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둘이서 와인 한잔 - 프롤로그

프롤로그

by 유자와 모과



얼마 전 마트에서 와인을 고르다 예전에 마셔봤는지 아닌지 기억이 안나는 와인이 눈에 띄었다. 와인 몇 병을 품에 안고 집에 돌아와 모과에게 말했다. ‘내가 마신 와인 기억할 수 있게 이거 그림 좀 그려줘.’ 모과는 와인 이름을 메모해 놓으면 되지 않느냐 물었고 내가 들은 척도 하지 않자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럼 난 그림을 그릴 테니 넌 와인 한 병에 A4지 한 장 글을 쓰는 게 어때?’ 늘 이런 식이다. 자기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 혼자 와인을 마시며 노는 꼴은 절대 못 보겠다는 거지.


20대 때 한창 칵테일에 빠져 제조법을 배우고 칵테일 도구와 시럽을 구입하여 바텐더 흉내를 냈던 적이 있었다. 몇 년을 그러고 나니 칵테일은 여행지에서 마시는 게 가장 낫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른 살이 되고부터는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밖에서 마시는 건 식사와 곁들이는 하우스 와인이 대부분이기에 주로 집에서 혼자 마셨다. 한 달에 두 병 정도 10년을 마셨으니 적어도 240병의 와인이 나를 즐겁게 해 준 셈이다.


오랜 기간 꾸준히 마시긴 하였지만 전문가처럼 와인 맛을 세밀히 느끼고 감탄하고 품평할 수 있는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고 아마 평생 그 근처에도 못갈 것이다. 다소 우습고 무식한 방법이긴 하지만 내가 한국에서 와인을 고르는 기준은 3만원이 넘느냐 넘지 않느냐이다. 3만원이 넘는 와인은 마실 때 맛있다는 기분이 든다. 목 넘김이 부드럽다. 3만원 아래 와인은 마실 때 왠지 알코올 맛이 살짝 느껴지거나 거친 느낌이 든다. 물론 국가와 포도 품종에 따라 가격을 좀 더 올려야 하는 와인이 있긴 하지만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따라서 웬만하면 3만 원 이상의 와인을 사려 하지만 긴축 재정이 필요한 달은 만 원짜리 와인도 기꺼이 구매한다.


와인 한 병을 마실 때마다 글을 쓰기로 하긴 했는데 와인이 맛있다는 말 외에 무엇을 더 추가할 수 있을까? 변변찮은 와인 지식으로는 한 문장도 떠들기 어렵겠지만 글을 쓰다보면 내가 아닌 글이 나를 끌고 가는 경우가 더 많으니 우선 시도는 해봐야겠다. 그대 눈동자에 건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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