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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Jul 28. 2021

1일차

7월 27일(화)

밀접 접촉자


지난주 금요일, 회사 다른 층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그래서 일요일에 전 직원이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다행히도 음성이 나왔다. 그래도 재택근무는 그래도 할만하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내가 근무하는 층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확진자와 같이 밥을 먹거나 회의 등 대화는 하지 않았기에 밀접접촉자는 안 되겠지 싶었다. 밀접접촉자 기준인 2m 내 밀폐된 공간에 있거나, 밥을 같이 먹거나 등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보건소의 자체 기준에 따라 자리가 가까웠다는 이유로 확진자가 지정되어 자가 격리 대상이 됐다.



원망


역학 조사 전까지만 해도 '바뀔 수도 있겠지'라는 약간의 희망이 있었지만,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먼저 회사 인사팀에서 전해왔고, 곧이어 보건소에서도 전화가 걸려왔다. '당신은 밀접접촉자'이며, '생활과, 식사와, 화장실을 분리'해야 하며, '이제부터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라고 알려왔다. 전화기 넘어 들여오는 목소리는 피곤했고 애써 힘내 말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감사합니다'라고 할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원망이 밀려왔다. 예정된 인터뷰는 뒤로 밀렸고, 약속들은 깨졌다. 깨진 약속은 3주를 기다린 약속도 있었고, 혼자만의 시간도 있었다. 다른 이에게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올초부터 계속된 우울한 나날을 겨우 건널 수 있게 해주는 징검다리 같은 것들이었다. 일도 문제였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또 얼마의 내 삶을 '대충' 넘겨야 할까. 대충 해도 상관없는 이 직업이 싫다. 결정적으로 내가 생활하는 거실에는 에어컨이 없다. 더위를 많이 타지 않는 체질임에도, 생산성은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맥북은 뜨겁고, 블루투스 키보드는 회사에 있다. 이런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차자, 다시 원망이 솟아났다. 확진자에 대한 원망, 개인의 상황을 신경 쓰지 않는 회사 조직에 대한 원망, 의미 있는 삶을 살지 않고 있지 않다는 나 스스로에 대한 원망이 커졌다. 



조울증


그래서 조울증이 심한 날이었다. 일을 하다가도 단체방이나 지인에게 시덥잖은  농담을 했고 의미 없는 이모티콘을 날렸다. 그러다가도 이 사람들은 내가 말 걸지 않으면 이제 평생 대화할 일이 없겠지 싶어 우울해졌다. 그러곤 다시 돈을 벌자며, 일을 하다가 더워서 샤워했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메일함을 열었다 닫았다, 카톡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정리


책상 정리를 했다.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21인치 모니터가 답답했고, 발에 걸리는 데스크톱은 짜증 났다. 차 버리고 싶었다. 겨우 마음을 가다듬고 선을 빼고 모았다. 쌓인 먼지도 닦았다. 책상도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격리기간 동안 남겨두기로 했다. 컴퓨터를 담아 둘 우체국 박스를 찾느라 베란다에서 한참을 땀을 냈다. 그 와중에 치우지 못하고 걸어둔 롱 패딩이 눈에 들어왔다. 저것도 치워야 했다. 짜증 났다. 그때쯤 보건소에서 연락이 왔다. 거주 지역 보건소로 내 등록 정보는 이관 됐고 구호물품이나 키트를 보내주겠다는 전화였다. 자가격리를 위한 앱도 곧 보내니 설치해달라는 연락이었다. 




조직은 환경이 변한 것과 상관없이 성과를 요구한다. 조직은 곧 사람일 테니, 말단 직원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한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나는 그 조직에서 그리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까지 이른다. 맞는 것 같다. 이번을 계기로 내 삶이, 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의미 있는 곳에 쓰고 싶다. 아니면 돈이라도 많이 버는 곳에. 확실한 건 조만간 직업을 바꿀 것 같다. 이번 자가격리 기간 동안 고민을 많이 해야겠다.



목표


무너지면 안 된다고 수없이 되뇌었다. 우선 목표를 세웠다. 요즘 체력이 부쩍 떨어졌다. 근육이 줄어든 것 같다. 몸은 정신을 따라가는 것 같다. 그래서 격리기간 동안 살을 찌우기로 했다. 원래 열이 많은 몸인데 날까지 더우니 몸이 축난다. 잘 먹어야겠다. 지금이 64.4kg이니까 69kg까지 올려야겠다. 오래전에 사둔 케틀벨과 아령이 있어 다행이다. 동생에게 링 피트도 빌렸다. 생각보다 쉽지 않다. 



계획


내일은 계획을 좀 세워봐야겠다. 일도 좀 해야 한다. 확실히 환경이 개인을 압도한다는 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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