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 백숙을 좋아한다.
백숙에 들어있는 누룽지와 죽 때문이다.
누룽지 백숙을 처음 맛본 건 서른 살이 넘어서였다.
시부모님께서 맛있는 걸 사주겠다며 대전의 한 식당에 데리고 갔다.
처음엔 백숙에 왜 누룽지를 넣었나 했다.
백숙 국물에 스며든 고소한 누룽지를 떠먹으며 다짐했다.
이제부턴 누룽지 백숙만 먹겠다고.
그 집 누룽지는 식당에서 직접 만들었다.
대부분 공장에서 찍어낸 누룽지를 사용하기에 그 집만큼 맛있지는 않지만, 그냥 백숙보다는 낫다.
갑자기 왠 누룽지냐고 묻는다면, 오늘 만들 음식이 성공한다면 어렴풋이 누룽지 백숙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요리에는 꼭 필요한 소스가 있다.
액상 치킨스톡이다.
직접 닭을 고아 육수를 만들면 좋을 테지만, 내겐 그 정도의 에너지가 없다.
여러분도 그럴 것이다.
고체가 아닌 액상을 쓰는 이유는 조리법 때문이다.
후라이팬에 생쌀을 넣고 그 위에 구운 닭다리를 올려 익혀야 하는데, 고체를 쓰면 재료가 탈 가능성이 높다. 요리 고수가 아니라면 액상을 쓰도록 하자.
닭다리살도 350g 정도 필요하다.
닭고기를 좋아한다면 더 넣어도 된다.
구운 고기를 쌀 위에 얹는 방식이라 고기 양이 기본 양념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쌀은 무조건 흰쌀을 선택하자.
현미나 다른 곡물이 섞이면 설익는다.
나는 쌀통에 발아현미와 흰쌀을 섞어 놓기에 흰쌀만 보관하는 통이 따로 있다.
쌀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쌀은 현미가 좋다.
현미에는 온갖 영양소가 달라붙어 있다.
현미 껍질을 깎고(오분도비), 또 깎고(칠분도미), 또 깎으면 나오는 게 백미다.
쌀겨층과 배아를 제거했으니 남은 영양소가 적다.
단점은 일반 현미 껍질에 포함된 랙틴이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거다.
위가 약한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꼭꼭 씹어먹지 않으면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나도 30대에는 현미밥을 주로 먹었지만, 몇 년 전부터는 발아현미와 흰쌀을 섞어 먹는다.
발아현미는 쌀을 틔운 현미다.
소화 흡수도 잘되고 씹는 부담도 적다.
물에 조금만 불려도 된다.
그렇다면 흰쌀은 아무 영양가 없는 음식일까?
그렇지 않다.
흰밥 한 공기에는 탄수화물 외에 3g 정도의 단백질이 함유되어 있다.
밥만 먹어도 귀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
다만 흰쌀밥만 먹겠다면 처음부터 좋은 품질을 선택하자.
혼합미가 아닌 단일 품종, 도정 날짜가 최신인 걸 고르면 된다.
유기농이라면 더욱 좋을 거다.
한 끼 외식비를 아끼면 유기농 흰쌀 4kg을 살 수 있다.
우리집 기준으로 성인 두 명이 40 끼니를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
액상 치킨스톡, 닭다리살, 흰쌀이 준비되었다면 이제 조리해 보자.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닭다리살 재우기다.
닭고기를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는다.
통에 넣고 맛술, 소금, 후춧가루를 듬뿍 뿌려 1시간 동안 쿨쿨 재운다.
이때 칼집을 넣은 후 소금을 뿌리면 간이 좀 더 잘 벤다.
하지만 그런 게 귀찮다면 나처럼 고기 위에 소금을 듬뿍 뿌리자.
다음으로는 쌀 불리기다.
쌀 한 컵(200g)이면 둘이 먹기 충분하다.
흰쌀을 30분 이상 물에 불린 후 체에 받쳐 물기를 빼자.
이제 냉장고나 뒷 베란다나 혹은 장롱 밑에서 양파 한 개, 대파 한 줄기, 마늘 다섯 알을 꺼내라(3대 필수 양념 재료이니 있으리라 믿는다).
모든 야채를 도마 위에 놓고 잘게 다져준다.
내 말대로 자르는 중이라면 지금쯤 눈물을 흘리고 있을 거다.
매운 향이 공중에서 사라질 때까지 잠시 다른 곳으로 피신해 있자.
물안경이 있다면 이런 시련을 겪지 않을 수 있다.
양파를 자르기 전 잊지 말고 착용하자.
밑 작업이 끝났다면 본격적으로 요리할 시간이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달군 후 닭다리살을 올린다.
중약불로 3분간 가만히 두면 알아서 구워진다.
바삭한 껍질을 원한다면 껍질 쪽만 좀 더 구워주자.
뒤집어서 반대쪽도 3분간 구운 후 접시로 옮겨둔다.
속까지 다 안 익어도 된다.
닭다리살을 구운 팬에 다진 양파, 마늘, 대파를 넣고 약불에 볶는다.
닭다리살에서 나온 기름으로 볶으면 된다.
양파가 갈색이 될 정도로 인내심을 갖고 충분히 볶자.
갈색이 되면 체에 건져 둔 쌀을 넣고 함께 볶는다.
버섯을 넣고 싶다면 이때 넣는다.
표고버섯이 잘 어울린다.
1~2분 볶으면 된다.
마지막으로 육수를 넣자.
육수는 치킨스톡 세 숟가락과 물 200g을 섞어주면 끝이다.
다른 양념은 필요 없다.
생쌀 위에 구운 닭을 올린다.
뚜껑을 덮고 중약불에서 12분 놔두자.
시간이 다 되었으면 뚜껑을 열고 1~2분 정도 수분을 날리며 졸인다.
누룽지 백숙 맛을 원한다면 쌀 밑바닥이 노릇해질 때까지 좀 더 두면 된다.
쪽파가 있다면 총총 썰어 흩날리는 벚꽃처럼 뿌려보자.
이 요리는 비쥬얼적으로도 훌륭하고 고급스러워 보인다.
손님 접대할 때도 좋은데, 왠지 만들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밥맛은 또 어떤가.
빠에야 같기도 하고 누룽지백숙 같기도 하다.
노릇하게 구워진 닭다리살도 맛있지만, 간이 잘 스며든 밥알을 숟가락으로 박박 긁어먹는 게 다섯 배쯤 더 맛있다.
밑 작업이 번거로울 뿐, 기술적으로 어려운 부분은 전혀 없으니 시도해 보자.
치킨스톡 구입을 후회하지 않을 거다.
만약 후회한다면...좀 기다려보라.
치킨스톡을 활용한 다른 요리도 언젠가 알려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