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닭다리살 원팬 구이

by 유자와 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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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룽지 백숙을 좋아한다.

백숙에 들어있는 누룽지와 죽 때문이다.

누룽지 백숙을 처음 맛본 건 서른 살이 넘어서였다.

시부모님께서 맛있는 걸 사주겠다며 대전의 한 식당에 데리고 갔다.

처음엔 백숙에 왜 누룽지를 넣었나 했다.

백숙 국물에 스며든 고소한 누룽지를 떠먹으며 다짐했다.

이제부턴 누룽지 백숙만 먹겠다고.

그 집 누룽지는 식당에서 직접 만들었다.

대부분 공장에서 찍어낸 누룽지를 사용하기에 그 집만큼 맛있지는 않지만, 그냥 백숙보다는 낫다.


갑자기 왠 누룽지냐고 묻는다면, 오늘 만들 음식이 성공한다면 어렴풋이 누룽지 백숙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요리에는 꼭 필요한 소스가 있다.

액상 치킨스톡이다.

직접 닭을 고아 육수를 만들면 좋을 테지만, 내겐 그 정도의 에너지가 없다.

여러분도 그럴 것이다.


고체가 아닌 액상을 쓰는 이유는 조리법 때문이다.

후라이팬에 생쌀을 넣고 그 위에 구운 닭다리를 올려 익혀야 하는데, 고체를 쓰면 재료가 탈 가능성이 높다. 요리 고수가 아니라면 액상을 쓰도록 하자.


닭다리살도 350g 정도 필요하다.

닭고기를 좋아한다면 더 넣어도 된다.

구운 고기를 쌀 위에 얹는 방식이라 고기 양이 기본 양념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쌀은 무조건 흰쌀을 선택하자.

현미나 다른 곡물이 섞이면 설익는다.

나는 쌀통에 발아현미와 흰쌀을 섞어 놓기에 흰쌀만 보관하는 통이 따로 있다.


쌀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쌀은 현미가 좋다.

현미에는 온갖 영양소가 달라붙어 있다.

현미 껍질을 깎고(오분도비), 또 깎고(칠분도미), 또 깎으면 나오는 게 백미다.

쌀겨층과 배아를 제거했으니 남은 영양소가 적다.


단점은 일반 현미 껍질에 포함된 랙틴이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거다.

위가 약한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꼭꼭 씹어먹지 않으면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나도 30대에는 현미밥을 주로 먹었지만, 몇 년 전부터는 발아현미와 흰쌀을 섞어 먹는다.

발아현미는 쌀을 틔운 현미다.

소화 흡수도 잘되고 씹는 부담도 적다.

물에 조금만 불려도 된다.


그렇다면 흰쌀은 아무 영양가 없는 음식일까?

그렇지 않다.

흰밥 한 공기에는 탄수화물 외에 3g 정도의 단백질이 함유되어 있다.

밥만 먹어도 귀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

다만 흰쌀밥만 먹겠다면 처음부터 좋은 품질을 선택하자.

혼합미가 아닌 단일 품종, 도정 날짜가 최신인 걸 고르면 된다.

유기농이라면 더욱 좋을 거다.

한 끼 외식비를 아끼면 유기농 흰쌀 4kg을 살 수 있다.

우리집 기준으로 성인 두 명이 40 끼니를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


액상 치킨스톡, 닭다리살, 흰쌀이 준비되었다면 이제 조리해 보자.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닭다리살 재우기다.

닭고기를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는다.

통에 넣고 맛술, 소금, 후춧가루를 듬뿍 뿌려 1시간 동안 쿨쿨 재운다.

이때 칼집을 넣은 후 소금을 뿌리면 간이 좀 더 잘 벤다.

하지만 그런 게 귀찮다면 나처럼 고기 위에 소금을 듬뿍 뿌리자.


다음으로는 쌀 불리기다.

쌀 한 컵(200g)이면 둘이 먹기 충분하다.

흰쌀을 30분 이상 물에 불린 후 체에 받쳐 물기를 빼자.

이제 냉장고나 뒷 베란다나 혹은 장롱 밑에서 양파 한 개, 대파 한 줄기, 마늘 다섯 알을 꺼내라(3대 필수 양념 재료이니 있으리라 믿는다).

모든 야채를 도마 위에 놓고 잘게 다져준다.


내 말대로 자르는 중이라면 지금쯤 눈물을 흘리고 있을 거다.

매운 향이 공중에서 사라질 때까지 잠시 다른 곳으로 피신해 있자.

물안경이 있다면 이런 시련을 겪지 않을 수 있다.

양파를 자르기 전 잊지 말고 착용하자.


밑 작업이 끝났다면 본격적으로 요리할 시간이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달군 후 닭다리살을 올린다.

중약불로 3분간 가만히 두면 알아서 구워진다.

바삭한 껍질을 원한다면 껍질 쪽만 좀 더 구워주자.

뒤집어서 반대쪽도 3분간 구운 후 접시로 옮겨둔다.

속까지 다 안 익어도 된다.


닭다리살을 구운 팬에 다진 양파, 마늘, 대파를 넣고 약불에 볶는다.

닭다리살에서 나온 기름으로 볶으면 된다.

양파가 갈색이 될 정도로 인내심을 갖고 충분히 볶자.

갈색이 되면 체에 건져 둔 쌀을 넣고 함께 볶는다.

버섯을 넣고 싶다면 이때 넣는다.

표고버섯이 잘 어울린다.

1~2분 볶으면 된다.


마지막으로 육수를 넣자.

육수는 치킨스톡 세 숟가락과 물 200g을 섞어주면 끝이다.

다른 양념은 필요 없다.


생쌀 위에 구운 닭을 올린다.

뚜껑을 덮고 중약불에서 12분 놔두자.

시간이 다 되었으면 뚜껑을 열고 1~2분 정도 수분을 날리며 졸인다.

누룽지 백숙 맛을 원한다면 쌀 밑바닥이 노릇해질 때까지 좀 더 두면 된다.

쪽파가 있다면 총총 썰어 흩날리는 벚꽃처럼 뿌려보자.


이 요리는 비쥬얼적으로도 훌륭하고 고급스러워 보인다.

손님 접대할 때도 좋은데, 왠지 만들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밥맛은 또 어떤가.

빠에야 같기도 하고 누룽지백숙 같기도 하다.

노릇하게 구워진 닭다리살도 맛있지만, 간이 잘 스며든 밥알을 숟가락으로 박박 긁어먹는 게 다섯 배쯤 더 맛있다.


밑 작업이 번거로울 뿐, 기술적으로 어려운 부분은 전혀 없으니 시도해 보자.

치킨스톡 구입을 후회하지 않을 거다.

만약 후회한다면...좀 기다려보라.

치킨스톡을 활용한 다른 요리도 언젠가 알려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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