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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러 Sep 13. 2023

1분만, 1분만, 1분만

그렇다. 이건 1분 늦어서 일을 그르친 이야기다.

계획은 2시 출발이었다. 홍천 산천어 파크골프장에서부터 강남 센트럴시티 터미널까지는 1시간 45분. 퇴근 시간이 아니니 막힌다고 해도, 많이 잡아야 1시간 미뤄질 뿐이었다. 최대한 잡아도 이동 시간은 3시간 안쪽이었다. 휴게소를 들릴 순 없더라도 버스 출발 시간인 5시에는 늦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진짜 출발 시각은?? 2시 1분이었다.


일반적으로 파크골프는 18홀 도는 데 9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골프가 4~5시간 정도인데 느낌이 이상하다. 아무튼 엄마의 티업 시간은 딱 12시이니, 90분 경기하고 대기 시간 더해도 100분이면 마무리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첫 번째 변수가 발생했다. 사라질 줄 알았던 비구름은 점점 어두워졌고 비는 멈추지 않았다. 코스를 돌고 있던 선수들의 타수는 점점 많아졌고 그만큼 플레이 시간도 늘어졌다. 게다가 대기 시간도 길어졌다.


마지막 18홀, 엄마의 볼이 홀컵 안으로 들어간 시간은 1시 50분이다. 점수를 제출하고 빠르게 정리하고 출발했지만, 그때의 시간은 2시에서 지난 2시 1분이었다. 그때 티맵에 찍힌 터미널 도착 시간은 4시 12분이었다. 비가 오는 바람에 서울 쪽에서 막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은 여유롭다.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열심히 달리던 그때 딱 공사 안내표지가 보인다. 터널 공사 중이다. 돌아가야 한다. 우회하자 티맵은 10분을 더했다. 도착 시간은 4시 25분이다. 괜찮다. 그렇게 고속도로로 들어왔다. 복병은 고속도로에 있었다.




사고가 난 것 같다. 정체 중이라는 레드라인이 상당히 길다. 빠지지 못하고 앞뒤로 막혀버리면 시간을 더 늘어갈 것이다. 다행이었을까. 아직 IC 지나지 않았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트럭 앞으로 들어가 겨우 정체라인을 빠져나왔다. 청평으로 해서 덕소삼패로 들어와야 한다. 2차선 도로, 괜찮을까.


불안한 예감은 역시 어긋나지 않는다. 맨 앞 차는 도대체 뭘 하는 것일까... 지루하고 답답한 차들의 한 줄 서기가 20분째 이어졌다. 겨우 다시 고속도로 진입했을 때, 터미널 도착 예정 시간은 4시 39분. 그래도 사고 정체 구간은 지났다. 이제 강남 반포만 잘 진입하면 된다. 제시간에 잘 도착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하지만. 빗줄기가 거세졌다. 퇴근 시간 전, 비 오는 날 올림픽대로는 아비규환이다. 막히고 끼어들고 막히고 끼어들고 양보는 없고 막히고... 그랬다. 나는 갇히고 말았다. 늦어도 된다고? 안된다. 5시 차는 진도 막차다. 이걸 놓치면 엄마는 목포로 가셔야 한다. 또 아빠가 데리러 오셔야 한다. 시골길 야간 운전이라니, 내가 다 불안하다. 갈 수 있다. 곧장 강변북로로 옮겼다. 그나마 북로는 괜찮다.


하지만 다시 올림픽대로로 와야지. 영동대교를 건너와 겨우 반포로 들어섰다. 반포다. 반포에 왔다. 도착 예상 시간은 4시 49분이다. 도착할 수 있다. 도착할 수 있다. 또 한 번의 하지만,,, 내가 반포의 교통 상황을 간과한 것이지. 택시도 많고 차선도 많고 시간은 없다.




이제 희망고문을 시작할 때다. 고속버스라면 조금 기다려주지 않을까? 예매한 사람보다 자리에 앉은 사람이 한 명 부족하잖아?! 5분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1~2분은 기다려주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어쩌면 버스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건물 안 주차장까지 갈 순 없겠지만, 건너편에 댄 후 내가 달려가서 버스를 잡으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엄마가 와서 타면?! 그러던 생각에 잠겨 있던 순간 신호가 바뀌고, 마침 횡단보도 앞 건물 주차장에 자리가 있고 얼떨결에 차를 대고 내렸다. 4시 58분이다. 달려가면 된다. 비를 다 맞았다. 그래도 달렸다. 횡단보도 신호는 왜 이렇게 길고 긴가. 그린라이트 떴다. 달렸다! 센트럴시티 입구를 들어가 3번 승차홈으로 간다. 그때가 5시 1분...


버스가 없다. "방금 갔는데..."... 옆 버스를 승차하던 분이 위로 섞인 말을 건넨다.."정말 방금까지 있었는데". 그랬다. 결국 놓쳤다. 놓쳤다는 상황을 인정해야 했던 시점까지도 시간은 5시 1분이다... 1분만, 1분만, 1분만.


요즘 되는 일이 없다. 더 좋은 기회를 위한 것이라고 애써 위로하지만, 계획했고 준비했고 기대했던 일이 되지 않는 건 짜증 나는 일이다. 말로는 실패는 당연한 거라 이야기하지만, 마음으로는 매번 힘들다. 오늘은 1분이, 이 운명 같은 1분이 나를 피곤하게 한다. 인생은 참 두렵고 외로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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