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시절부터 가장 중요하다고 훈련받았던 질문이다. 새로운 주장을 펴는 글을 쓰려면, '부가가치(value-added)'가 있어야 한다. 그 글을 다 읽은 독자의 무엇인가는 변해야 한다.
그런데 직함이 작가(writer)가 아니라 에디터(editor)라는 점은 상당히 재밌지 않나. 작가는 어쨌든 자신의 글을 쓰는 사람이다. 학술적인 의미에서 오리지널리티는 없을지 몰라도, 대중적인 의미에서의 오리지널리티는 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한국에는 아직 많이 발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논픽션 글쓰기의 경우는 약간 다를 수 있다. 내가 알기로 해외 저널리스트들의 논픽션 글쓰기는 탐사(참여-관찰), 인터뷰, 실천, 자체 데이터 수집 등, 그 주장의 이론적, 실질적 함의는 대단히 새롭지 않을 수는 있지만 직접 생산한 1차 자료가 많다. 2차 자료만을 모아 쓰는 글은 오리지널리티도 떨어지지만, 필자 자신이 해당 주제를 섭렵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기 때문에 비판적인 독자라면 그 글의 질이 낮음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란, 그것이 자신의 경험이든 관찰을 통해 얻은 외부의 정보이든, 1차 자료를 사용해 글을 쓰는 사람을 말한다. 2차 자료만 사용하는 이에게 작가 직함을 부여한다면, 혼란과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그런데 에디터는 그 의미가 조금 더 복잡한 것 같다. 내가 알기로 영문 editor라는 직함은 New Yorker 같은 잡지에선 한국처럼 잡지사 내의 모든 '글을 쓰고 편집하는 이'에게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인하우스로 글을 작성하는 작가를 staff writer, 외부 기고 작가를 contributer, contributing writer라고 하고, 외부 작가를 섭외해 외주를 주고 어떤 글이 언제 어떻게 들어갈지를 편집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editor이다. 본인이 바이라인을 걸고 이름을 쓰는 경우는 아마 writer로 들어갈 것 같다. 매거진이나 매체의 입장을 대표해 논설을 쓴다면 그것이 논평editorial이 될 것이고, 매거진 편집을 왜 어떻게 했는지 설명하는 opening remark 성격의 글을 쓰기도 할 거다. 말하자면, editor의 직함은 content editing, copy editing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이 받는 것이며, 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 사람(작가)과는 구분되는 것 같다.
즉 editor는 편집하는 사람이지 글 쓰는 사람과 구분되는 것인데, 내가 알기로는 한국에선 이 일을 하는 사람을 출판계에서는 편집자로, 종이 잡지와 이제는 뉴미디어에서는 에디터로 부른다. 출판이야 남이 책을 낼 정도로 길게 쓴 분량의 작업을 content, copy editing을 하는 사람이 편집자이므로 아마 출판사 서평이나 책 소개 등 바이라인이 들어가지 않는 글쓰기 외에는 편집자 직함을 걸고 글을 쓰는 일은 적을 것으로 추측된다.
문제는 매거진의 에디터다. 에디터는 독자가 알아야 할 내용을 큐레이션 해 짧게 읽을만한 콘텐츠로 만드는 '가공'과 '편집'의 일을 모두 하는 사람이다. 이 일이 전통적인 의미에서 1차 자료를 쓰는 작가와 얼마나 양적, 질적으로 구분되는지는 고민을 해보아야 하겠지만, 적어도 물리적으로는 출판의 편집자보다는 해외 매거진의 writer에 가까울 것이다. 잡지사의 에디터가 수백 장의 원고를 앞에 두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간, 장평, 철자법, 한자표기 등을 고민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힘드니까. 편집을 하더라도 다른 에디터가 쓴 짤막한 글일 것이다.
그럼 이쯤에서 질문을 던져보자. 잡지사, 그리고 뉴미디어에서 에디터라는 직함을 달고 일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걸까? (What is it that they really do?) 그들이 하는 일은 작가writer의 일과는 얼마나 다른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에디터의 일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
첫째, 에디터의 일은 무엇인가? 일단 콘텐츠 유니버스와 브랜드 기획 측면에서 크고 작게 기여하게 되는 점이 많지만 그런 '기획자'로의 측면, 즉 개별 콘텐츠가 아니라 매체나 글의 형식 등 메타-개별콘텐츠적인 부분은 제외한다. 에디터는 주제나 방향이 정해졌거나 아직 추가 논의가 필요한 개별 콘텐츠를 기획하고, 자료를 모으고, 이 중 중요한 것을 선별하고, 요약이나 인용 등의 제시 방식을 선택해,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콘텐츠를 작성하는 일을 하게 된다.
