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전성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난 대학교 다닐 때 정말 운이 나를 따라온다고 생각했어.
모든 일이 잘 됐거든. 고등학교 다닐 때 책을 정말 많이 읽었는데
그래서 그런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오랜 친구인 '베어킹'과의 점심. 그는 이미 창업의 세계에 발을 들여 한 회사의 대표로서 경험을 쌓아나가고 있다. 식사를 함께 한 후에 그와 '삶에는 흐름이 있다'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누구나 특정 시기에 '잘 나가던' 자신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시기의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회고해 공통점을 찾아낸다면, 인생의 전성기라는 파도를 기다리지 않고 만들어낼 수도 있을까? 베어킹이 책을 정말 많이 읽었던 시기 덕에 자신의 삶에 파도가 밀려왔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과정 속에서 파도가 밀려왔던 시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잘 풀리고 마치 세상이 나의 의지에 협조하는 듯한 때는 언제였을까?
단연코 내 전성기는 학부시절이었던 것 같다. 중간에 군대를 다녀왔던 시간을 제외하면 학부시절 내내 나는 성취해서 인정받고자 하는 강한 욕구, 내가 마음의 불이라고 부르는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 주변의 인정을 받고 계속해서 새로운 기회가 찾아와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시기였다. 자랑 같아 좀 민망하지만 흐름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해보기 위해 간단히 학부 시절의 성취와 경험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학년 1학기에 미국 명문대 전액 교환장학생으로 선발
한국에 돌아와서 영어잡지 동아리 창간, 1대 및 4대 편집장
영어토론 동아리 공동창립, 4대 회장
영어토론 대회 및 모의유엔 대회 핵심 운영진(심사위원장, 부심사위원장, 사무총장 등)
영어토론, 모의유엔 대회 수상 (전국대학생 모의유엔 수상으로 뉴욕 유엔본부 견학)
학부생으로 유엔인턴십 프로그램 참여, 6개월간 장학금 수여
영어토론 연합동아리 공보국장
스폰서를 받아 영어토론 가이드 공동편집
차석 졸업, 공로상 수상
기억 나는것만 나열해보면 위와 같다. 학교 다닐때는 항상 더 많이 성취하고 싶었고 대학생인만큼 낭비하거나 놀았던 시간도 많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성취욕이 없지는 않았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오히려 오늘의 내 삶이 덜 활동적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학부 시절의 흐름을 만들어준 요소는 무엇이었을까? 베어킹 친구처럼 책을 많이 읽어서일까?
나에겐 항상 더 배우고 더 똑똑해지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지식욕이라기보다는 허영심이나 인정욕구에 더 가까운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좋은 습관을 많이 갖추고 있지는 못했다. 책을 즐겨보고 항상 어딘가에는 메모를 남기고 글 쓰는 일을 즐기는 습관은 있었지만, 일상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자잘한 스킬들은 매우 부족했다.
이 시기는 명상을 시작하기 전이었고, 학부시절이었으니 심리적인 부침도 상당히 있었다. 그래도 성장마인드셋은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마음 한켠에는 '나는 잘 될거야'라는 막연한 마음도 있었고, 경쟁해서 결과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도 있었다. 학교 내에서나 주변에서 받는 인정도 큰 몫을 했던 것 같다.
지금도 학부 시절을 함께 보냈던 사람들을 만나면 그 시절의 나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는 경우가 많다. 그 시절에 내가 무언가 좋은 마음이나 습관을 가지고 흐름을 이어갔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삶은 좋은 마음과 습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잘 풀리게 되어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그리고 오만해지거나 고집을 버리지 않거나 새로운 맥락에서 배우는 것을 거부할 때 삶은 씨익 웃으며 등 뒤에 숨겨놓았던 쇠망치로 머리를 내려친다. 기억하건데 나의 대학원 생활은 망치와 모루와의 치열한 대결이 치뤄진 시기였다.
다니고 있던 회사에서 퇴사가 결정된 날, 사실 내 마음은 자유로 들떴다. '다시 시간을 들여 좋은 습관을 제대로 세팅하면서 더 좋은 기회를 찾아야지.' '내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이 분명히 있을거야.'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로부터 한달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그때 먹었던 마음만큼 생산적인 일상을 보내고 있지는 않지만 작년부터 조금씩 만들어온 파도의 물결이 느껴진다. 협업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고, 일이 들어오고, 지원한 회사들의 면접을 통해 새로운 기회가 들어오고 있다. 아직은 몸을 맡기면 나아갈 정도로 강한 흐름은 아니지만 분명 흐름은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내 생각에 파도를 만드는 것은 멈추지 않는 물장구다. 내 마음에 부정적인 감정이 남지 않도록 매일 명상하는 일. 선한 비전을 매일 그리며 더 큰 미래를 상상하는 일. 운동, 명상, 배움, 만남으로 내 시간을 탄탄하고 의미있게 채우는 일. 흐름이 찾아왔을 때 자존심이나 열등감, 주저함으로 저버리지 않고 계속 물장구치며 흐름을 타는 일. 이 일을 통해 내가 파도가 되고 끊이지 않는 파도는 더 큰 물결을 만들어낸다.
물론 이 과정에서 오만하거나 변화를 거부한다면 또 쇠망치로 얻어맞고 새로운 물결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제 알 것 같다. 파도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파도를 만드는 것은 겸허하고, 친절하고, 행복하게 어떻게 나의 성장이 타인의 성장으로 연결될지를 설레고 들뜬 마음으로 고민하는 빛으로 가득한 일상이다. 억지로 버티지 않고, 부정적인 마음을 붙잡고 있지 않으며, 지금 안되는 일은 포기한다. 흐름에 반하는 것들을 어떻게 주짓수에서처럼 생산적 에너지로 활용할 것인지 고민하며 헤엄을 멈추지 않는다.
파도를 만드는 것은 물장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