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도 넘은 팬심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

by 한자루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데.”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거야.”
“날 배신했으니 이제 끝이야.”

이 말들은 연인 사이의 대사 같지만, 실은 한 연예인이 팬에게 받은 메시지들이다.

처음엔 응원이었다.
좋아하고, 따르고, 챙기고, 지지하고, 선물도 보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연예인이 다른 이성과 가까워졌다는 루머가 돌자 팬은 태도를 바꿨다.

“죽여버릴 거야.”
“배신감이 든다. 똑바로 사과해.”
“다시는 방송 나오지 마라.”


감정은 단지 사랑이 아니었다. 그건 통제였다.




누군가를 오래 지켜보면, 우리는 그 사람을 ‘안다’고 생각하게 된다.
방송에서 웃던 모습, SNS에 쓴 말, 인터뷰에서 말한 이상형…

그걸 수집하다 보면 그 사람과 내가 어떤 관계라도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관계는 상호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팬심은 감정의 일방통행이다. 그리고 그 일방통행이 오래될수록, “나만큼 아는 사람은 없어”라는 착각은 강해진다.

그 착각은 곧 이런 감정으로 이어진다.
“내가 널 이만큼 좋아했으니, 넌 내 감정을 고려해야 해.”


도 넘은 팬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굿즈들을 사줬고, 우리가 당신의 인기를 만들어줬다.”
“팬이 없으면 너도 없다.”

이 말은 겉으론 응원 같지만, 실제로는 빚을 빌미로 한 통제의 언어다.

스케줄을 감시하고, 의상을 평가하며, 인간관계를 간섭하고, 사생활을 위협하고, 행동 하나하나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추려 한다.

그들은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감정이 폭력일지라도 쉽게 변명할 수 있는 구조에 있다는 것이다.

"너무 좋아해서 그랬다.", "실망해서 그랬다.", "다 잘 되라고 한 말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잔인함을 정당화하는 데 가장 자주 쓰이는 단어다.

누군가를 위협하고, 사생처럼 따라다니고, 스토킹하거나, 협박해도, 사람들은 말한다.

“진짜 팬이라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아니다. 진짜 팬은 사랑하지, 감시하지 않는다.


팬심에 기반한 범죄가 계속 늘고 있다.
실제 스토킹, 협박, 살해 위협, 사생활 침해 등 형사사건으로 이어진 사례가 적지 않다.

하지만 아직도 사회는 그걸 ‘도 넘은 애정’, ‘실망에서 비롯된 행동’ 정도로 가볍게 해석한다.

그건 사랑이란 단어에 면역이 생긴 사회의 반응이다.

우리는 사랑이 전부 선할 거라 믿는다.
하지만 감정은 이름이 같다고 해서 모두 같은 성질을 가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너는 모를 거야.”
맞다. 모를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모르는 감정을 근거로 상대를 해치려는 순간, 그 사랑은 폭력으로 바뀐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정도 선 넘는 순간, 그건 증오와 다를 바 없다.

사랑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무너뜨릴 만큼 강한 감정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