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들려줘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정연희
*이런 일들은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는 것 같다. 노인들에 대해, 노인들이 다른 사람의 손길을 얼마나 고마워할 수 있는지에 대해. 헤셀벡 부인만 해도 그렇다. 그녀는 자신의 피부에 닿는 인간의 손길 없이 어떻게 살까? 샬린 비버는 어떻고? 사람들은 그것 없이도 어떻게든 살아가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손길이나 포옹의 부재가 어떤 타격을 주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것은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부재하다.
*마음은 마음이 원하는 것을 원한다. 그것은 사실이고, 밥의 마음은 여전히 루시를 원했다. 하지만 한 가지 더 고려할 것이 있는데, 마음은 유기체의 한 부분일 뿐이고, 유기체의 일은 살아남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살아남고자 하는 그 욕망이 이미 밥에게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그 욕망은 자라났다. 마음의 욕망-그것은 줄어들지 않았지만, 계속 자라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런 일이 으레 그렇듯 당연하게도 그것에는 불편함이 존재했다.
<미술관에서 우리가 놓친 것들> 윌 곰퍼츠/ 주은정
*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다지 많이 보지 않는다.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항상 더 많은 것을 보고 있다. 이 점이 나를 설레게 만든다. 모든 것에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심지어 쓰레기봉투에도. 하지만 제대로 보아야만 볼 수 있다.(데이비드 호크니)
*그(이사무 노구치)는 조각의 목적이 “일반적인 생활 경험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개입”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거실의 텔레비전부터 공원의 나무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공간을 방해하지 않고 생겨난” 것이면 어떤 물리적인 오브제도 조각으로 간주될 수 있었다.
<20세기의 거인들> 마이클 만델바움/ 홍석윤
*처칠은 처음부터 영국이 독일에 승리하거나 최소한 살아남으려면, 미국으로부터 얼마만큼의 지원을 받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처칠은 미국의 지원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는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접촉하여 많은 메시지를 주고받았으며, 1941년 7월 대서양을 건너 캐나다 노바스코샤까지 가서 그를 만났다.
*루스벨트의 외교 정책 유산에는 세계에 대한 독특한 미국식 접근 방식 두 가지가 결합되어 있다. 그중 하나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선호한 방식으로, 국제 관계에서는 무엇보다 힘이 중요하며, 때로는 전쟁을 피할 수 없으므로 강력한 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관점이다. 그는 때로는 무력 충돌을 개의치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첫 임기 동안에는 평화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평화를 보장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국가 간의 안정적인 세력 균형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재임 기간 동안 동아시아에서도 그런 균형을 이루려고 노력했다.
또 다른 하나는, 윌슨이 추구한 방식이다. 윌슨은 모든 나라는 그 나라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부를 선택할 수 있는 주권 국가가 되어야 하고, 자신이 주장하는 국제 시스템, 즉 국제 연맹을 통해서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 1947년 2월 초, 영국 정부는 팔레스타인에서 손을 떼겠다고 발표하고 그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책임을 이제 막 생겨난 유엔에 넘겼다. 1947년 11월 29일, 유엔 총회는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국가와 아랍국가로 분할하는 안을 표결에 부쳐 통과시켰다. 이듬해 5월 14일 텔아비브에서 열린 공개 석상에서 벤구리온은 이스라엘 국가의 수립을 선언하는 성명을 큰소리로 낭독했고, 곧바로 미국과 소련이 이를 인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것은 감동의 순간이었다. 한때 번창했지만, 2천년 동안 중단된 유대인 주권이 회복된 것이다. 벤구리온은 그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 “오후 4시에 유대인 독립이 선언되었고 국가가 수립되었다. 이제 이 나라의 운명은 전적으로 우리 방위군의 손에 달렸다.”
*그(벤구리온)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오늘날의 막강해진 이스라엘 군대다. 이 군대가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1948년에는 물론 그 이후에도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벤구리온은 강력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 일은 거의 처음부터 그가 시작했다. 유대인들은 수세기 동안 해외 이곳 저곳을 떠돌며 정치, 경제, 과학 및 문화 활동에 참여했으며 때로는 탁월한 결과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군사적 전통이 엇었다. 그런데 벤구리온이 바로 이 전통을 세운 것이다.
