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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벗 Oct 29. 2021

영업 뛰는 스타트업 연구원

나만의 한 가지를 만드는 고민 

"지금 알벗씨 나이면 굉장히 중요한 시기예요. 앞으로 나만의 무언가 한 가지를 만들기 위해 시간 투자를 잘해야 돼요. 앞으로는 안정적으로 가야 할 거예요."


나는 영업 뛰는 스타트업 연구원이다. 정확히 말하면 오늘이 첫 영업이었고 이전에 일했던 회사에서 클라이언트였던 분이라서 난이도가 비교적 쉬운 일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진심으로 두드리면 문은 열린다.' 지난 회사에서 에디터로 일하면서 몸으로 익힌 진리다. 내 성격과 성향 탓에 나와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일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었다. 사람이 많은 자리, 억지로 정이나 과거의 연으로 엮인 자리는 지금도 싫어한다. 그러나 에디터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 '글 하나 쓸 때마다 한 명의 외부 컨택을 만들어보자.' 그때의 마음가짐은 지금 회사를 위해 자발적으로 영업을 뛰며 인맥을 이용해 사업 확장 방향을 함께 생각하게 된 다음 단계로 넘어오는데 디딤돌이 됐다.

사실 '1글1컨택' 원칙을 세우게 된 계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은 분노와 간절함이었는데, 아마 둘 다 작용했을 것이다. 매주 전혀 모르는 주제에 맞부딫혀 나름대로 '괜찮은' 콘텐츠를 만들고자 노력하면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내가 전문성을 가진 주제가 아니라면, 빠르게 지금 최전선에서 해당 분야의 지식/스타일을 주도하는 사람을 찾아내 독자와 연결시키면 어떨까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본래 회사의 콘텐츠 라인업에 포함되지도 않은 캠페인과 인터뷰를 기획해 모든 과정을 주도했고, 캔바로 이미지도 한 땀 한 땀 다 만들었다. 매주 발간되는 콘텐츠를 작성할 때는 인플루언서, 교수, 뉴미디어 종사자 등 무언가 새로운 인사이트를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콜드콜을 날렸다. '마음을 담아 다가간다면 답할 것'이라 생각했고, 내 기억으로 내 콜드콜을 무시하거나 거절했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영업은 마음으로부터


'진심으로 두드리면 문은 열린다'는 진리를 몸으로 체득하게 된 시기는 그때인 것 같다. 한 열 번쯤은 콜드콜과 협업의 사례가 쌓이고 나니 이제 회사 밖의 아예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연락한다는 일은 훨씬 쉬운 일이 됐다. 다만 이제는 조금 더 전략적으로 접근하게 된 부분이 있다면, 사실 오히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인 것 같다.


오늘의 '영업'은 전에 일하던 회사의 클라이언트의 니즈와 우리 회사의 방향을 섞어 생각해봤을 때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클라이언트는 남북 평화를 위해 일하는 비영리 재단이라 교육에 관심이 많고, 내가 지금 일하는 회사는 교육 상품과 프로그램에 특화되어 있는 곳이다. 내 머릿속에서는 너무 좋은 그림이 그려졌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일전에 000 프로젝트에서 매니저로 일했던 알벗입니다. 저는 전에 일하던 회사에서 000라는 회사로 옮기게 됐습니다. 이 회사도 교육하는 회사인데 혹시 0000재단에서도 관심이 있으실 것 같아서 이렇게 한번 연락드려봅니다. 전에 프로그램 끝나고 회식도 못했었는데 한번 만나 뵐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팀장님께 카톡을 드린 것은 지난주였다. 아무래도 내향성이 강한 터라 용건이 있더라도 먼저 전화하는 것을 꺼린다. 메일이나 카톡으로 보낸 콜드콜도 메시지만 좋으면 다 성공하는데 이미 아는 분이라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팀장님께는 금방 답장이 왔고, 오늘로 미팅이 잡혔다. 회사에서 영업을 담당하고 계신 분께 말씀드려 영업 자료와 굿즈 등을 받았고, 아무래도 솔직한 얘기를 듣기 위해서는 저녁 약속이 좋을 것 같았다. 술 한잔 정도 들어가야 정도 쌓이고 솔직한 얘기가 나오지 않겠나. 사실 나는 술을 싫어하지만 말이다.


팀장님은 사실 교육 건보다도 사람으로서 나와 좀 알아가고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 것 같았다. 놀란 사실이지만 본인도 창업 경험이 있으신 분이어서 관심도 많으시다고 했다. 대화의 대부분은 본인의 경험담과 지금 내 커리어에 대한 얘기, 나에 대한 조언 등으로 채워졌다.


나는 영업을 하고 싶었지만 팀장님 담당 부서일이 아니라서 옆 부서에게 전해주신다고 했다. 긍정적으로 말씀하시긴 했지만 구체적인 얘기가 나오진 않는 걸로 봐서는 아마 짧은 시간 내에 사업에 대한 연락이 오기는 힘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관계란 즉각적인 결과를 바라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조언은 받는 자의 몫이다


코칭이라기보다는 멘토링에 가까운 대화였다. 보통 경험 많은 남자 선배분들이 술 먹고 하고 싶은 얘기는 자신의 경험이니까.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는 자신의 경험이 오히려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들은 그런 환경 속에서 린(Lean)하게 살아온 분들은 아니니 우리가 이해해야 되지 않겠나. 적어도 좋은 의도를 가지고 본인의 경험을 나눠주는 사람의 얘기는 감사하게 들을 가치가 있다.


