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미신을 이기는 법

불확실한 세계를 살아가기 위한 감정의 언어

by 한자루




인간은 생각보다 이성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어떤 날엔 앞뒤가 맞지 않는 믿음을 굳게 따르고,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위로를 얻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삶을 버티게 해줄 때, 우리는 그것을 미신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단지 “내가 믿는 것”이라 말할 뿐이지요.

동양이든 서양이든, 시대와 문명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늘 어떤 미신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스스로를 달래며 살아왔습니다.
그것은 단지 무지해서가 아닙니다.
불확실한 세계를 살아가기 위한 감정의 언어, 그것이 바로 미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미신은 대부분 ‘우연’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입니다.
숫자, 날씨, 행동, 꿈, 동물, 색깔…

모두 우연히 벌어질 수 있는 일들에 특정한 의미나 결과를 연결하는 것이죠.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이를 "통제의 환상"이라고 설명합니다.
인간은 실제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어떤 의미와 규칙을 만들어내려는 성향이 있으며, 그 과정에서 미신이 심리적 안정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험 전날 미역국을 먹지 않는 것, 금요일 13일에 중요한 결정을 미루는 것.
이 모든 행동은 불확실한 결과를 앞두고, 자신만의 질서를 만드는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인간은 삶에서 ‘한계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이해가 아니라 의미를 요구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죽음, 상실, 실패, 고통.
이런 사건들은 논리로 다가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의례를 만들고, 금기를 세우고, 미신을 만든다고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장례식장에서 거울을 가려야 한다."
"죽은 이의 이름은 바로 부르지 않는 게 좋다."

이것은 이성적으로 설명되기보다, 감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장치입니다.
즉, 미신은 인간이 삶을 견디기 위해 만든 정서적 안전망이자 상징적 정리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지심리학적으로 볼 때, 미신은 종종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착각하는 오류’에서 비롯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이 옷을 입었을 때 시험에 붙었다. 그러니까 곧 이 옷은 행운의 상징이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무작위적 사건을 그냥 두는 것에 불안을 느끼며, 어떤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려고 합니다.
그 연결이 일관되지 않더라도, "뭔가 믿을 것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신은 오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심리적 회복과 안정에 기여하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동양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음양오행, 풍수지리, 꿈해몽, 태몽, 귀신 신앙 등이 삶의 전 영역에서 미신의 형태로 존재해왔습니다.
반면 서양에서는 13이라는 숫자, 금요일, 까마귀, 사다리 아래, 부엉이 울음소리 등이 죽음과 불운을 상징하는 식으로 전해져 왔죠.

표현은 다르지만, 통제할 수 없는 자연, 죽음, 우연에 대한 인간의 감정적 반응은 같았습니다.
결국 문화권을 넘어서 미신은 인간의 가장 깊은 두려움을 다루는 감정의 언어입니다.


우리는 이성적인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지금도 여전히 ‘왠지 찜찜해서’ 어떤 행동을 피하고, '왠지 좋은 예감'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논리만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아니라 ‘느낌’으로 결정하고, 그 뒤에 이유를 붙여주는 방식으로 살아가죠.

그러니 미신은 우리를 비이성적인 존재로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섬세하고, 감정적으로 복잡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거울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왠지 찜찜해서’ 어떤 행동을 피하고, ‘왠지 좋은 느낌’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논리보다는 느낌으로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신은 우리를 비이성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섬세하고 감정적으로 복잡한 존재인지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말 안에는 우리가 말하지 못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불안, 기대, 후회, 그리고 ‘무언가 잘 되길 바라는’ 작은 염원 같은것 말이죠.

그래서 누군가는 여전히 부적을 품고, 누군가는 시험 날 미역국을 피하고, 누군가는 조용히 거울을 가립니다.
그 행위들은 단지 무지의 결과가 아니라, 스스로의 감정을 정리하고 싶어 하는 오래된 방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미신은 감정을 달래는 도구이지,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습관이 되고, 판단이 되고, 결정이 되기 시작하면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더 이상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맡겨버리는’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미신은 우리가 불확실한 세계에서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한 벤치이지, 운명의 핸들까지 내어줄 조종석이 아닙니다.


미신은 때때로 우리를 위로합니다. 그래서 완전히 부정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내가 감정을 추스를 수 있도록 미신을 이용할 것인가, 아니면 미신이 나의 판단을 대신하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미신은 우리를 구원해주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하나의 작은 쉼표가 되어줄 수는 있습니다.

진짜 복은 ‘복이 오기를 기다리는 자세’가 아니라, ‘복을 맞이할 준비가 된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의지와 선택,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걸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우리 삶을 통제하려는 불합리한 미신을 이기는 방법이니까요.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우리는 인간입니다


마이클 셔머의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라는 책을 읽다가 미신이라는 주제로 글을 정리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막상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에 손가락을 얹었을 때 솔직히 조금 망설였습니다.

너무 낡은 이야기 아닐까,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 아닐까.
하지만 글을 쓰면서 점점 알게 되었습니다.
미신이 낡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요.

숫자 하나에도, 꿈 한 편에도, 우리는 마음의 무게를 담습니다.
이성의 시대를 살면서도 어쩌다 귀신을 피하고, 복을 기대하며, 소원을 비는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30편의 이야기를 써 내려오며 저는 미신을 단지 ‘비과학적인 믿음’이 아닌, 사람이 세상 앞에서 느끼는 불안, 소망, 기대, 애틋함의 기록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이 얼마나 섬세하고 고요하게 살아가려 애쓰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리고 여러분도 미신이 인생의 주인 자리를 차지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때때로, 삶이 너무 흔들리고 미래가 너무 아득할 때 우리 마음은 오래된 미신의 그림자 아래 조용히 숨을 돌리고 싶어지기도 하겠지요.

그럴 땐 이렇게 말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 믿는 척하면서 조금 쉬고 있어.”

그것도 인간다운 방식일 테니까요.

이 긴 여정을 함께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우리의 일상 어딘가에 남겨진 오래된 믿음들, 그 조각들을 바라보며 조금 더 나를 이해하고, 조금 더 타인을 따뜻하게 이해할 수 있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무언가를 믿어야 할 순간이 다시 찾아오더라도 그 믿음이 우리를 억누르지 않고, 우리를 지켜주는 쪽이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새로운 글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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