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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코알라 Dec 21. 2022

[월말정산] 말로 보는 정치 이슈
(11월)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월말정산]은 매월 세간의 이목을 끈 주요 '말말말'을 모아 정치 이슈를 소개합니다


2022년 11월 11일. 윤석열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되는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대통령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이번 동남아 순방은 G20 정상회의 뿐만 아니라 'ASEAN+3'와 같은 국제 다자회의를 포함하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등 전 세계 주요 우방국 정상과의 회담이 기대되는 만큼 윤 대통령의 외교 성과를 홍보할 적기였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단은 윤 대통령의 숨가쁜 동남아 순방 일정을 취재하기 위하여 대통령 전용기에 함께 올랐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MBC의 취재기자는 그러하지 못했다.


■ 천리를 갈 게 두렵다면... 애초에 발도 안 달린 말을 만들지 말았어야죠


◎11월 9일

대통령실 "(출입기자) 대통령 전용기 탑승은 외교 안보 이슈 관련한 취재 편의"

대통령실 "MBC 외교 관련 왜곡·편파 보도 반복... 취재 편의 제공하지 않기로"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을 이틀 앞둔 9일 저녁. 대통령실은 MBC 소속 출입기자에게 '대통령 전용기 탑승 불허'를 통보했다. 대통령실은 MBC가 윤 대통령의 외교와 관련하여 "왜곡되고 편파적인 보도를 반복하고 있다"라고 주장하며, 이를 이유로 '편의 제공' 차원에서 실시해 온 취재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불허한 것이다.


◎11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세금을 써가며 해외 순방하는 것은 중요한 국익이 걸려 있기 때문"

MBC노조 "尹과 대통령실 주장은 궤변... 언론 자유 보장에 대한 월권이자 폭거"

MBC노조 "대한민국 최고 권력 집단의 아집과 독선을 반증"

MBC기자회 "대통령실 주장 궁색... 해명 못해 사태를 키운 건 누구인가"

MBC기자회 "다른 언론사에겐 아무 말 못하면서 MBC만 문제삼는 건 공정하지 않아"


윤 대통령은 10일 출근길 약식 질의응답(도어스테핑)에서 해당 조치와 관련해 대통령의 해외 순방은 국익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이기에 '국익을 훼손하는 왜곡 편파 보도를 반복한' MBC를 배제할 수 밖에 없었다는 인식을 내비쳤는데, 이는 지난 9월 26일 도어스테핑에서 "(MBC가)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하는 것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이와 같은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조치에 대하여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MBC노조)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해당하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조치라고 반발하였다. 또한 대통령 전용기 탑승은 윤 대통령의 개인 재산을 이용하여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고 지적하며 "대통령실의 시대착오적 인식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라고 비난했다.

MBC 기자회 또한 강도 높은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MBC 기자회는 대통령실의 주장이 궁색하다며 "공개된 외교 행사에서 부적절한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키고, 이를 제대로 해명하지 못해 사태를 키운 것은 누구인가"라고 되물으며, 대통령실의 해당 조치는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라고 꼬집었다.


◎11월 10일

언론5개단체 "헌정사 유례 없는 언론탄압이자 폭력... 언론자유에 대한 도전"

언론5개단체 "자신의 무능과 실정이 만든 책임을 언론에 돌리는 저열한 정치적 공격"

SFCC이사회 "(전용기 탑승 불허) 내외신 모든 언론의 자유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켜"


같은 날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여성기자협회, 한국영상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등 5개 언론단체는 긴급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을 싸잡아 비판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전용기 탑승 불허 조치는 "진영을 뛰어넘어 언론자유 보장이라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규정하며 이러한 상태가 계속될 경우 "피흘려 쌓아온 언론자유와 민주주의의 기틀이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울 주재 외신기자로 구성된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이사회 또한 성명을 통해 "MBC 소속 기자들의 전용기 탑승 불허 결정에 깊은 우려와 함께 주목하고 있다"라며 "해당 매체에 대한 제한 조치를 내린 것은 내외신 모든 언론의 자유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라고 밝혔다. SFCC 이사회는 "추후 사태의 전개를 지켜볼 것이며 모든 미디어에 동일한 접근 원칙이 적용되기를 기대한다"라고 강조했다.


◎11월 10일

한겨레 "이번 취재에 대통령 전용기를 거부한다"

경향신문 "정상회의 취재 관련 대통령 전용기 이용하지 않기로 결정"

한국일보 "언론을 입맛에 맞게 길들이려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

조선일보 "전용기 배제는 단세포적이고 감정적이며 잘못된 대응"


거악은 화합을 낳는다. 각기 다른 논조로 정부를 옹호하기도 비판하기도 했던 각 언론사들이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대통령실의 조치를 비판하고 나섰다. 대표적인 보수성향 일간지인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해당 조치가 재고되어야 함을 지적했고,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 진보성향 매체는 아예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하지 않겠다고 선제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11월 10일

대통령실 "MBC 개선 의지 없어... 국익 훼손 다시는 발생하며 안 돼"

대통령실 "취재 제한 아니야... 취재 편의의 일부를 제공하지 않는 것일 뿐"

대통령실 "우리는 얼마든지 언론의 비판 수용할 자세 돼 있다... 문제는 가짜뉴스"


