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벽이 되지 않으려면?
이제 콜택시라는 말은 거의 쓰지 않습니다. 심지어 "택시 불러"라는 말보다 "카카오 불러"라고 하는 게 더 빠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터넷 플랫폼 기업인 카카오가 모빌리티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이유는 택시 때문입니다. 카카오는 2015년 카카오택시, 2017년 카카오모빌리티 출범 이후 '택시'라는 공고했던 영역을 자신들의 비즈니스로 만들어냈습니다.
어쩌면 택시 업계의 이러한 사례는 법 업계의 미래일지도 모릅니다. 우선 사업 여백은 충분합니다. 카카오가 등장하기 전 택시 기사들이 사납금, 택시 총량제 등 문제를 제기하며 생업에 대한 수익 보장을 사회적으로 요구했습니다. 문제 해결 관점으로 볼 때, 기술 기업이 플랫폼으로 접근한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습니다. 물론 택시 업계가 원한 방향은 아니었겠지만요.
지금의 법조계 역시 택시업계의 그때와 상황은 유사합니다. 현재 법조계는 수임료의 심리적 최소선이라는 300만원 선 붕괴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수도권 지역 사건의 수임료는 330만 원 수준이 관행이었습니다. 물론 수도권 외 지역은 이미 200만원까지 떨어진 오래입니다. 법조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게 아닌 이상, 제공 가격의 하락은 점점 '법 서비스'가 특별한 영역이 아닌 일상의 한 부분으로 흡수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게다가 소액 사건이나 약식기소처분의 경우, '나홀로 소송'을 준비하는 의뢰인도 많아졌습니다. 변호사 없이도 수집할 수 있는 정보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와 소송 후기 정보를 통해 변호사 선임 없이 최종 확인만 진행합니다. 대법원에 따르면 변호사 선임 없이 재판에 임하는 '나홀로 소송'은 전체 민사소송에서 70%, 형사공판 1심에서도 50%가 넘는 상황입니다.
즉 법의 일상 생활 영역으로의 편입, 관련 데이터의 공개 확산, 접근성에 대한 니즈 등 요소들로 IT 서비스 혹은 플랫폼이 치고 들어갈 환경이 만들어진 셈입니다.
사실 이미 IT는 우리 법 시장에 깊숙하게 침투해 있습니다. 앞서 홀로 소송 준비하는 의뢰인이 늘어난 것처럼, 재판 이전까지는 변호사 없이도 충분히 진행 가능한 정도의 법 자료를 확보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법률 데이터 플랫폼 '엘박스'는 약 30만 건에 달하는 법률정보와 판례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합니다. 물론 창업 목적은 변호사의 업무 지원 툴이었지만, 일반 의뢰인 역시 쉽게 접근 가능합니다. 기존 법 관련 기관에서 법조인만이 활용할 수 있었던 보이지 않는 벽을 없앤 것입니다.
판례 검색 서비스인 '케이스노트'에서는 약 26만 건의 판례를 검색 · 열람할 수 있습니다. 또 번거로운 판결문 신청까지 대리해줍니다. 케이스노트 측에 따르면 약 15만명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상급심 위주의 공개 판례 중심이기 때문에 일부에 불과하지만 필요가 커지고, 재판 공개 원칙에 대한 디지털 전환 수용 흐름에 판결 데이터 공개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국의 경우, 연방법원에서 선고된 모든 판결문을 즉시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습니다.
또 AI 자연어 기술이 발전할수록 개인정보 비식별 처리 기술 또한 발전해, 법원이 우려하는 판례 내 개인정보 보호 문제 역시 해결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네이버 검색창에서 판결물을 읽을 수 있는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플랫폼이 법조계에도 생태계를 키워가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기업이 변호사 소개 플랫폼 '로톡'입니다. 변호사가 로톡 플랫폼에 자신의 경력이나 전문 분야를 광고 방식으로 올리면, 사용자는 로톡을 통해 변호사를 확인하고 쉽게 접촉하는 구조입니다. 로톡은 인맥을 찾거나 발품을 팔지 않고도 자신의 상황에 따라, 또 해결 사례를 플랫폼에서 확인하는 동시에 수임료 등 의뢰인으로선 불안한 부분까지 해결해준 셈입니다.
반대도 심했습니다. 이에 변호사협회는 로톡이 사실상 변호사가 아니면서 변호사와 의뢰인을 중개하는 불법 사무장 로펌이라며 변호사법 위반을 주장했습니다. 또 후일 독점적 플랫폼이 되었을 때, 변호 광고 비용을 올리는 등 수익 창출에 나서 법률시장이 자본에 종속될 수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법무부는 지난 24일 로톡이 구체적인 사건과 관련해 특정 변호사와 이용자를 직접 연결하는 것이 아닌 단순한 변호사 광고 플랫폼이라고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법무부는 "로톡 서비스는 이용자에게 특정 변호사를 소개하고 대가를 취득하는 방식이 아니다"며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용자가 로톡에서 자신이 판단해 변호사를 결정하는 것은 불법 중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변호사협회 측은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 등 지속적인 대응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그러나 지난 2016년에도 리걸테크 사이트 4곳을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으나, 검찰은 모두 무혐의(증거불충분)로 처분했습니다. 또 이와 유사하게 미국의 온라인 법률 자문 서비스 '리걸줌(LegalZoom)'도 변호사법 위반문제로 소송을 진행했으나 무죄를 받은 바 있습니다.
이상갑 법무부 법무실장의 브리핑은 지금의 리걸 테크 시장의 현재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상감 법무실장은 "법률플랫폼 서비스는 리걸테크 산업의 일환으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자 변화"라며, "정보의 비대칭 등으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법률서비스 시장에서 법률플랫폼은 국민들의 서비스 접근성과 편리성을 향상시켰다"고 설명했습니다.
심지어 변호사를 구독하는 서비스도 생겼습니다. 법률사무소 변호는 변호사 구독 서비스 ‘변호’를 개시했습니다. 구독자는 월 4만 9000원 가량을 내면 수임료 부담 없이 간단한 생활 법률 자문은 물론, 각종 소송 대리까지 관련 법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변호 서비스를 소프트웨어 서비스 개념으로 전환한 것입니다.
과거 승차거부, 질 낮은 서비스 등으로 불만이 높았던 택시 업계에 대한 대중 인식은 부정 일색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서울시의 '2020년 택시서비스 시민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2020년 택시 만족도는 역대 최고점을 기록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부당요금, 정확한 거스름돈, 영수증 발행 등이 요금결제 분야가 가장 높은 만족도를 보였습니다.
이러한 택시 업계에 대한 인식의 긍정적 변화가 모두 카카오 때문이라고 판단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10명 중 4명이 택시 앱을 이용해 택시에 승차하는 상황에서 영향은 준 것은 분명합니다.
오는 9월부터 법무부는 '리걸테크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해 대책 마련에 나설 예정입니다. 로톡 등과 같은 갈등을 예방할 법령과 제도 개선, 나아가 리걸테크 관련 쟁점 전반을 논의하고 발전된 사례를 연구할 방침입니다. 또 공청회 등 의견 수렴 절차를 통해 변호사 업계 등의 목소리도 반영할 계획이라 전했습니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논의를 국토교통부 주도로 개정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가 나오기까지 약 5년 간 지켜본 바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택시 기사 분신, 서비스 중단, 국회 대립 등 수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카카오 등 플랫폼 중개 사업자가 제도권에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과연 법조계에서의 플랫폼 논쟁은 어떻게 진행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