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실수 없는 인간을 요구하다

회복이 사라진 사회

by 한자루




“그 사람, 예전에도 그러지 않았어?”
“과거에 그랬데. 끝났지 뭐.”
“이미지? 한 번 무너지면 다시는 못 되돌려.”

우리는 지금, 마치 한 번도 실수하지 않은 사람처럼 살아야 하는 시대에 서 있다.

사과해도 부족하다. 뉘우쳐도 늦다. 사라져도 끝나지 않는다.


원래 실수란, 돌이키고 다시 배우기 위한 인간적 한계의 징표였다.
실수는 불완전함의 다른 이름이었고, 그 불완전함은 곧 성숙을 향한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한 번의 말실수, 오래 전 남겨둔 트윗 하나, 맥락이 잘린 영상 몇 초가 그 사람의 전부가 된다.

오늘날 사회는 실수를 사고가 아니라 정체성으로 바꿔버린다.
더 이상 “잘못을 저질렀다”가 아니라, “그는 그런 사람이다”로 고정된다.


문제는 비난 자체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닫아버린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묻는다. “사과했는데 왜 또 문제냐?”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말은 이거다.
“사과했는데 왜 아직 살아 있냐?”

실수를 하면, 사라져야 한다.
말해도 안 되고, 모습을 보여도 안 되고, 복귀를 말하면 무례가 된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벌이고, 언제부터가 회복일까?


우리는 지금, ‘벌을 받는 중’이라는 걸 증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소속을 잃고, 계약을 끊기고, 침묵 속에 시간을 보내며, 온라인 흔적을 지워야 한다.

그제야 “반성 중”이라는 인정을 얻는다.

그러나 그 과정이 끝나도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아직도 활동해?”, “사람들은 쉽게 안 잊어.”, 그 말은 마치 선언 같다.

“너는 돌아올 수 없어.”


모든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 이 단순한 진실은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불안한 경고처럼 다가온다.

“그렇다면 언젠가 나도 저 자리에 설 수 있겠구나.”

그래서 사람들은 타인의 실수에 더 날카로워진다.
더 빨리 분노하고, 더 확실히 선을 긋고, 더 오래 기억하려 한다.

그건 정의감이 아니라, 나 스스로 단죄당하지 않기 위한 방어 본능이다.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잘못 이후의 삶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에서, 누가 끝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인간은 누구나 잘못한다.

중요한 것은 그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고,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쌓아가는 시간이다.

그러나 지금 이 사회는 그 어떤 노력도, 그 어떤 시간도 “너는 이미 틀렸다”는 말 앞에 무력해진다.

실수를 기억하는 사회는 필요하다.
그러나 실수 이후의 길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는 공포만 남긴다.


용서는 단순히 가해자를 위한 제도가 아니다.
그건 공동체가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이다.

실수를 한 사람을 영원히 배제하는 사회는 결국 언젠가 실수할 모든 사람을 배제하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사람 속에는 나 역시 포함된다.

회복 없는 사회는 정의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도 끝내 안전하지 못한 사회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그 잘못 이후에도 여전히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