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닫힌 문 안에도 봄은 옵니다.

부활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어떤 이야기에 대하여

by 한자루
제자들이 문을 잠그고 한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들 가운데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안이 있어라.'
요한복음 20:19




누구도 봄을 막을 수 없습니다.

겨우내 얼어붙은 땅 아래서 포기한 것처럼 보였던 것들도, 결국 스치는 흙냄새에 항복하고 맙니다.

어제와 같은 창문을 열었는데, 공기는 이미 달라져 있습니다.

예고도 없이.

죽어 있던 것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켜는, 소리 없는 아우성, 그것이 봄입니다.

부활절이 봄에 오는 건 아마 우연이 아닐 겁니다.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종교적 사건만이 아닙니다.

다 끝난 것 같은 그 자리에서, 정말로 무언가 다시 시작될 수 있는가?

인간이 오래전부터 품어온 그 질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천 년 전 예루살렘의 어느 방도 우리의 거실과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눅눅한 냄새, 쳐진 커튼,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하는 정적.

제자들은 한 공간에 모여 있었지만 각자 혼자였습니다.

그분이 죽었다는 사실 하나가, 그들이 걸었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무너뜨렸습니다.

제자들이 문을 잠그고 한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두려워 문을 닫았지만, 사실은 두려움이 그들 안에서 문을 잠근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방을 알고 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사람을 피하고, 말을 줄이고, 커튼을 치듯 마음을 닫아버리는 그 방.

겉으로는 고요하지만, 안에서는 비명이 울리는 방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 스스로를 가두면서도 그것을 ‘안전’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날, 그 닫힌 방 안으로 누군가 들어오셨습니다.

노크도 없이, 설명도 없이, 그분은 그냥 그들 가운데 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하신 말이 이것이었습니다.

“왜 그랬느냐?”도 아니고,
“어디 있었느냐?”도 아니었습니다.

“너희에게 평안이 있어라.”

부활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닫힌 문이 열리는 방식이 아니라, 닫힌 문이 더 이상 장애물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


솔직히 한 번쯤 이런 생각 안 해보셨나요?

만일 내가 예수였다면?

죽었다가 살아났다면, 아마 가장 먼저 빌라도를 찾아갔을 겁니다.

관저 문을 쾅 두드리고 "나 살아났어. 이제 어쩔 거야?" 한마디 던지고 싶을 겁니다.

나를 죽이라고 목청껏 외쳤던 군중들 앞에도 서고 싶을 겁니다.

억울함을 증명하고, 나를 부정했던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 길을 가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신 후 그분이 제일 먼저 찾아간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증인 자격조차 없던 여자였습니다.

그다음은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분이 잡혀가던 날 밤 뿔뿔이 도망쳤던, 가장 비겁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선택 하나가, 부활이 무엇인지를 말해줍니다.

부활은 승리의 과시가 아니라, 두려움 속으로 들어오는 생명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분의 몸이었습니다.

완전히 새로워졌다면 흔적 하나 없이 깨끗해야 할 것 같은데,

그분의 손과 옆구리에는 십자가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분은 그것을 감추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보여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알게 됩니다.

새로운 삶은 과거를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팠던 시간, 사랑하다가 생긴 상처, 견디며 지나온 흔적들,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의미가 바뀝니다.

수치의 흔적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말해주는 표지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 변화되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살아낸 시간은 버려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랑했던 순간들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부활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완성되는 일입니다.


닫힌 방 안에 있던 제자들처럼 우리의 삶에도 여전히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문을 잠급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넘어오시는 분이 계십니다.

문이 열려서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라, 문과 상관없이 우리 가운데 서 계시는 분.

그래서 부활절은 특별한 날이 아니라, 닫힌 것이 더 이상 끝이 아닌 날입니다.

마침표라고 생각했던 자리에 누군가 조용히 쉼표를 놓고 가는 날입니다.

혹시 지금, 당신의 마음도 문을 잠그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굳이 먼저 열려고 애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분은 문 앞에서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라, 이미 그 안으로 들어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우리 앞에 서 계십니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안이 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