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비록 우주의 중심은 아니지만.

별을 올려다 보는 밤에

by 한자루


주께서 손으로 만드신 하늘과 주께서 달아 놓으신 달과 별을 내가 바라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십니까?
주께서는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습니다.
시편 8편 3–5절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마음이 조용해집니다.
별은 너무 많고, 거리는 너무 멀고, 숫자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섭니다.

우리 은하에만 1천억 개의 별이 있고, 그런 은하가 셀 수 없을 만큼 존재한다고 합니다.
지구는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 점입니다.

태양조차도 우주 전체로 보면 이름 없는 별 하나일 뿐입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조금 겸손해집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작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보고 있는 별빛은 지금의 빛이 아닙니다.
몇 년 전, 몇십 년 전, 어쩌면 몇백만 년 전 떠난 빛이 먼 우주를 지나 지금 이 순간 내 눈에 닿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지금의 고민은 한없이 작아집니다.

맞습니다. 우주는 너무 크고, 우리는 너무 작습니다. 우주는 말없이 우리를 낮춥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자리에서 전혀 다른 말을 건넵니다.


밤하늘을 바라보던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

별은 단지 떠 있는 물질이 아니라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은 별을 숫자로 설명하지만, 성경은 별을 언어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고백은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이 질문은 너무나 솔직합니다.
밤하늘 아래 서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품어 보았을 물음입니다.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일까요?

먼지보다 작고, 숫자로 환산하면 의미조차 희미해지는 존재 아닐까요.

이렇게 노래했던 시편의 작가도 아마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것입니다.
별이 가득한 밤을 바라보며,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 실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작아짐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질문 뒤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그를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작디작은 존재에게 존귀라는 단어를 붙입니다.

우주가 말해 주는 결론과는 전혀 다른 방향입니다.

우주는 우리를 중심에 두지 않습니다. 태양도, 은하도, 별도 우리를 위해 돌지 않습니다.
지구는 우주 속의 작은 점이고, 우리는 그 점 위의 또 하나의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스스로를 하찮게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지점에서 시선을 바꿉니다.

우주가 우리를 중심에 두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까지 우리를 지나치시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주는 우리를 향해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그 점 같은 존재를 바라보신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바라보심 안에서 작음은 무가치함이 아니라, 사랑받는 연약함이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말씀하시는 분’으로 보여 줍니다.

태초에도 그랬습니다. 태초에는 어둠이 먼저 있었습니다. 아무 형체도, 아무 빛도 없는 깊은 어둠이었습니다.

그 어둠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울렸습니다.

“빛이 있으라.”

그러니까 빛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둠이 기본이었고, 빛은 선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바라보시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을 때 빛이 생겼습니다.

어쩌면 인간의 존재도 그렇지 않을까요?

우주의 광활함이 기본이라면, 인간은 우연히 떠오른 점이 아니라 말씀 속에서 불려 나온 존재입니다.

우주의 구조 안에서 보면 우리는 미미하지만, 하나님의 시선 안에서는 불러 세워진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작음은 버려짐이 아니라 선택입니다.

광활한 어둠 속에서 빛이 선물이었듯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인간은 선물입니다.


이 사실을 마음에 오래 붙들고 있으면 조금씩 시선이 달라집니다.

우주는 우리를 압도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일으킵니다.

나는 작지만, 우연은 아닙니다. 나는 미미하지만, 불려진 존재입니다.

이 자각이 먼저 우리 안에서 자리 잡지 않으면 겸손도, 책임도, 사랑도 그저 도덕적인 문장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내가 ‘불려진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면 삶은 달라집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묻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선물 같은 존재로 나는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우리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 우주 안에서, 그러나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존재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그 질문은 당위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감동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감동은 자연스럽게 겸손으로 이어집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소유가 아닙니다. 붙잡아 소비할 대상이 아니라, 맡겨진 자리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별의 수를 세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이름을 부르신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과학은 우리를 낮추고, 신앙은 우리를 일으킵니다.

과학은 말합니다. “너는 작다.”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너를 안다.”

우주는 광대하고 차갑지만, 그 우주를 지으신 분은 우리를 따뜻하게 부르십니다.

보이는 별빛은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별의 흔적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빛을 보고 감탄합니다.

어쩌면 하나님도 그렇게 우리를 바라보시는 것은 아닐까요?

연약하고, 흔들리고, 스스로 빛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여전히 아름답다고 말씀하시며.

우주를 알면 우리는 겸손해집니다. 하나님을 알면 우리는 다시 일어섭니다.

나는 작습니다. 그러나 사랑받는 작은 존재입니다.

그 사실 하나면 별을 올려다보는 밤이 조금은 따뜻해집니다.


오늘 밤,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떨까요?

그 빛들 사이에서 우리도 한 점처럼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 한 점을 향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우주의 중심은 아니지만, 내 마음의 중심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고개를 숙였다가도 다시 들 수 있습니다.

우주를 바라보며 겸손해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담대해지는 것.


어쩌면 그것이 별을 올려다보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