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티타임 후기
2월에는 세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모 플랫폼에서 ‘성장 티타임’을 제안해 총 9분과의 티타임을 가졌어요. 한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구글 미트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글로벌 회사에서 일하시고 계시거나, 현재 해외에 계시거나, 해외 경험이 있으신 분들도 계셔서 말 그대로 세계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 듭니다. 연결과 공명에는 강력한 힘이 있어요. 뻗어나가게 하고,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가능한 것을 그리워할 수 있게 해주고, 나를 더욱 더 열어 지혜를 스폰지처럼 빨아들일 수 있게 하죠.
블록체인 분야에서 일하고 계신 분, 말레이시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코칭 활동을 하고 계신 분, 음악 공부 후에 스타트업계에 발을 들이신 분, 블록체인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주니어, 학교를 다니면서 동시에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계신 열정 많은 주니어, 일을 잠시 쉬며 다음 스텝을 고민하고 계신 분, 브랜딩과 콘텐츠가 궁금하셨던 분, 창업과 스타트업 경력 이후의 스텝을 고민하시고 계신 분, 그리고 스타트업에서 영업을 하며 다음 단계를 고민하고 계신 주니어. 각각의 맥락과 흐름을 가지신 분들과의 연결을 이렇게 짧게 요약하는 일은 반드시 무리한 일반화와 제 편견이 들어가기 나름이죠. 오늘은 성장 티타임으로 포착한 삶의 모습들에 대해, 일과 삶이 가진 주술적인 가능성에 대해 간단히 명상해보려고 합니다.
힘들게 시작해도 괜찮아요
주니어 분들 중에서는 업계나 분야를 더 중요시해서 지금은 가장 섹시하지 않을 수도 있는 직무로 커리어를 시작한 분들이 계셨습니다. 자신의 상황과 전략에 대해 잘 알고 계시더군요. 무엇을 하고 있느냐보다 어디에 있느냐가 더 중요하고, 직무 경험을 쌓아서 나와 더 잘 맞는 일으로 뻗어나가려는 꿈.
공감했어요. 말하자면 저도 비슷한 입장이었고, 지금도 그럴수도 있죠. 사실 누구나 프로덕트 매니저나 개발자가 될 필요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죠. 자신이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면, 사실 지금 당장 하고 있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인정받는 직무일 필요는 없겠죠. 변화에는 항상 거품이 끼어있고, 미디어나 트렌드가 조명해주는 삶의 방식이 누구에게나 맞는 것도 아니며, 내 인생의 창조주는 나 자신이기 때문에.
힘들게 시작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다른 누군가를 위해 갈아넣어줄 필요는 없어요. 일이 고되더라도 팀의 미션에 공감하고, 내가 성장할 수 있고, 무엇보다 내가 이 일을 무엇을 위해 알고 있기만 하다면, 의미를 찾을 수 있죠. 직무와 상관없이 가장 가치 있는 경력은 결국 ‘몰입경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몰입하는 인간은 옳습니다.
중간에 길을 바꿔도 괜찮아요
업계나 직무를 바꾸시거나, 새로운 분야에서 도전을 이어나가거나, 다른 로컬에서 가능성을 탐구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저도 대학원 공부를 오래하다가 스타트업으로 넘어온 케이스라서, 많이 공감했습니다. 이력서의 관점에서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절은 ‘무경력’에 가깝지만, 사실 삶이라는 것은 경험을 통해 지혜를 큐레이션해주기 때문에, 남을 위한 이력서는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늦게’ 길을 바꿨다고 불안감을 주입하는 사람들이 항상 따라다닙니다. 이제서 길을 바꿔도 되겠어? 정말 괜찮겠어? 아깝지 않아? 그렇게 오래 쉬어도 돼? 제 짧은 경험으로는, 당신의 직관이 이끄는대로 산다면 사람들이 불안감에 가득차서 해주는 ‘조언’은 무시해도 됩니다. 최고의 경력은 나다운 경력이며, ‘몰입경력’이기 때문에. 몰입해서 자기만의 뉴스레터를 오랫동안 운영해본 분이, 죄송하지만 현업 뉴스레터 운영자보다 더 잘할 수도 있거든요. 몰입해서 나다운 글을 써온 사람이, 현업 에디터보다 일을 못할까요?
