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가지 인생의 법칙] 이 일깨워준 인생을 바꿀 한 가지 사실
나는 부모님에게 ‘착한 사람’ 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다.
누군가와 말을 할 때에는 항상 주의깊게 듣고 공감해야 한다. 사소한 부탁이라도 성심성의껏 도와준다면 언젠가는 크게 돌아올 것이다. 남이 부탁하는 것들은 왠만하면 들어줘라. 상대방에게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아까워해서는 안된다. 항상 주위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받아야 한다. 절대 친구는 가려서 사귀면 안된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귀에 딱지가 얹도록 들은 조언들 중 극히 일부이다.
읽고 들은 것들은 이런 생각을 확신으로 바꿔놓았다.
어린 시절 읽은 수많은 위인전 속 위인들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말한 '착한 사람' 의 전형이었다. 자신보단 남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어줄 수 있는 이타심, 곤경에 빠진 남을 아무 대가 없이 돕는 성실성, 그리고 더 나아가 큰 일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는 희생 정신까지. 나는 점차 그들의 삶에 깊게 빠져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착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올바른 방법임을.
'착한 사람' 의 기준이 정해지니 '나쁜 사람' 은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남의 안위는 생각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 일의 경중을 따져가면서 선택적으로 남을 돕는 사람들.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돕지 않는 자들. 사소한 부탁임에도 NO를 외치는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들. 남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사람들. 다양한 집단에 속하면서 그런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들을 멀리 하게 되었다. 자기만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니까. 나는 절대 저런 사람들처럼 되지 않을 거니까.
그렇게 나는 20년간 '착한 사람' 으로 살았다.
실제로 나는 20년 간 '착하게' 살아왔다. 내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살았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내 시간을 써서라도 기꺼이 도와주었다. 힘들어하는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공감해주었다. 거의 대부분의 부탁에 YES를 해주었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나의 평가는 호평 일색이었다.
"현석이는 진짜 착한 것 같아. 어떻게 남을 그렇게 도와줄 수 있니?"
"현석이는 나중에 복을 받을 거야. 이렇게 착한 사람은 내 평생 처음 본다."
그렇게 내 인생은 성공적으로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이대로만 가면 나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오만한 상상에 빠지기도 했다.
재앙은 항상 사소한 사건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 누군가를 바로잡고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오히려 그를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 12가지 인생의 법칙
가을의 어느 날, 연락이 왔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1년 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였다. 사실 친구라 부르기에도 애매했다. 그는 소위 말하는 자기밖에 모르는 '나쁜 친구' 였고, 나는 졸업 이후엔 그 친구에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연락을 하지 않았던 터였다. 갑작스럽게 걸려온 전화였기에, 무심코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현석아, 잘 지내지? 나 XX야. 혹시 시간 있어?"
부탁하는 투로 대화의 포문을 연 그의 목적은 부탁이었다. 자신이 이번에 아주 중요한 조별과제를 앞두고 있는데 주변 친구들 중 PPT와 발표를 잘하는 친구가 나 밖에 없어서 연락했다는 것이다. 보내준 자료를 살펴보니 얼핏 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과제였다. 당시에 집중하고 있었던 개인적인 프로젝트가 있어 거절하려 했는데, 그 친구의 한 마디에 나는 무심코 또 YES를 말해버리고 말았다.
"현석아, 나 이거 못하면 진짜 죽어. 너만큼 착한 친구 주위에 없다 진짜.."
그래 맞다. 나는 착한 사람이었지.
찬찬히 생각해보았다. 특정한 시간대에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개인시간을 조금씩 할애한다면 그 친구를 도울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더욱이 나의 분야와 다른 부분이라 배움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을 터였다. 내심 나의 도움으로 그 친구가 높은 점수를 받아 기뻐하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그 친구와 만나서 PPT의 설계와 대본 작성에 도움을 주기로 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행동이 당신의 동정심과 선의를 과시하고 주변 사람들 관심을 받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순수한 마음으로 도움을 바라는 사람과 도와주려는 사람을 이용하려는 사람을 가려내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곤란한 상황에 놓인 사람 본인도 자신이 순수하게 도움을 원하는지, 아니면 도와주려는 사람을 이용하려는지 구분해 내기가 어렵다.
