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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버트 Mar 29. 2022

담뱃굴 생각

지금은 수몰되어 물 밑으로 사라진 고향의 옛집, 우리 집은 동네 초입 저 멀리서도 알 수 있었다. 담배를 쪄서 말리는 담뱃굴이 하늘 높이 우뚝 서서, 바로 여기가 네 집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당시 그 정도 높이의 건물은 본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흙과 나무로 만들어진, 문을 열고 들어서면 컴컴하던 담뱃굴은 무섭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 작은 창으로 햇빛이 비치기라도 할 때는 신비롭기도 했다. 내가 자라나는 동안 황토색의 그 건물도 성한 모습에서 점차 허물어져 갔다.


여름에만 일을 하는 우뚝 선 붉은 건물은 겨울에는 그저 바람을 맞으며 서있을 뿐이었다. 우리에게 담뱃굴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때는 그런 겨울날 놀이를 할 때였다. 동네 아이들이 모여 술래잡기를 하거나 깡통차기를 할 때면, 나는 술래가 찾지 못하도록 담뱃굴로 숨어 들어가, 나만 아는 공간에 숨죽이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그 큰 공간에 혼자 있으면 무섭기도 했지만 언제든 뛰어나갈 수 있었고 필요할 땐 나를 숨길 수 있었다. 칼바람이 부는 날은 그 안에 들어가 친구들과 속삭이며 놀기도 하고, 담뱃굴이 막아주는 바람을 피해 양지바른 곳에 앉아 겨울날 피어난 이끼를 따다가 풀 숨기기를 했다. 땅따먹기, 구슬치기, 고무줄놀이, 자치기 그리고 오징어 가세라고 불리던 놀이까지, 높다랗게 서서 나이를 먹어갔던 커다란 담뱃굴 근처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는 날이 없었다. 


가끔 아버지를 따라 혹은 궁금해서 작은 문을 열어 본 적이 있다. 꽉꽉 들어차, 사람 없는 곳에서 그들의 시간에 따라 꼬박꼬박 숨을 쉬며 변해가는 담뱃잎들을 보면서, 내가 알 수 없는 말들이 그들 사이에 오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싱싱한 초록잎 치마로 엮여 걸린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같은 색깔로 물들어 갈 수 있었을까 싶어서다. 끝이 보이지 않던 천정 높이에서부터 내 키가 닿는 곳까지, 빽빽하게 줄지어 늘어선 담뱃잎들은, 마치 그것이 그들의 운명인양 시간을 따라 살면서 색깔에 어울리는 향기를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을 한가득 모아 담뱃잎을 엮어 건 그날부터, 아버지는 거의 담뱃굴 아궁이에 붙어살다시피 했던 것 같다. 더운 여름날, 뜨거운 불가마 앞에서, 시뻘건 불이 활활 타오르도록 석탄을 던지고 또 던지던 모습이 기억난다. 도공이 혼신의 힘을 다해 가마의 불을 조절하면서 작품을 탄생시키듯, 아버지는 가끔 뜨거운 재를 꺼내 식혀가며 시퍼런 담뱃잎이 눈부신 샛노란색이 될 때까지 불을 돌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동생과 나는 아궁이가 있는 둔턱 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리드미컬하게 아버지가 아궁이에 탄을 던져 넣는 모습을 구경하곤 했던 것 같다. 그러니 지금 내가 그 장면을 기억하지 않겠는가. 만약 내가 아버지라면 지금 그 일을 한다면 어떤 기분일지 모르겠다. 아버지와 같이 결코 그런 헌신적인 일을 하지는 못할 것 같지만, 그 당시 아버지는 묵묵하게 할 일을 하셨던 것 같다. 


어느 날인가 동생이 까불고 놀다가 타 다남은 재를 꺼내놓은 위에 넘어졌었나 보다. 그날의 기억과 그날 이후의 기억은 이상하게도 남아있지 않다. 워낙 어렸을 때였는 있었던 사고라서 그런지 알 수 없다. 나와 함께 있다가 그랬는지 아니면 혼자 그랬는지, 나 때문에 그런 건지 아니면 나와 상관이 없는 사고였는지. 그렇지만 지금도 남아있을 내 동생의 화상 입은 허벅지를 보면, 다친 게 분명했다. 지금이야 의료기술이 발달해 지독한 화상도 전문병원에서 치료하곤 하지만, 우리의 어린 시절에는 병원은 버스로 약 한 시간을 달려야 있는 포항에 나가야 있었다. 아마도 그 날은 동생과 부모님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었으리라.


사람들은 가늘고 긴 종이에 말린 담배를 피우고, 때론 시가를 피우기도 한다. 그 담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는 담배는 모판에서 초록색으로 싹이 터서, 규칙적으로 구멍이 뚫린 이랑에 한 그루씩 심어져 자라다가, 이윽고 더운 여름날이 되면 마음껏 자란 그 잎들이 사람들 손에 의해 뚝뚝 뜯어졌다. 바람 없이 무더워야 더 싱싱하게 자랐던 것인지 담배밭에서 이파리를 수확하는 날은 유독 찌는 더위였던 기억이 난다. 잎자루에서 묻어나는 그 귀찮고 번거로운 진을 무릅쓰고 사람들이 져 나른 그 시퍼런 이파리들은 부지런한 손들에 의해 가지런히 엮였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아는 그 시간을 지나 우리 손을 떠났다.


내가 본 담배는 식물이었다.  그 식물의 잎에 무슨 성분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렸을 적 연초 잎에 코를 대 보면 좋은 향기가 났었다. 식물 잎을 말렸으니 그랬을 것이다. 거기다 아버지의 땀과 시간까지 배여있었으니 더 아름답고 향기로웠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중독성이 강한, 금연을 권장하는 물건이 되었다. 사람들의 손을 거치는 동안 무엇을 얼마나 보태어 담아 그런 모양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 기억 속의 담배는 초록색으로 싹이 터서 우리들의 뜀박질과 함께 이랑으로 옮겨졌고, 무성하게 자란 잎을 보면서 부모님이 좋아하셨던 키 큰 식물이었다. 잎 하나를 따 내면 키가 자라면서 또 다른 잎을 키워내던, 부모님에게는 드물게 목돈을 만들어 주던 특용작물이었다.


요즘은 담배를 재배하는 곳을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기억 속에서만 붉은 흙과 짚, 그리고 나무로 만들어진 높다란 건물이 산다. 그 아래 달려있던, 키에 비해 작은 문,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계절에 따라 다르게 살아갔던 공간, 친구들이 소리치며 달리던 모습도 그려진다. 그리고 마침내 뜨거운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더 뜨겁게 활활 타는 불을 향해 연거푸 검은 탄을 던지던 젊은 아버지가 거기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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