팀장님의 말씀이 고마웠던 것은, 단순히 그 내용이 결혼, 안정, 철밥통 등에 대한 얘기가 아니었기 때문은 아니다. 팀장님 본인도 창업 경험이 있으시고 비영리조직을 답답해하시는 분이라서 내게 도움 되는 얘기가 많았다. 또 그가 강조하는 방향의 사업 아이템이나 관심사가 내가 앞으로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과 너무나 잘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는 클라이언트 층에 따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도 알려줬다. 정부기관(B2G) 상대의 사업과 기업 상대의 사업(B2B)은 매우 다르다며 정부 관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보통 공개되어있는 예산, 사업계획, 기관의 관심사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팀장님뿐만 아니라 다른 선배에게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들었기에 퍼즐이 끼워 맞춰졌다. 유사한 분야에서 뼈가 굵은 분들이 비슷한 얘기를 한다면 맞는 얘기일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게다가 나에게 애정을 가지고 자신의 '영업비밀'을 공유해준 것이니 감사할 따름이다.


이쯤 되니 지금 내 상황에서 뻗어나갈 수 있는 길은 두 개 정도가 보인다. 배타적인 것은 아닌데 요구하는 스킬셋이 다르니 어느 시점에서는 골라서 집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 정도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은 회사 안팎의 정보를 조합했기 때문이다. 회사 안에서는 타성으로 일하고 밖에서만 자기 계발에 매진했거나, 회사 안에서만 열심히 일하고 나와서는 탈진돼 아무것도 못했다면 적어도 몇 개월은 더 걸렸을 것이다. 역시 삶과 일은 양분해서 밸런스하는 것이 아니다. 연결하고 통합해 삶이 일이 되고 일이 삶이 되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나만의 한 가지


팀장님이 해주신 조언 중에서 '앞으로 나만의 한 가지를 만들기 위해 시간 투자를 잘해야 한다'는 말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나도 조금씩 고민해 오던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트렌드를 따라가서는 절대 트렌드를 앞서거나 만들 수 없다. 이 두 과정은 아예 논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앞서기 위해서는, 오히려 트렌드를 무시하고 자신의 것을 추구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움'이라는 말이 오피니언 리더 사이에서 유행처럼 쓰이고 있다. '스러움'의 번역어가 like라면 '다움'은 as다. '스러움'도 결국은 특정 이미지를 따라가려는 타성에 젖은 몸부림이라면 '다움'은 정말 나의 모습에서 표출되는 것이다.


야마구치 슈의 책들을 좋아하는데, 그의 책 중 하나에서 그는 자신이 철학과 출신 컨설턴트로 어떻게 장점을 살려 지금의 자리에 올랐는지 말한다. 요컨데 경영학은 비전공자라도 열심히 공부하면서 실전 경험을 쌓으면 충분히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분야이고, 대신 오히려 경영학이 아닌 분야에서의 전문성과 조합해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나의 최약점이자 최강점은 바로 대학원 출신이라는 점이다. 공대도 경영대도 아닌 사회과학 출신이다. 내 전공분야의 지식 자체는 사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나 앞으로 할 일과는 크게 관련이 없고,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석사과정 때부터 내가 관심을 가져왔던 것은 이론과 사상이었다. 학부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관점을 접할 수 있다는 점, 사회과학 고전을 읽으며 나보다 뛰어난 동료들과 토론하며 배울 수 있다는 점이 행복했다. 그 점이 좋아서 계속 대학원에 남았던 것 같다. 학자는 토론하는 사람이 아니라 글 쓰는 사람이라는 점을 깨닫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사회과학, 사회혁신, 그리고 교육 분야에서 최신 지식을 업데이트하며 내가 좋아하는 이론과 사상을 마구 배워 섞으며 놀아본다면 어떨까? 포스트휴머니즘, 페미니즘, 돌봄, 감정, 비판이론, 사회이론 등 내가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들은 당연히 사회혁신, 그리고 교육과 만날 수밖에 없다.


내가 처음 일을 생각하면서 놀란 것이지만, 한국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일을 시작한 사람들은, 영감을 끌어올 수 있는 레퍼런스를 갖추기 매우 어렵다. 대학에서 최신 사상이나 지식을 익힌 사람은 매우 적을 것이며, 빠르게 변하는 지식을 업데이트하고 자신의 언어로 풀어내는 훈련이 된 사람은 더더욱 적을 것이다.


나는 대학원에서 뛰어난 교수님들과 동료들이 지식을 다루는 전략과 전술을 옆에서 지켜봤고, 분명히 습득한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계속 배워야 성장하는 존재고, 여기서 배움은 자기 계발을 위해 열심히 경제경영서를 읽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나는 안다. 애매한 자기 계발보다는 미래의 길을 보여주는 사상, 이론, 예술을 접하거나 사회과학 고전(아쉽게도 내가 영감을 받은 책들은 다 외국 저자의 것이었다)을 읽는 것이 백배 낫다. 결국은 어려운 내용을 자기 것으로 만들 줄 알면서도 현장 감각을 잃지 않는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다. 사고의 폭과 상상력이 아예 다르다. 게다가 학습에는 복리의 법칙이 적용되어서, 처음에 훈련이 된 사람이 나중에는 몇 배 몇십 배 더 앞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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