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루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의 일도 장래의 일도, 어떤 능력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8장 38–39절
우리는 인생에서 유난히 많은 사과를 듣고 삽니다.
“미안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그 말이 진심이든 아니든, 세상은 늘 이렇게 굴러갑니다.
잘못이 생기면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그 책임이 정리되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십자가에 대해서도 그렇게 배웠는지 모릅니다.
누군가 대신 책임을 졌고, 문제는 해결되었고, 이제 괜찮아졌다고요.
그런데 살다 보니 조금은 알것도 같습니다. 인생에는 그렇게 간단히 정리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요.
말 한마디가 관계를 무너뜨리고, 한 번의 선택이 오래 남고, 어떤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흐릿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책임이라는 말로 정리하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무언가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정말 이것으로 끝난 걸까. 정말 이 정도의 설명이면 충분한 걸까. 십자가는 그 질문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던 골고다에는 위대한 교리가 없었습니다. 논리적인 설명도, 설득력 있는 해명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억울함이 있었고, 침묵이 있었고,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돌아서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십자가는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장면이 아니라, 세상이 얼마나 어둡게 돌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고통을 제거하지 않으시고, 그 안에 머무르셨습니다.
십자가는 죄의 처리가 끝난 자리이기 이전에, 하나님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선택하신 자리였습니다.
우리는 종종 십자가를 “내 죄가 용서된 사건”으로만 이해합니다.
물론 그것은 진실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십자가는 과거가 됩니다.
죄가 용서되었다는 것은 단지 빚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관계가 다시 열렸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관계가 열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숨이 다시 우리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십자가는 목적지가 아니라 출발점이었습니다.
그 출발점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서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 사건을 조금은 오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가 용서되고, 그다음은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앙은 때로 부담이 됩니다.
더 참아야 하고, 더 조심해야 하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긴장해야 하는 삶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복음은 그렇게 무거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복음은 내가 스스로를 고쳐서 하나님께 다가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안으로 들어오셔서 천천히 방향을 바꾸어 가시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거룩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서 거룩을 자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스빈다.
어느 날의 결단으로 시작되지만, 그 결단은 매일의 삶 속에서 자라납니다.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여정, 이미 열렸지만 아직 다 펼쳐지지 않은 이야기.
십자가는 언제나 그 출발점이었습니다.
우리는 단지 “용서받은 사람”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서 다시 숨 쉬기 시작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결국 질문은 '나는 구원받았는가?' 가 아니라 지금 내 삶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자라고 있는가?
내 생각과 감정, 내 선택과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영이 조용히 방향을 바꾸고 있는가?
복음을 안다는 것은 “나는 이제 안전하다.”는 안심이 아니라, “나는 이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간다”는 선언에 가까워야 합니다.
죄가 정리된 자리에서 멈추지 말라고, 그 문을 지나 더 깊이 들어오라고, 십자가는 우리를 부릅니다.
십자가는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오늘도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다시 시작될 수 있는 자리입니다.
문은 이미 열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문 앞에 서 있습니다.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용서받았다는 안심 속에 머물 것인가?
십자가는 여전히 조용히 묻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