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시작은 요리책이었다.
도서관에서 <수퍼판 이정욱>이란 책을 훑어보았다.
‘등심을 넣어 끓인 청국장, 고기 밑간은 참기름으로 하는 게 맛있다. 진미채를 찜기에 7분 삶아 양념하면 훨씬 부드럽다’는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우선, 청국장을 만들기 딱 좋은 계절이었다.
생선구이와 마찬가지로 청국장도 존재감이 강하기에 요리할 땐 창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식사 후에도 환기를 시켜야 해서 한겨울엔 만들기 두려운 메뉴다.
이제 봄이 왔으니 마음껏 청국장을 먹을 수 있다.
때마침 얼마 전 두부 집을 새로 발견했는데, 그곳 두부가 기가 막힌 맛이라 조만간 청국장도 살 예정이었다. 거기에 등심까지 넣으면 청국장이 얼마나 더 맛있어지겠는가.
상상만 해도 침이 꿀꺽 넘어갔다.
다음으로, 그동안 고기 밑간은 들기름으로 했다.
어디선가 참기름보다 들기름이 몸에 더 좋다는 말을 들어서였다(그러고 보니 진짜인지 확인도 안했네).
맛도 비슷비슷한데 굳이 두 종류를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들기름으로 고기도 재우고 나물도 무쳤다.
그런데 고기는 참기름이 더 낫다고? 오호.
마지막으로, 진미채.
맛있지만 집에서 만들면 딱딱해져서 안 하게 되는 반찬이다.
미리 찜기에 찌면 부드러워진다니. 간단하지만 놀라운 방법이다.
좋아. 이것도 해봐야지.
그리하여 등심, 참기름, 진미채를 사러 갔다.
단골 정육점에 가서 ‘안심 100g’을 달라고 했다.
아저씨는 거대한 냉동고 안에서 고기를 꺼내더니 조심조심 포장지를 벗겼다.
그러더니 소시지처럼 동그랗게 말린 고기를 살짝 썰어냈다.
등심이 저렇게 귀한 고기인가? 불안해졌다.
다이제스티브만한 크기의 고기 한 점이 저울 위로 올라갔다.
“85g이네요.”
“얼마에요?”
“만 삼천원이요.”
“네?”
“안심이 좀 비싸요.”
그렇다. 잘못 말했다.
등심을 달라고 했어야 했다.
그동안 갈비살, 채끝, 등심은 사 보았지만 그 비싸다는 안심을 사는 건 처음이었다.
그저 청국장에 넣을 건데...
참기름에 재울 미국산 갈빗살도 한 팩 구입했다. 170g에 8500원이었다.
참기름과 진미채를 사러 하나로마트에 갔다.
국산 참기름 한 병(160ml) 가격이 24,000이었다.
가격이 잘못 적힌 줄 알았다. 들기름 가격의 두 배였다.
온라인으로 검색하니 그 가격이 맞았다.
비싼 이유를 찾아보니 수확량이 들깨보다 현저히 적어서였다.
그동안 참기름은 선물로 받기만 했지 돈 주고 사 본 적은 없었기에 이렇게 비싼 줄은 정말 몰랐다.
페루산 오징어로 만든 백 진미채 가격은 더 충격적이었는데, 300g에 무려 24,500원이었다.
다들 왜 이러는 걸까.
예전엔 만 원 초반에 샀던 것 같은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것도 이유가 있었다.
백진미채는 오징어를 말려 얇게 절단한 건어물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기후 변화로 동해산 오징어 어획량이 급감했다.
수입산도 환율과 국제 물류비 상승으로 가격이 껑충 올랐다고 한다.
그리하여 오늘 차릴 식사는 어쩌다 보니 사치스러운 한 끼가 되었다는 걸 미리 말씀드린다.
조리법은 간단하지만 맛은 최고다.
청국장부터 끓여보자.
재료는 다음과 같다.
쇠고기 등심 혹은 양지 100g(없다면 진한 멸치 국물로 대체), 김치 200g(종이컵 한 컵), 신용카드 크기의 다시마 한 장, 느타리나 표고버섯 한 줌, 청국장 120g, 두부 반 모(200g), 애호박 반 개, 대파 한 줄기, 된장 1T, 다진 마늘 1T다.
무가 있다면 넣어라.
나는 무를 안 좋아해서 안 넣는다.
먼저 키친타월로 고기를 꾹꾹 눌러 핏물을 제거한다. 그리고 작은 조각으로 썰어 놓는다.
김치는 소를 털어내고 한입 크기로 썬다.
무는 얇게 나박 썰고, 애호박과 두부는 작게 깍둑 썬다. 대파도 총총 썬다.
냄비에 들기름을 두르고 고기와 김치를 넣어 볶는다.
어느 정도 볶아졌다면 냄비에 물 500ml(멸치 국물이 훨씬 낫지만 우리집엔 멸치가 없다)와 다시마 한 조각을 넣고 15분을 끓인다.
그후 청국장을 제외한 모든 야채를 넣고 된장과 다진 마늘을 넣어 10분 끓인다.
싱거우면 간장을 조금 넣어라.
마지막으로 청국장을 넣어 5분 더 끓여내면 완성이다.
청국장은 살아있는 유산균이 많아 짧게 끓이는 게 좋다.
갈빗살은 미리 재우고 굽기만 하면 끝이다.
1인분(170g) 양념장은 이렇다.
다진 마늘 2T, 간장 2T, 설탕 1T, 참기름 2T, 맛술 1T, 후추를 섞는다.
키친타월로 고기를 꾹꾹 눌러 핏물을 뺀 후 양념에 1시간 재우면 된다.
구울 땐 먼저 센불에 올려 육즙을 가둔 후 중불에서 마저 익힌다.
진미채 무침도 쪄서 양념을 섞으면 끝이다.
2인분(150g) 양념장은 이렇다.
고춧가루 1T, 고추장 2T, 간장 1T, 매실청 2T, 조청 2T, 식초 1T, 참기름 1T다.
먼저 찜기에 물을 올린 후 끓으면 진미채를 넣고 7분 찐다.
볼에 진미채를 넣고 양념장을 섞으면 된다.
들기름 대신 참기름으로 요리해 보니 고소한 맛이 강하게 난다.
확실히 고기 냄새를 잡는 용도로는 참기름이 더 나은 것 같다(나물을 무칠 땐 진한 향이 방해가 되니 들기름을 써야 한다).
한우 안심 원뿔을 넣은 청국장 맛은 어떨까?
고기가 부드러워 식감은 매우 좋지만, 청국장 향이 워낙 강해 이 고기가 소고기인지 돼지고기인지 닭고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우 안심을 넣었으니 더 맛있을 거라는 플라시보 효과만 있을 뿐이다.
두부와 청국장 퀄리티가 좋다면 굳이 고기를 넣지 않아도 되겠다는 결론이 난다.
꼭 넣고 싶다면 양지를 넣어라.
갈빗살 구이와 진미채 무침은 요리책 조언대로 참기름으로 밑간하고 찜기에 찌니 훨씬 맛있고 부드럽다.
앞으로도 이 방법대로 하겠다.
오늘 밥상 비용을 계산하니 2인분에 대략 4만 5천원이 나온다.
참기름 가격과 노동력 비용은 뺀 거다.
이럴 거면 밖에서 사 먹는 게 나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실패가 있어야 성공도 있는 거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재밌으니까.
**모과가 아직 그림을 그려주지 않아 우선 사진으로 대체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하나씩 글을 쓰기로 했는데 봄이 오니 쉽지 않다...
날씨가 포근해질수록 시선이 자꾸 밖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