둘째, 에디터는 작가와 어떻게 다른가? 내가 위에서 간략하게 정의한 작가는 어떤 형태로든 1차 자료를 쓰는 사람이며, 그 자료의 쓰임과 글에 녹아 있는 가치/규범적 주장들에 대해 바이라인의 형태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작가가 인정받는 이유도 동일하다. 작가는 자신의 글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에디터는 자료를 모으고 독자에게 보여줄 내용을 선정할 때, 1차 자료를 얼마만큼 사용하는가? 먼저 자신의 경험을 글의 도입부나 마무리에 사용한다던지, 중간에 연결이 허술한 부분에 생활의 일례를 사용한다든지 하는 부분은 사실 유의미한 의미에서 1차 자료를 사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글의 핵심 내용에 대해 자신의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작가인데, 다 남의 얘기만 가져다 놓고 숟가락 하나도 얻지 않은 상태로 글 도입부에만 자기 일화를 넣는다고 작가가 될까.
제한적이지만 자체 설문이나 인터뷰를 사용해서 2차 자료와 조합해 결론을 내거나 의미를 끌어내는 데 사용했다면, 그리고 그로 인해 2차 자료에서 나온 주장, 결론, 의미와 눈곱만큼이라도 뉘앙스가 다른 내용이 나왔다면, 기술적으로는(technically) 작가라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많은 작가나 논문을 작성하는 사람들이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고 있다. 2차 자료를 뒤엎는 얘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오리지널리티는 쉽게 나오는 게 아니다.
잡지 에디터들 사이에 쓰이는 '체헐리즘'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대체육을 먹어보고 이걸 어떻게 보아야 할지에 대한 내용을 짧지만 자신의 체험에 기반해 썼다면, 작가다. 좀 더 체계적인 참여-관찰의 경우 학술적인 방법론으로 쓰이기도 한다. 1차 자료가 자신의 감상, 경험, 생각이라고 해서 반드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해당 주제 유니버스와 1차 자료에 대한 친숙함(familarity)이 쌓이지 않은 이가 독자에게 쉽게 잘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론이 위의 몇 가지로 제한된다는 것이다. 설문, 인터뷰, 체험 등, 몸으로 뛰지 않는다면 체계적인 것은 차치하더라도 유의미한 데이터를 자체 생산하는 것 자체가 능력적으로, 그리고 여건적으로 힘든 것이 에디터란 일이다.
셋째, 이러한 에디터의 일은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 애초부터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작업이 목적이 아니라는 점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2차 자료(관련 기사, 논문, 책, 영상)를 비판적으로 보게 될 경우,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적당히 테이크를 정해놓고 작업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쉽게' '잘' 읽혀야 한다는 글의 특성상 독자에게 지나치게 새롭거나 급진적인 정보나 주장을 제시할 수도 없기 때문에 더욱 오리지널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의 특성상 다른 사람의 글을 편집한다던지, 작은 회사이거나 특히 스타트업인 경우 마케팅, 디자인, 시각자료 생산, 고객 관리 등 다른 업무와 병행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더욱 한 주제에 몰입해 새로운 내용을 발굴하거나 어떤 주장을 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미리 '쉽게' '잘' '거슬리지 않는' 콘텐츠를 만들고자 기획된 작업을 게다가 다른 산적한 업무와 병행하여 비교적 짧은 주간 또는 월간의 데드라인의 호흡으로 써낸다는 일. 학술적인 의미에서 의미는 오리지널리티이므로 먼저 제쳐두고 보면, '독자에게 새로운가' '독자에게 오리지널 하게 읽히는가' 등의, 맥락-배태적인 방식으로 그 가치를 다시 봐야 할 것 같다.
내 생각은 이렇다. 먼저 지식 생산은 심지어 전문적인 독자도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면 팔로우 업하거나 1차 자료에 대한 친숙성을 쌓기 어려운 수준으로 발달하고 있다. 일전에 어떤 경제학자가 정치 얘기를 하는 것을 보고, '아 경제학 교수도 전문분야 벗어나면 동네 아저씨구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여성주의가 다양한 분야에서 학술적 작업과 레퍼런스가 쌓인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모른다고 배척하는 일부 지식인들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지식이 빨리 생산되고 핵심 이론, 개념, 틀 등이 대체되고 있는 환경에서 독자에게 수준 있는 리딩 실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는 전달되어야 하고, 논의를 이어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수준은 유지되어야 한다.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인류세를 알아야 하고, 환경정책을 전혀 모르더라도 그린 뉴딜이 뭔지는 이해해야 투표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 콘텐츠는 지식생산의 맥락에서 오리지널리티를 따지면 안 되고, 독자에게 새로운 내용을 얼마만큼 '상대적으로 정확하게' 전달했는가, 그리고 독자에게 어떤 실천, 감정 경험, 행동 변화 등을 유도했는가를 기준으로 그 가치를 매겨야 하지 않을까? 육식을 비판하는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후에 그날 저녁 '소고기!'를 외치며 회식을 나갔다면, 그 책은 독자에게 유의미한 가치를 전달하는데 실패했다고 볼 수도 있다. 반면, 단편적인 공장식 축산의 자극적인 장면들과 환경파괴에 대한 통계 들을 편집해 짧지만 임팩트 있는 영상을 보여주고 5분 만에 그 '콘텐츠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 '더 공부를 해보고 싶은 마음' '채식주의를 검색해볼 마음'을 일게 만들었다면, 그 콘텐츠는 5분간 할 수 있는 역할을 한 것이다. 오히려 5분 영샹이 사회적 공리의 측면에서는 책 보다 나은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에디터가 만드는 콘텐츠의 가치를 맥락-배태(context-specific, or context-embedded)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면, 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데이터 역시 필요하다. 특정 연령, 성별, 지역, 등의 demographic이 콘텐츠를 사용한다면 이들에 적합한 콘텐츠를 생산해 어떻게 반응했는지 알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독자가 콘텐츠에 좋아요를 눌렀나, 공유를 했나, 코멘트를 남겼나, 웹사이트에 들어와서 다른 콘텐츠들을 보았나 하는 미세하고 디테일한 반응을 통해 콘텐츠의 가치가 정해지게 되는 것.
