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맞고, 그래서 더 어려운 회의

전략기획 팀장 일기 시즌 2 - 3편

by 초연

오전 아홉 시, 투자심의 회의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은 아무 결정도 쉽게 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자료만 봐도 알 수 있다.

예상치보다 2% 낮은 영업이익률,

계약 조건 협상 중인 전방 업체,

베트남 리스크 반영 여부를 두고 팀별 의견 차이.


모든 팀은 ‘맞는 말’을 한다.

그게 문제였다.

기획회의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은

누군가 틀렸을 때가 아니라,

모두가 옳을 때다.


---


회의는 예측했던 대로 시작됐다.


“팀장님, CAPEX 다시 잡는 게 맞지 않습니까?”

“투자 늦추면 생산 라인 스케줄 다 밀립니다.”

“지금 시장 상황이 안 좋아서 효율화가 먼저죠.”

“효율화? 그건 내부 사정이잖아요. 고객은 공급만 보는데?”


서로 말의 결이 다른 것이 아니라

관점만 다를 뿐이어서 그 차이가 더 깊었다.


나는 노트북을 열고 조용히 계산기를 두드렸다.

모든 팀의 주장을 각각 모델에 넣어보면 결과는 이렇다.


- 투자를 늘리면: 향후 2년간 현금흐름 압박

- 투자를 줄이면: 고객 대응력 저하

- 효율화 먼저 하면: 단기 실적 개선, 구조는 여전히 취약

- 유지하면: 모두 불만, 누구도 만족하지 않음


“지금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답’이 아니라,

각 선택의 대가를 인정하는 겁니다.”


회의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


CTO가 물었다.


“그럼 당신이 생각하는 최적 선택은 뭔데요?”


“단기 성과를 포기하더라도,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선택이 필요합니다.”


“… 구체적으로는 요?”


“CAPEX를 30% 줄이되 멈추지 않습니다.

투자를 ‘지연’시키는 겁니다.

그 사이 고객과 1차 조정 회차를 넣고,

내부 효율화는 효과 큰 모듈부터 들어갑니다.”


영업본부장이 말했다.

“그럼 완충구간은 생기겠네.”


생산본부장도 말했다.

“대신 6개월 뒤엔 확정해야죠.”


“그렇습니다.”


인사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구조조정 시나리오는… 유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사람을 건드리는 선택은 마지막 옵션으로.”


회의실이 잠시 누그러졌다.


---


복도로 나오는데 생산본부장이 말했다.


“팀장, 오늘 의견 좋았어요.”

“전체 조율 차원에서요.”

“아니, 사람 건드는 건 마지막이어야 한다는 말.”


그는 커피잔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 팀 애들이 불안해하더라고. 그래서… 고맙습니다.”


“저도 사람이라 그래요.

제가 무섭지 않은 선택부터 먼저 하려는 거죠.”


그는 크게 웃으며 엘리베이터로 사라졌다.


---


퇴근 후, 나는 오늘의 회의를 정리했다.


“모두가 옳을 때,

결정은 더 외로워진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 외로움을 견디라고 있는 자리,

그게 전략기획팀장이다.”


화, 목, 토 연재
이전 02화숫자 뒤에 숨어 있는 얼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