처음에는 분명 동등한 입장에서 논의를 시작했다. 내가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얼개를 짜주면, 그 친구는 뼈대에 맞춰 내용을 채우는 형식이었다. 첫 날은 무난하게 끝났다. 서로 힘을 합친다면 정말로 좋은 작품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데, 날이 가면 갈수록 뭔가가 이상했다. 그 친구가 의견을 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전공 내용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얼개를 넘어 내용을 채우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발표를 해야 할 당사자가 내가 채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연습 내내 물어보기만 했다. 심지어 자기가 잡아놓은 약속 시간을 자기가 지키지 않는 어이없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는 기어코 마무리까지 그 친구와 함께했고 그 친구는 마지막까지 '너는 정말 최고의 친구야.' 라는 말을 연발했다. 정말 너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투의 감사의 말도 사이사이 덧붙여 가면서.
발표 당일이 되었고, 그 친구는 끝나면 밥 한 번 산다는 말을 남기고 갔다.
예상보다 그 친구의 과제에 시간을 많이 쏟게 되어, 결국 나는 개인 시간의 대부분을 포기한 채 미처 끝내지 못한 프로젝트를 후닥닥 해치우기 시작하였다. 비록 쉴 때 제대로 못 쉬긴 했지만, 그 친구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기쁨과 나에게 갖게 될 긍정적 이미지를 생각하니 힘이 났다. 그렇게 발표 당일 날 밤, 그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문자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아.. 발표 망쳤다. 너가 넣은 내용 이해 못해서 교수님 질문에서 깨짐. 그러게 왤케 어려운 내용 넣었냐.. 점수는 어찌저찌 나왔는데 교수가 후속 과제 때 우리 주시한댄다. 이번에 넣은 거 걍 복붙하면 되니까 너가 PPT좀 만들어줘라. 담에 울 학교오면 밥 한 번 살게~"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보이고 싶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구해주려는 사람 상당수는 순진무구하거나 허영심과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거나 둘 중 하나다.
나는 분노했다. 처음에는 그 친구에게 분노했다. 기껏 투자한 내 시간과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내가 기대했던 것들은 단 1%도 얻을 수 없었다. 그 친구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다다르자 이젠 나에게 그 열기가 미치기 시작했다. 나는 대체 왜 도움을 받고도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깊은 도움을 주었는가. 알고 보면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착한 사람이 아닌 그냥 부탁하는 대로 다 들어주는 호구로 보이는 건 아닌가. 그리다 문득 갑자기 부끄러움이 몰려들었다. 나는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부탁을 들어준 게 아닌, 그렇게 보이기 위해 부탁을 들어준 것이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나는 결코 '착한' 사람이 아니었으며, 그렇게 될 필요도 보일 필요도 없었음을.
" 나는 지금 나의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있는가? "
세상을 더 좋게 만들어 가려는 사람을 곁에 두어야 한다. 우리에게 유익한 사람하고만 관계를 맺는 것은 이기적인 행위가 아니라 바람직한 행위다. 우리는 그들 덕분에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고, 그들도 성장하는 우리를 보고 좋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조던 피터슨 교수의 [12가지 인생의 법칙] 3챕터를 읽으면서 그 때의 기억이 다시금 떠오른다. 사실 그 때저런 사건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나는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어렵고, 인간관계를 끊는 것은 더더욱 어렵고, 끊을 만한 사람들을 구별해내는 것은 훨씬 어렵다. 하지만 5년 전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그 때의 나는 피해자를 옆에 두고자 했었다. 내가 아니면 구제가 되지 않는 그런 사람들. 나의 '착함' 을 입증하는 증거의 일부같은 사람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동업자를 옆에 두고자 한다. 서로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며 공동의 목표를 위해 기꺼이 어깨를 걸 수 있는 사람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그런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이따금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는 자기반성과 함께.
더 이상 허영심을 위해 누구에게나 도움을 적선하는 '싼 놈' 이 되지 않을 것이다.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는 '쎈 놈' 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