그래서, 에디터의 일은 가치가 있는가? 가치는 독자와 마찰을 일으키며 발생한다. 사실 질이 낮은 콘텐츠에도 많은 사람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것을 가치가 아니라고 부를 수만은 없다. 특정한 가치(정동, 감정 경험, 등)를 실현하되, 그 결과는 사회적 공리와는 거리가 멀 수도 있다. 먹방을 보고 즐거움을 느꼈다면 그 역시 일종의 가치이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콘텐츠보다(예를 들면 환경 파괴에 대한 콘텐츠) 가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고백하건대, 맥락-배태적이라는 말은 오늘날 다변화된 디지털 환경에서 옳은 만큼이나 모호하고 무책임하다. 독자가 누구인가? 과연 독자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한가? (전통 미디어 이론에선 수용자라고 하는 것 같고, 어떤 글에선 소통 참여자라고 호명하는 것도 보았다) 그들에게 어떠한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가? 가치 실현을 통해 독자가 주제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게 되고 더 깊은 이해로, 사회적 연결로, 댓글 등 피드백을 통해 자기 외연 확장을 이룰 수 있게 도왔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있어야만, 가치 있는 콘텐츠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에디터의 일을 하면서 다음 주제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래서 관심과 호기심이 매주 여기로 저기로 튀고 있는 상황이다. ESG에 한창 뽐뿌가 올라오다가 이번 주에 독자 설문 결과를 보고는 데이터를 배워야 되나 싶었다가 곧 마케팅과 인스타그램 전략에 마음이 가는 식. 본업이 공부도 아니고 체계적으로 배우기는 어렵겠지만 정리하면서 체계화를 시도할 수는 있지 않겠나.
앞으로 브런치를 통해 써나가고 싶은 주제.
* 대학원 출신 에디터. 대학원 훈련은 이 일에 어떤 도움이 될까?
* 엔디터(Nditor)의 일. 서비스 기획과 콘텐츠 기획을 모두 하는 에디터의 일.
* 성장을 책임질 동료를 만나 만드는 법. 서로 함께 성장하기 위한 관계의 스크립트와 레퍼토리를 어떻게 쌓아나갈 것인가?
* 협업의 정치학과 가치론. 누구와, 어떻게 협업할 것인가? 어떻게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나?
* 뉴미디어를 통한 진보가치의 실현. 뉴미디어는 어떻게 독자에게 구조 이해 및 비판, 젠더 이해, 성찰성(reflexivity) 담지 등을 도울 수 있나?
* 에디터에서 작가로. 사실 지루할 수도 있고 노동집약적인데 반해 성장이 항상 담보되지는 않는 이 일을 통해 어떻게 내 글을 쓰는 작가로 성장할 것인가?
* 콘텐츠의 여집합. 개발, 디자인, 마케팅, 경영 중 얼마만큼 에디터가 이해하고 있어야 하나?
* ESG, 이론에서 실천으로. 어떻게 하면 환경적,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민주적인 구조를 가진 스타트업이 될 수 있나?
* 뉴미디어에서 사회과학으로. 짧고 휘발하는 뉴미디어 콘텐츠를 이론, 개념, 틀을 제공하는 사회과학의 티칭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어떻게 하면 힙하면서도 수준이 높은 얘기를 해나갈 수 있나.
이 외에도 전부터 관심 가져온 주제에 대해 읽고 쓰는 일은 계속하고 싶다. 드라마, 영화, 다큐를 보고 짧은 감상을 정리한다던지, 예전부터 이어온 남성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조금씩이나마 이어 나가는 정도가 될 것 같다.
독자님! 다음으로 읽고 싶은 주제가 있으신가요? 댓글 달아 주시면 관심 가시는 방향으로 힘을 써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