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작가의 꿈 기고문
최근 나는 친척분의 보청기 가게에서 6개월 정도 잠깐 일하게 되었다. 본업인 화상 영어강의가 없는 날에 나는 오후 1시쯤 출근해서 일을 시작한다. 가게에서 주로 내가 하는 일은 데이터 입력, 우편물 정리 등 강도가 낮다. 처음에는 좀 지루하고 단조로운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점차 보람찬 일이라고 점점 느끼게 되었다. 주로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이 많이 방문하는 이 가게에서의 일은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이것 덕분에 손주랑 오랜만에 대화를 제대로 할 수 있었어.”
“예전처럼 동창회에서 친구들하고 오랫동안 얘기를 했어.”
어르신들께서 보청기 덕분에 ‘가족들의 목소리를 다시 제대로 들을 수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나는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 아이러니하게도, 청력이 약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보청기는 우리가 자주 쓰는 블루투스 무선 이어폰과 모양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나에게는 무언가 전혀 접점이 없는 사람들 사이의 ‘공통분모’를 찾아낸 기분이 들었다.
나와 같은 90년대 생이면 누구나 중,고등학교 시절에 엠피쓰리(MP3)나 아이팟에 유선 이어폰을 돌돌 말아서 가지고 다녔을 것이다. 이후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인강을 들어야 해서, 혹은 누군가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다들 수시로 양쪽 귀에 콩나물같이 생긴 이어폰을 꽂고 다녔다. 이제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출퇴근길에서 무선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착용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부모님의 잔소리를 듣기 싫은 사춘기 청소년 캐릭터들은 클리셰처럼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어렸을 때는 이어폰으로 주변 소리를 차단하고 산다. 그러나 우리가 언젠가 나이가 들어서 청력이 약해지면 보청기를 착용해야 한다. 나중에 부모님이 더 나이를 먹게 되시면, 혹은 한참 후에 노년의 내가 더 사용하기 편리한 보청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매년 더 좋은 성능의 무선 이어폰이나 헤드셋이 출시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보청기를 착용해도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예를 들어, 청각에 갑자기 손상이 온 사람에게 자꾸 제대로 들으라고 주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주면 그 사람이 청각을 회복하는 속도가 더뎌진다고 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까지도 자신에게 애정이 담긴 말을 구분할 수 있다.
우연히 마주친 청각 장애인, 혹은 고령의 어르신에게 우리는 아주 작은 배려를 베풀어 줄 수 있을 만큼 마음이 넉넉한 사람인가? 나는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아마 보청기 가게 일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 던져볼 예정이다.
이처럼 우리는 스스로의 내면을 주의깊게 관찰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또한 보청기를 낀 것처럼 주의 깊게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어야 할 때가 있다. 글을 쓰는 작업은 마음 속 이어폰과 보청기를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게 도와준다. 결국 바깥에서 받은 영감과 나만의 생각을 적절히 담은 글은 모두의 마음 속 귀에 좋은 파동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대단한 작가가 아닌 독자의 마음 속에 ‘따스한 파동을 일으키는‘ 작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