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합격을 위해 미역국을 버린 우리

흔들림과 금기에 대하여

by 한자루




미역은 부드럽고 미끄럽습니다.
숟가락으로 건져 올려도 길게 늘어지고, 젓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며 국속에 스르르 가라앉기도 합니다.

누군가 그런 미역을 바라보며 말했겠지요.
“이걸 먹고 시험 보러 가면, 미끄러져 떨어지겠네.”

그리고 그 말은, 오랫동안 수험생의 밥상 위에서 ‘금기’의 형태로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정말 음식에 대한 경고였을까요?
아니면 떨어질 수도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잠시 덮고 싶은 마음이었을까요?


미역국은 누군가의 탄생을 기념하는 음식입니다.
생일날, 아이를 낳은 날, 어머니가 처음 마주한 산고와 회복을 상징하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즉 미역국은 ‘처음’과 ‘시작’을 기억하게 합니다.
하지만 시험은 반대로, ‘성과’, ‘판단’, ‘결과’를 요구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이 두 시간은 충돌합니다.

기억은 느릿하고 따뜻하며 되돌아보는 시간이지만, 성공은 빠르고 정확하고 앞만 보아야 하는 시간입니다.

시험 전의 미역국은 어쩌면 지금의 나를 일깨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나’,
혹은 '실패했던 나'를 건드리는 음식일 수도 있습니다.


시험에 대한 한국 사회의 태도는 유난히 단호합니다.
떨어지는 사람은 잊히고, 합격한 사람만 기억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떨어짐 자체보다, 그 실패를 목격당하는 일을 더 두려워합니다.

미역국이 문제였다고 말하면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 ‘작은 실수’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떨어졌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미신을 만들어 냅니다.

이때 미신은 ‘믿음’이 아니라 침묵의 구조화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이 미신에는 한국 사회의 젠더적 시선도 엿보입니다.

미역국은 산모가 먹는 음식입니다.
생명과 회복, 어머니의 신체와 가장 가까운 음식입니다.

그런데 수험생은 ‘전투’로 간주되고, 그 전투의 주체는 오랫동안 남성적 상징에 가까웠습니다.
냉철하고 집중적이며, 감정을 배제하는 상태.

따뜻하고 느릿하며, 몸의 회복과 연결된 미역국은 이 전투적 성공 서사에 어울리지 않는 음식이 된 것입니다.

시험 전 미역국을 금기시한다는 말은, 어쩌면 ‘그날 만큼은 돌봄도, 감정도, 출발도 배제해야 한다’는
냉혹한 경쟁 서사의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가만히 보면, ‘떨어진다’는 말도 ‘미끄러진다’는 말도 그 자체로는 그리 무서운 일이 아닙니다.

미끄러지면 다시 일어나면 되고, 떨어졌다면 다시 도전하면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 두려운 것은 미끄러졌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들키는 일, 그리고 ‘이유 없는 실패자’로 남겨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소한 음식 하나를 탓하고, 그것에 책임을 넘기고, 그 책임의 증거를 조심스럽게 회피하려는 겁니다.


미역국은 실패를 부르는 음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삶의 출발을 상기시키는 음식, 그리고 당신이 실패해도 괜찮은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음식입니다.

우리가 시험을 앞두고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음식이 아니라,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

그리고 떨어졌을 때 그 실패를 함께 견뎌주지 않는 시선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때때로 “미역국은 안 된다”는 말은, 미신이기 이전에 그 실패를 감당하게 될 당신을, 누군가가 조용히 걱정하고 있다는 신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 조심스러운 마음을 믿지 않더라도, 그 마음의 무게와 사랑만큼은 존중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그리고 언젠가, 그런 걱정조차 웃으며 넘길 수 있을 만큼 실패에도 단단해진 우리가 된다면,

미역국 한 그릇쯤은 아무렇지 않게 삼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미역은 미끄럽지만, 바다의 깊이를 견디며 자란 식물입니다.
미역국 한 그릇 앞에서 망설여진다면, 바다를 이겨낸 식물처럼 우리도 그 깊이를 지나오고 있다는 걸 기억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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