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YA문학 기획연재 3 -존 그린, <알래스카를 찾아서>
"나를 이렇게 변하게 해 놓고 너는 그렇게 죽어버릴 수는 없는 거야" - <알래스카를 찾아서>
현재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성공한 청소년 문학 작가는 존 그린이다. 2014년 그의 여섯 번째 소설 『우리들의 불운한 인생』(The Fault in Our Stars, 2012)이 영화화되어 히트를 친 이래 존 그린은 청소년의 대부라고 할 만큼 커다란 팬 덤을 형성했다. 영화의 원작인 소설은 불치병에 걸린 두 소년 소녀가 그들이 좋아하는 작가를 찾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제에서 사용된 영어단어 ‘결점’(fault)이라는 단어는 암투병 중인 주인공의 처지뿐 아니라 그들이 만난 작가가 알코올 중독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점에서 어느 누구의 인생도 예외 없이 ‘문제 투성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런 주제는 주인공 헤이즐이 불치병에 걸리든 안 걸리든 사람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라면 암에 걸리는 일쯤은 “죽음의 부작용”정도라고 생각하는데서 잘 표현되어 있다.
존 그린은 2005년에 첫 소설 『알래스카를 찾아서』(Looking For Alaska)를 출간하고 이 소설로 미국 도서관 협회상을 수상한다. 그 이후 출간하는 소설마다 청소년 독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는 소설을 출간하기 전부터 형제와 시작한 유튜브 채널 동영상을 통해서 인기를 얻었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최근에도 여전히 수 억 이상의 조회수를 자랑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존 그린은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청소년들에게 다가가 문학과 인문학, 책과 인생에 대해 청소년들이 이해하고 열광할 수 있는 언어와 영상으로 속삭인다. 그는 문학이 글과 언어, 책이라는 형태뿐 아니라 정보화시대의 기술을 통해서도 전달되고 소통될 수 있도록 만드는 우리 시대 몇 안 되는 작가 중 하나이다.
가령 그는 『우리들의 불운한 인생』의 성공 이후 자신의 소설을 읽고 감화된 암투병 중인 청소년들과 그들의 부모들과 정기적으로 인터넷 화상통화를 하고 있다. 이는 책이 출간된 후 독자의 개인적 독서에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읽히고 반복 경험될 수 있는 사례이다. 이런 그의 활동은 보통 작가들이 놓치기 쉬운 책의 ‘후생(後生)’에 다름 아니다.
그의 명성을 확고히 해준 소설들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첫 소설 『알래스카를 찾아서』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논쟁을 야기시켜 왔다.
이 소설은 주인공 마일즈라는 소년이 앨라배마의 한 소도시 인근 사립 고등학교에 기숙을 하면서 겪는 사춘기적 방황과 삶의 의미를 모색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제목의 ‘알래스카’는 미국의 49번째 주 이름을 땄지만 이 소설은 알래스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알래스카’는 마일즈가 만나게 되는 같은 학교 여학생의 이름이다. 소설에서 제공된 디테일에 의하면 부모가 지구본을 돌려서 가장 인상적인 이름을 골라 지은 이름이었다.
알래스카는 어린 시절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 충격과 죄의식으로 정신적 방황과 우울을 겪는 인물로 결국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차를 몰고 가다 사고사를 당한다. 알래스카의 고통과 죽음을 지켜보며 마일즈가 얻게 된 삶과 죽음이 갖는 의미, 그리고 인간 존재의 가치 등이 이 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주제이다.
마일즈는 알래스카와의 만남을 거치면서 자신이 달라져가는 걸 경험하지만, 갑작스러운 그녀의 죽음으로 상실감에 시달린다. 청소년의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비극적 사건을 맞닥뜨린 마일즈와 그의 친구들은 알래스카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추적해가며 알래스카를 이해하게 된다. 그들은 알래스카가 엄마의 기일 다음날 아침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알래스카의 내적인 고통과 방황, 죄의식과 상처를 이해하는 과정은 그녀의 친구들에게 각자 인생의 의미를 성찰하게 할 뿐 아니라 애도의 방식이 된다. 한 등장인물은 이를 '고통의 미로'라는 표현을 쓴다. 누구에게나 있을 고통의 미로, 그 존재를 깨닫는 것만으로도 아마 이들에겐 아득하게나마 희망의 출발점일 수도 있겠다.
