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last dance ②
롤러코스터 혹은 회전목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기댈 곳은 여전히 문재인 정부뿐이었다.
북한은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인해 극심한 식량난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존심 센 북한 또한 이례적으로 식량난을 인정하였는데,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 6월 15일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다"라면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라고 지시했다.
한편으로, 회심의 카드로 준비 중이었던 '영변 핵시설'의 재가동 또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해 포착된 만큼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판단이었는지 결국 김여정 부부장을 내세워 '대남 유화 제스처'에 나서기에 이르렀다. 이에 문재인 정부가 혹하는 듯하니 미사일과 담화를 적절히 섞은 '화전양면전술'에 돌입한 것이다.
지난 17일은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지 3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1991년은 '자유진영' 미국과 '공산진영' 소련의 냉전이 끝을 향해 내달리던 시기였다.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 성격으로 끝없이 대립해온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다는 것은 '냉전체제'의 완전한 종식을 의미했다.
당시 외교 정세에 깊게 관여한 한 인사에 따르면, 당초 북한 김일성 주석은 "남북 동시 가입은 영구 분단이다"라며 반대했다. 심지어는 국명을 하나로 하여 가입하되, 6개월 단위로 남북이 번갈아가며 유엔 대표자를 맡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대한민국과 수교를 맺은 소련이 동시 가입에 전향적이었고, 소련이 돌아선 이상 중국 또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고위급 인사가 방북하여 "북한이 끝까지 반대한다면 남한의 단독 가입을 막을 방법이 없다"라는 뜻을 전했고, 결국 북한은 뜻을 굽혔다. 이로써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쟁은 끝이 났다. 대한민국의 압도적 승리였다.
전 통일원 차관이자 외교가의 원로인 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은 "북한을 개혁 개방할 기회가 그때였다"라고 회고했다. 대한민국과 소련-중국의 수교로 인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린 북한은 얼마 가지 않아 스스로 무너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
고령의 김일성 주석을 대신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실권을 휘두르던 북한. 1997년 귀순한 황장엽 장군이 "그냥 두면 5년 안에 망한다"라고 평가하던 시절의 북한. 어쩌면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질서에 따라 '민족통일'의 대업을 이룰 기회였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김 이사장은 당시 상황을 돌아보며 "그런 북한 정권을 DJ가 살려냈다. 북한 인민이 아니라 북한 정권을 살려냈다"라고 말했다. 기어코 살아난 북한 정권이 핵 미사일을 가지고 군사 위협을 거듭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낙관적이었다"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우리는 과거의 사례에서 배워야 한다. 1991년 9월 남북 유엔 동시 가입을 계기로 피어난 '민족통일'의 기회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그로 인해 30년간 어떠한 일들이 반복되어왔는지를 보아야 한다. 이를 통해 깨닫는 바가 있다면,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모를, 30년 만에 돌아온 호기를 놓치지 말고 '제대로 된' 대북정책으로 '제대로 된' 평화를 이끌어내길 바란다.
대한민국이 위기의 고개를 오르내리며 결국 평화의 종착지에 도착하는 롤러코스터에 올라탈지, 제자리를 돌고 도는 회전목마에 올라탈지는 북한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결정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생각이며 소속사 및 특정 집단과 관계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