그러나 대통령실은 결정을 굽히지 않았다. 각 언론사와 현업단체, 외신기자와 국경없는기자회 등 국내외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익을 또다시 훼손하는 일이 발생하면 안된다는 판단에서 최소한의 조처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막대한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취재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옳냐는 고민 속에서 취한 조치임"을 재차 강조하며 조치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11월 18일

윤석열 "(MBC) 국가 안보 핵심 축인 동맹관계를 가짜뉴스로 이간질"

윤석열 "(MBC) 악의적 행태 보여... 자유롭게 비판하길"

MBC "무엇이 악의적이었나"


윤석열 대통령이 순방을 끝내고 돌아온 뒤에도 사태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18일 순방 이후 첫 근길 도어스테핑에서 MBC 취재기자 배제를 두고 '선택적 언론관'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는 데 대해 "자유롭게 비판하시라"라면서도 "(MBC가) 동맹관계를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는 악의적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조치를 취한 것이라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서 "대통령의 헌법 수호 책임의 일환으로 부득이한 조치였다"라고 덧붙이며 "민주주의를 받드는 기둥으로서 언론의 자유만큼 책임도 매우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윤 대통령의 답변에 대하여 MBC 취재기자가 "무엇이 악의적이었나"라며 소리쳤으나 윤 대통령은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자리를 떴다. 이후 이기정 대통령비서실 홍보기획비서관이 "가시는 분 뒤에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느냐"라고 지적하였고 이윽고 한바탕 설전이 벌어졌다.

이 비서관은 질의응답을 끝내고 자리를 뜬 윤 대통령에 큰소리를 질문한 MBC 기자에게 "말씀이 다 끝났는데... 예의가 없다"라고 힐난했고, 이에 MBC 취재기자는 "(이 XX 발언을) 우리가 지어낸 거냐, 대통령이 말씀하신 거다"라고 지적하며 "이렇게 편협한 대통령실의 언론관이 문제다"라고 고성으로 맞받아쳤다.


◎11월 18일

대통령실 "확인하기 힘든 말 자막으로 무한 반복... 하지도 않은 말로 거짓 방송"

대통령실 "대통령이 욕설한 것처럼 기정사실화 해 한미동맹을 노골적으로 이간질"

대통령실 "지금까지 사과는 커녕 아무런 답변도 없어... 정부 비판에 혈안"

대통령실 "'광우병' '조국수호' MBC의 가짜뉴스 끝없어... 국민 불안 자극하는 가짜뉴스"

대통령실 "공영방송으로 성찰하기보다 '뭐가 악의적이냐'고 목소리만 높이고 있다"


몇분여간 고성을 내지르며 이어진 실랑이가 전국적으로 보도되자 대통령실은 서면 브리핑을 발표하여 'MBC가 악의적인 10가지 이유'를 꼬집었다. 대통령실은 MBC가 공영방송으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은 채 가짜뉴스와 왜곡보도에 몰두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여태껏) 국민의 불안을 자극하는 내용들을 보도했지만 모두 가짜뉴스였다"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2008년 당시 이명박 정부 초기의 국정난맥상을 낳았던 '광우병 사태'는 MBC의 악질적이고 광적인 가짜뉴스였다. 그러나 2008년의 가짜뉴스를 이유로 들어 14년이 지난 2022년에서야 MBC에 취재 편의를 제공하지 않겠다 으름장을 놓는 게 사태 해결에 어떤 도움이 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여차저차 통 크게 호탕하게 대응하면 될 일을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듯 하나하나 시비를 걸며 방망이질을 해대는 대통령실이 오히려 사태를 확대재생산 하는 꼴이 아닐까 싶다.



사태가 첩첩산중인 마당에, 동남아 순방 중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채널A 기자, CBS 기자 3명이 단독으로 '사적 면담'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아세안 정상회의를 마친 뒤 캄보디아를 떠나 G20 행사가 열리는 발리로 이동하던 윤석열 대통령이 평소 깊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던 채널A 기자와 CBS 기자를 따로 불러내 대통령 전용기 내 분리된 공간에서 약 1시간가량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가뜩이나 MBC 취재기자 탑승 불허 조치로 인해 세간의 눈초리가 얼음장 같이 차가운 와중에 친분이 깊은 특정 기자만을 불러 '사적 면담'을 하는 게 사리에 맞느냐는 거센 비판이 일었다.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인간이라면 도무지 실행에 옮기지 않을 어처구니 없는 기행이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벌어졌다. 이쯤 되면 윤석열 대통령 본인의 문제인지 아니면 엉터리 보좌로 대통령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 참모들의 문제인지 도통 알 수가 없는 지경이다.


역사상 그 어떤 정부도 언론 탄압에 성공한 적이 없다. 가능성도 없고 필요하지도 않은 힘 겨루기에 몰두할 정력이 남아 있다면 국가를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해 1분 1초라도 더 고민하길 바란다. 아무리 훌륭한 연설이라도 소리가 없으면 전할 없으며, 그 어떤 꾀꼬리 같은 소리라도 안에 말이 담기지 않았다면 그저 공허한 울림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생각이며 소속사 및 특정 집단과 관계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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