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자율주행이 시급합니다

by 유자와 모과

취직할 때 필수라는 말을 듣고 22살에 1종 운전면허를 땄다. 면허는 취득했지만 차를 산 적이 없으니 당연히 차를 몰 기회도 없었다. 서른 살에 결혼을 하고 서울에서 신혼을 시작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서울 지하철과 버스 노선은 완벽하니까. 머리카락이 하얗게 될 쯤에는 레벨 4단계의 자율주행차를 타볼 수 있을 거라 소망하며 그때까지 건강관리나 잘 하자 싶었다. 하지만 종종 그렇듯 미래는 계획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아빠는 수원으로 이사 온 후 가끔 지하철만 이용하고 운전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오래전 운전을 그만두었고 아빠는 체력이 약해져 운전하는 게 부담 된다고 했다. 시야도 좁아지고 몸의 반응도 예전보다 민첩하지 못해 운전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으셨다. 아빠가 2년 전 새로 뽑은 레이는 주차장 구석에서 갓 구운 식빵처럼 놓여 있을 뿐이었다. 어느 날 아빠는 자동차 정기 점검을 하러 정비소에 갔다가 차를 세워만 놓아 브레이크 주변이 조금씩 부식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정비사는 일주일에 두 세 번 차를 움직여 주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부모님은 차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마침내 나를 떠올렸다(나는 우리 집 해결사다!). 아빠는 내가 차를 가져가고 급한 일이 있을 때만 운전해 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나는 단번에 싫다고 했다. 차 없이도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데 이제 와 굳이 운전 할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운명은 ‘앙겔루스 노부스’의 천사처럼 과거를 향해 얼굴을 돌리려는 인간을 새로운 미래로 끝없이 몰아넣는다.


일주일에 두 번 부모님 댁을 마을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하는데 반찬이나 각종 짐들을 들다보니 힘에 부쳤다. 결정적으로 부모님과 나들이를 떠난 어느 날, 아빠가 힘들게 운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결국 운전대를 잡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2주간 장롱면허 운전 연수를 받았다. 아빠 차를 넘겨받았다. 40년 만에 처음으로 운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운전대를 잡으니 기동력이 놀랍도록 향상된 기분이다. 예전에는 가고 싶은 장소가 있으면 대중교통이 있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이제는 차 시동을 켜고 주소를 찍은 후 출발하면 된다. 서울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은 막히지도 않는다. 동해 바다가 보고 싶다고? 인터넷으로 표를 예매하고 시간에 맞춰 지하철을 타고 서울 역에 도착한 후 기차를 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산속을 걷고 싶다고? 버스가 다니는 휴양림이나 수목원을 찾은 후 무거운 짐을 등에 메고 버스를 타는 대신 시동을 켜고 트레킹화를 뒷좌석에 던지면 끝이다.


일 년 만에 운전이 삶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10분이면 걸어올 거리를 차 타고 오는 지인들을 보며 혀를 쯧쯧 찼었다. 이젠 내가 더하다. 세월이 흘러 더 이상 운전 하지 못하는 때가 오면 상실감이 클 것 같다. 한국은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기에 진지하게 고령 운전자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운전면허를 반납하는 고령자에게 대중 교통비를 지원하겠다는 정책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서울과 수도권에 사는 어르신은 지하철과 버스 노선이 촘촘한 편이다. 양양 상평리에 사는 우리 할머니는 시내라도 한번 나가려면 하루에 6번 운행하는 버스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야 한다. 보행이 불편한 고령자에게 운전은 ‘이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자동차 바퀴는 지팡이처럼 두 발의 보조 역할을 하는 도구로 유용하다. 나이가 많으니 운전 하지 말라는 권유는 누군가에겐 폭력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선진국에서는 고령 운전자 안전 증진을 위한 제도를 정비하는 추세이다. 미국에서는 고령자 면허 갱신 주기를 3년 이하로 제한하고, 고령 운전자 전용 교육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있다. 영국은 전문 교육기관에 고령 운전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위탁 운영한다. 프랑스는 병원마다 고령 운전자 전용 의료지침서를 배포하여 운전자들의 운전능력 저하를 확인하고 있다.

고령화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에 자동차도 고령 운전자에 맞춰 변해야 한다. 차선 이탈 방지 시스템, 긴급 제동 시스템, 사각 지대 경고 센서 등 부주의한 운전으로 인한 사고를 줄이는 안전 장비가 속속 개발되고 있다. 고령 운전자에게 특화된 자동차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조수석에 앉아 내가 운전하는 걸 지켜보던 아빠가 물었다.


“운전 안하니 편하고 좋네. 근데 완전 자율주행 차는 언제쯤 나올까?”

“글쎄, 20년은 걸릴 것 같은데.”

“그럼 나는 안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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