중간에 길을 바꿔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다운 일, 더 몰입할 수 있는 일, 내 생각에 더 가치로운 일이라면. 또겁게 시도하고 실패하는 사람이, 애매하게 지속하는 사람보다 나아요. 애매하게 지속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하는 말입니다.
글쓰기의 미친 가능성
제가 좀 지나치게 높은 온도로 ‘설파’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의 주의를 얻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은, 특권이자 권력이라고요. ‘주의권력’이라는 단어를 저는 정말 진지하게 쓰고 있습니다. 디지털로 누군가의 주의를 끌어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자가 곧 권력과 부와 연결망을 가지게 될 겁니다. 플랫폼에 힘이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플랫폼은 이미 주의권력을 가진 크리에이터와 인플루언서를 갈구하고, 록인하고 싶어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디지털 글쓰기’는 아무 것도 없이 시작해 사람들에게 삶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지상 최대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글쓰기에 대한 고민들을 듣다보니, 수렴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글쓰기가 어렵다’는 것은 핵심 페인포인트가 아닙니다. 2순위죠. 1순위는 다른 미디어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시대에 왜 글쓰기에 시간을 써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글쓰기, 말하기, 이미지, 영상 네 가지의 미디어가 있다고 하면, 가장 빠르게 플라이휠을 돌릴 수 있는 미디어가 글쓰기입니다. 현업 디자이너거나 코치, 영상 편집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좀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생각을 외재화(externalize)해서 디지털 공간에 퍼트리고 다른 미디어로 번역하기에 가장 수월한 것이 텍스트죠. 인스타용 이미지를 다른 플랫폼에 올릴수는 있겠지만 추가 작업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베이스가 쌓여 있어도 검색도 어렵고 편집, 재가공, 출간 등이 힘듭니다. 영상도 동일하죠. 노션에 쌓인 수백 수천개의 글은 그대로 나의 작업세계가 되어 세상으로 수천마리의 나비를 띄워보낼 수 있게 됩니다. 모든 플랫폼에 올릴 수 있으며, 모든 미디어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글이 말하기가 되고, 글이 이미지가 되고, 글이 영상이 되며, 글이 책이 됩니다. 사실 학위든 자격등이든 다 ‘글’로 따는 것 아니겠습니까.
온도가 좀 높아서 사기꾼같이 들리기도 합니다만, 뭐 어쨋든 글쓰기로 돈벌자는 얘기는 아니니까요. 돈은 오랜 기간동안 매일 연마하고 수련해 가치로운 메시지를 찍어낼 수 있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이라고 보고 있어요.
연결의 주술적인 힘
관계의 힘은 강력합니다. 연결(connect)되어 관계를 맺으면(relate) 더 깊게, 더 넓게 연결되어 퍼지고자 하는 네트워크의 본성이 깨어납니다. 어느 시점을 지나면 노드의 네트워크 파워가 강력해져서, 밖으로 연결을 시도하고 먼저 가치를 제안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연결 지점들이 ‘접속’과 ‘구독’을 해오기 시작합니다.
관계에는 ‘발효’라는 힘이 있습니다. 오래된 친구나 와인이 좋다는 이야기가 있죠. 그런데 새로운 친구도 좋아요. 깊은 관계, 넓은 관계를 통해 앉아서 세계를 여행하고, 앉아서 수백 수천개의 삶을 경험하며, 지혜를 숨쉬듯이 다운로드받는 사람에게 쌓인 에너지는 응축되고 발효되어 주술적인 힘이 생겨나죠. 뛰어난 리더나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예외없이 ‘미친 축적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책을 미친듯이 읽었다는 마오, 김대중 대통령, 넬슨 만델라 대통령 같은 사람들은 다만 이 관계를 책의 저자들과 맺었을 뿐이겠죠.
몰입하며 연결되고 있다면,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삶은 더 성장할 기회를 고통을 통해서 주겠지만 말이죠. 3월에는 오프라인 인연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몰입하며 연결되는 인간’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