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부모님 은혜의 시기가 끝났다

by 유자와 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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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는 60살까지만 살고 싶었다. 서른이 되자 70살 까지 살고 싶었다. 마흔이 되자 건강하다면 100살까지도 살고 싶다고 마음이 바뀌었다. 인생을 살아갈수록 더 오래 살고 싶은 욕심이 생겨난다. 일상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모아갈수록 삶의 욕망도 커진다.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2013년 칼리코(Calico)라는 바이오 기업을 세웠다. 칼리코는 인간 수명을 최대 500세까지 연장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노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죽음에 관한 글을 쓰며 남편에게 물었다.


“자기야, 몇 살까지 살고 싶어?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은 기대수명이 120살이래. 난 건강하다면 100살까지 살고 싶은데.”

“아무리 기대수명이 늘어난다고 해도 100살까지 건강한 상태로 살기 쉽지 않을 것 같아. 난 100살은 무리인 것 같고 95살까지 살고 싶어.”

“그럼 나도 95살까지 건강하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다. 이제 살 날이 겨우 55년밖에 안 남았네.”


부모님이 금세 늙은 것 같아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몇 년 전까지는 훨씬 젊어 보였는데. 아빠가 엄마보다 먼저 돌아가시면 어쩌지? 엄마가 아빠보다 먼저 돌아가시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명랑한 은둔자>에서 캐럴라인 냅은 내 마음을 읽은 듯 대답한다. 당신이 그동안 누리던 ‘부모님 은혜의 시기’가 이제 끝난 거라고. ‘부모님 은혜의 시기’란 당신이 부모에게 복종하지 않아도 될 만큼은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 부모를 걱정할 만큼은 나이가 들지 않은 시기, 그 짧은 기간이라고 정의한다. 나는 이제 부모를 걱정할 만큼 나이를 먹었다.


내 어린 시절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유일한 사람. 세상에서 가장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진다면 의연하게 감당할 수 있을까? 몇 년 전 교회 친구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친구는 울면서 말했다.


“예전에는 천국이 피상적으로만 느껴졌는데,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나니 이제야 생생하게 다가와.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


엄마는 말한다.


“아빠와 나는 둘 다 잠을 자다 하늘나라 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너희들이 병간호 하느라 힘들지 않도록 우리가 비슷한 시기에 죽으면 좋잖니.”


죽음 앞에서도 자식 걱정하는 게 부모 마음이다. 부모님은 이미 죽음에 관한 준비를 해 놓았다. 유언장과 신체 기부 서약서를 작성했다. 혹시라도 암에 걸릴시 항암치료나 수술은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사전 연명 의료의향서도 등록했는데 이는 죽음에 임박했을 때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등의 치료를 받을지에 관한 내용이다. 2021년 기준으로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에 등록한 사람은 67만 명. 가장 많이 거부한 연명의료 행위는 심폐소생술(CPR)이며,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순이라고 한다. 나 역시 의식이 온전한 상태에서 죽고 싶은 소망이 있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 존엄사 문제가 나왔다. 친구는 자기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존엄사를 선택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존엄사 하고 싶어도 못하는데?”

“다 방법이 있어. 스스로 곡기를 끊으면 돼.”


어떻게 죽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는지도 중요하다. 시간이 갈수록 남은 생애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사람은 태어나면 사회와 지구에 반드시 기여를 한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인생을 제대로 살고 아름답게 끝맺음 하고 싶다. 주변을 돌아보고 후손에게 더 나은 세계를 물려주고 싶다.


필립 로스는 <아버지의 죽음>에서 말한다. 그들은 가버렸지만, 우리는, 아직, 가지 않았다. 이것이 핵심이며,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해도, 이해는 쉽다. 죽음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을 감사하며 산다. 언젠가 내 차례가 돌아온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삶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리고 당신은 지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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