스토리 구성이건, 면접이건, 자소서이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너의 파격에 이유가 있을 때, 구체적인 아이디어와 구상이 뒷받침될 때, 그 파격은 비로소 아름다울 수 있다.


쇼를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너는 반드시 퍼포먼스(performance)를 보여주어야 한다. 쇼와 퍼포먼스의 궁극적인 차이는 바로 ‘이유’의 차이이다. 이유 있는 파격이 바로 퍼포먼스다. 파격을 보여주기 전에 그 이유를 찾는데 너의 모든 고민과 혼과 집념을 쏟아부어야 한다. 집념 있는 학생은 기교를 뿌리지 않는다. 진짜 집념이 있는 학생은 온몸이 끼 자체다. 집념 있는 학생은 자신의 창작물로 경쟁하려 한다. 자신의 창작물로 한판 멋진 퍼포먼스를 하려고 한다. 고민도 집념도 대상도 없이 그저 따라 하기에 급급하기에 사람이 쇼라도 하게 되는 것이다. 쇼라도 해야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가 진짜라면 눈에 띄려 하지 않아도 드러날 것이다. 그런 집념과 당당함, 개성과 매력, 주도권을 가진 자신감 넘치는 학생이 되어 보자. 그런 학생이 되어서 입시에 도전하자. 눈에 띄려 하지 말고, 눈에 띄는 사람이 되자. 쇼가 아니라 퍼포먼스이다. 이유 있는 파격을 감행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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