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보이지 않는 노인들

by 유자와 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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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녹내장 판정을 받았다. 남편 회사에서 복지 차원으로 제공하는 건강검진에서 발견되었다. 오른쪽 눈 시신경이 손상된 흔적이 있어 녹내장이 의심되니 안과에서 안저 검사를 받아보라는 소견이었다. 녹내장은 노인이 걸리는 병이라 생각했다. 믿을 수 없었다. 다시 안과에 방문해 정밀 검사를 받았다. 안압은 13이 나왔다.


안압은 눈의 압력을 말하는데 안압이 오르면 시신경에 압력을 가해 손상이 일어난다. 정상범위는 10~21 mmHg까지라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정밀 사진을 찍어보니 오른쪽 눈 특정부분에서 시신경 손상이 발견됐다. 의사는 녹내장 초기라고 말하며 안약을 처방해 주었다. 초기에 발견해 다행이라며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안압이 정상인 사람이 녹내장이 발생하는 경우는 '정상안압녹내장'이라 부른다. 일본, 한국 같은 북아시아 지역에서 빈도가 높다고 한다. 시신경이 손상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추측한다. 시신경이 원래 약한 경우와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는 경우이다.

정상안압녹내장 환자의 경우 손발이 차거나 편두통이 있는 경우가 많다. 당뇨병이 있는 사람에게도 발생빈도가 높다고 적혀 있다. 물론 유전도 있고. 처음에는 끔찍할 만큼 공포심이 들었다. 죽는 날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을 작정인데 벌써부터 시신경이 망가졌다고? 하지만 인간은 결국 자신의 불행을 받아들인다. 내 육체는 젊음의 경계선을 넘어 노화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


나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이다. 노화가 나타나는 시기나 정도는 개인차가 있지만 세포 수명이 감소되는 건 막을 수 없다. 행동이 느려지고 눈이 침침해진다. 귀가 잘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정신까지 퇴보하는 건 아니다. 젊은 사람보다 더 활기찬 삶을 살아가는 노인도 많다.


아빠는 하루 종일 신나게 글을 쓴다. 엄마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주변의 건강 문제를 해결한다. 시어머님은 매년 새로운 악기에 도전한다. 아버님은 옥상 밭에서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농작물을 심고 거둔다. 96세인 우리 할머니는 매일 몇 시간씩 묵주 기도를 드린다. 나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열심과 인내의 모습들이다.


우리는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아빠가 집을 구입할 때 대출을 받으러 은행을 방문한 적이 있다. 나도 함께 갔다. 직원이 서류를 내밀며 작성해야 할 부분을 알려주었다.


“이메일 없으시면 안 쓰셔도 되요.”

직원은 아빠가 이메일 주소를 쓰고 영어 이름을 적는 걸 보더니 말했다.

“엘리트시네요.”


노인은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한다. 노인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노인은 평가절하 되고 사회에서 추방당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떨칠 때 노인은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어 집에만 머물라고 강요당했다. 노인 모두가 이미 코로나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요양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기본적인 인권조차 존중받지 못했다. 노화 자체가 질병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격리가 이루어진 셈이다. 노인은 단절된 공간에서 오랜 시간 두려움에 떨며 외로움을 견뎌야 했다. 집에 머물라는 무언의 압박으로 많은 노인이 우울증에 시달렸다. 밖에 나가지 못해 보행능력 쇠퇴를 불러오는 최악의 환경에 놓이기도 했다.


거리두기가 완화될 무렵 엄마가 치과에 간 사이 아빠와 점심을 먹으러 집 근처 식당에 갔다. 대학교 정문 앞에 있는 식당이었다. 아빠는 생선가스를 먹다 주위를 둘러보더니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서 나이든 사람은 나밖에 없네.”

나는 명랑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게요. 학교 앞이라 그런지 나이든 사람이 우리밖에 없네.”


노인 한 분이 세상을 떠나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말이 있다. 농업사회에선 맞는 말이었다. 노인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농사를 지어왔다. 젊을 세대에게 전해줄 고급 정보가 있었다. 젊은이는 경험을 전수해주는 노인을 존경했다. 노인은 자연스럽게 권위가 생겼다. 노인 인구가 지금보다 훨씬 적다는 것도 한몫했다.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며 노인의 쓸모?는 조금씩 축소되었다. 현재 세상의 거의 모든 정보는 스마트 폰에서 찾을 수 있다.


키케로는 <노년에 대하여>에서 노년을 거대한 연극의 마지막 장이라 표현한다. 그렇기에 아무리 지겹고 힘들더라도 끝까지 지치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고 독자를 다독인다. 한 명도 빠짐없이, 누구나, 언젠가는, 노년의 과정을 겪으며 자기 삶에 주어진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빅터 프랭클은 말한다. 노인은 자기 인생의 수확물을 쌓아 놓았고, 그 수확물에는 그가 해 놓은 일, 사랑했던 사람, 용기와 품위를 가지고 견딘 시련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오히려 젊은 사람이 나이든 사람을 부러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노인은 각자만의 의미를 성취했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과거가 지닌 자산들을 가져 갈 수 없다. 노인 스스로가 존엄성을 회복해야 한다.


현재 그 사람이 사회에 쓸모 있든 없든 상관없이,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가 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소외시키지 말고,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져야 한다. 사회적 이미지에 짓눌리지 말고, 입 다물고 돈이나 내라는 분위기에 주눅 들지 말고, 노인을 차별하는 문화와 싸우며, 열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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