이 첫 소설 이후 존 그린은 미국 청소년 소설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샐린저에 비유되곤 한다. 특히 『알래스카를 찾아서』는 샐린저의 소설처럼 몇몇 지역의 학군에서 수업시간에 사용할 수 없는 금서로 지정되는 불명예를 얻게 되기도 했다. 금서가 된 이유는 여주인공 알래스카의 사고가 자살을 암시한다는 점과 고등학생들의 음주 및 성관계, 그 외 비관습적인 기행 등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점 때문이었다.
이런 비판에 대해 작가 존 그린은 청소년 독자들을 성인의 눈으로 재단하거나 낮추어보는 태도를 경계하며 청소년들도 성적인 경험이나 죽음 같은 것들에 이미 노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청소년기의 정체성 형성에 그런 문제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감추거나 금지만 할 수 없다고 한다.
청소년 문학은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 독자에게도 공감을 준다. 현재 미국의 청소년 문학은 기성 문학에서도 중요한 소재들을 청소년의 시각에서 심도 있게 다루는 진지한 장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청소년이 독자라고 해서 소재를 제한할 이유는 없다. 폭력과 섹스, 죽음과 그 외 금기시된 소재들이 최근 청소년 문학에 적극적으로 다루어지는 이유는 단지 상업성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점점 조숙해져 가는 청소년기의 독자들에게 이런 소재들을 감추고 억압하기보다는 드러내 놓고 서사에 포함시킴으로써 좀 더 진지한 방식으로 청소년들이 이 문제들을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유연하고 자유로운 공론의 장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존 그린의 소설은 간략한 줄거리만으로는 담아내기 힘든 삶과 죽음 사이의 인간사에 관한 통찰을 담아내고 있고, 청소년들의 시선에서 그들이 현재 직접 겪고 있는 구체적인 상황들 속에서 그려낸다. 이런 소설들이 청소년들에게는 물론이지만, 부모세대의 성인들에게 까지 공감을 주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물론 소설적 성취가 뛰어나기 때문이겠지만, 한편 현재 청소년들의 문제는 청소년 당사자들 뿐 아니라 그들의 부모들에게도 주요 관심사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최근 ‘헬리콥터 맘’이나 ‘잔디깎이 부모’라는 표현들이 담고 있듯 자식들의 인생에 깊숙이 관여하려고 하는 부모들이 많아지고 있다. 자녀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감정과 심리를 겪는지를 알아야 하고, 따라서 청소년들에게 공감을 많이 얻는 책들을 성인 부모들이 도외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문학 일반에서 뿐 아니라 청소년 문학에서도 도덕주의는 불필요할지 모른다. 문학에 관한 한 도덕은 잠시 숨을 돌려야 한다. 적어도 문학의 영역에서 만큼은 도덕주의의 잣대에서 풀려나 인간사의 심층을 들여다보고 그 어둑하고 때로는 신비한 영역을 탐색할 필요가 있다. 청소년 문학이 어떠해야 한다는 기준은 어쩌면 우리 시대에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지 모른다. 혹자는 아동문학은 기실 아동 독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성인 독자를 위한 것이라고도 한다.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를 읽는 청소년들보다 여전히 그 소설을 떠올리고 다시 펼쳐보는 성인 독자들이 더 많다. 그 이유는 청소년 문학이 성인 독자에게는 과거의 그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계기이자, 인생을 돌아보며 현재의 삶을 투사해서 삶의 의미를 재확인하거나 재규정하려고 하는 시도 때문이 아닐까.
『우리들의 불운한 인생』의 주인공 헤이즐은 독서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때로 우리는 책을 읽어. 그 책에서 이상한 종교적 열정 같은 것을 느끼게 되지. 그러면 마치 모든 살아있는 인간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이 망가진 세상이 결코 회복될 수 없다는 확신에 차게 되곤 해. 그리고 그런 책이 있지... 너무도 특별하고 소중해서 남들에게 그 책에 대해서 얘기해줄 수가 없어. 정말 나만이 알고 있는 책이라서 사람들에게 떠들어대고 나면 마치 나의 감정이 배신당한 느낌이 드는 그런 책 말이야.”
우리 각자 이런 책 한 권쯤은 간직해야 하지 않을까. 이 소설 <알래스카를 찾아서>는 누군가에게 - 청소년은 물론이고 성인 독자에게도 - 지금 분명 그런 책이 되고 있다.
나를 변화하게 해 놓고 훌쩍 떠나버린 그 누군가의 자리에 이 책이 놓여있을 것이다.
*표제사진은 알래스카의 마타누스카빙하를 어느 가을날 찍은 것입니다.
**이글은 문예지에 실린 미국문학기획연재의 일부를 수정, 보충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