<아트 스피릿> 로버트 헨리/ 이종인
*나체 – 이 세상에 사람의 알몸처럼 아름답고 또 의미심장한 우주의 법칙을 드러내는 사물도 없다. 사실은 예술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인체를 더욱더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키워야 한다. 우리가 나체를 존중하게 되면 더는 그것을 수치스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용모는 밖으로 드러나 있지만 표정은 내면의 삶을 드러낸다. 아름다움은 만질 수 없는 것이다. 표면에 고정할 수가 없다. 하지만 노년의 노쇠함도 그 아름다움을 없애지는 못한다. ‘예쁜’ 얼굴과 ‘아름다운’ 얼굴은 다르다. 예쁜 얼굴은 종종 흐릿하고 공허한 데 비해 아름다움은 절대 흐릿한 법이 없고 늘 모든 공간을 가득 채운다.
*정물의 움직임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정물은 죽어있고 활기없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세잔 같은 화가의 눈에는 정물의 모든 부분이 생생하게 살아 있고 활발하게 상호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자연은 반응하는 힘이 있다. 우리는 늘 그것을 의식해 왔다. 사물이 죽어 있어서 활기가 없다는 우리의 생각은 낡은 규약에 지나지 않는다.
<낯선 사람과 부근을 만들기> 샹바오 외/ 박우
*류사오둥 – 제 생각에 성실하다는 건 끊임없이 스스로를 교정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제가 이 일을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막혔고, 그러다가 정말로 장악하는 방법을 찾아내죠. 이 패배 속에서 그것을 찾아내는 거에요. 저는 익숙한 사람을 그리는 과정에서 성실함이 무엇인지, 태도가 무엇인지 하나씩 배웠습니다.
*류샤오둥 – 복잡함에 대해 말하자면, 창작 과정에서 어떻게 복잡함을 표현할 것인가가 관건입니다. 제 경험상 창작 상태에 들어가면 말초신경이 모두 열립니다. 창작 상태가 아니면 이 신경은 닫힙니다. 저는 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일상에서 창작 상태가 아닐 때 우리는 모든 것을 무심히 지나치게 된다는 것을요. 그냥 밥 먹고, 술 마시는 식이죠. 하지만 창작 상태에 들어가면 먹는 것은 단순히 먹는 게 아니고, 마시는 것도 단순히 마시는 것이 아니게 됩니다. 우리는 먹고 마시는 행위 너머, 삼척 너머의 공간에서 더 복잡한 풍경을 보게 되죠. 그러면 창작 욕구가 생기고 말초신경이 열립니다. 여기 있는 모든 것이 의미를 갖게 되는 거예요. 이 의미는 주관적이고, 제가 말초신경을 열었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입니다.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 머리나 밴줄렌/ 박효은
*뇌가 음악, 시, 그림과 같이 무용한 것들을 추구하지 않고 객관적인 사실이나 정보 탐색에만 몰두하면 감정을 표현하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뇌의 유연성은 퇴행하고 만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부분이 “퇴행”하고 무뎌진 다윈의 뇌는 그때부터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으로 경험할 수 있는 무상한 “즐거움”을 맛보지 못한다.
*손태그에게 집중이란 정보를 무분별하게 소비하지 않는 일이다. 그는 자신이 원치 않으며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창의적인 사고는 정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때 발휘된다.
<시가 나를 지켜주었다> 이제익
*심지어 자기 기분조차 잘 모른다. 뉴스에서 나들이 나온 시민을 인터뷰하는데, ‘이렇게 가족과 함께 둘레길을 걸으니 기분이 좀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아니, 기분이 좋다는 거야 나쁘다는 거야? 나쁘진 않지만 아주 좋진 않다는 건가?
그저 말투일 뿐이라고 넘길 순 없다. 말과 정신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은 관계이며 상호작용을 하는 톱니바퀴이기도 하니까.
<인에비터블 >케빈 켈리/ 이한음
*경험이다. 우리는 그것들에 소중하고 희귀하고 순수한 주의를 기울인다. 그런 경험을 만들어내는 이들에게, 우리 주의는 많은 가치가 있다. 인류가 경험을 빚어내고 소비하는 일에 뛰어난 것도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로봇은 이 방면에서는 결코 따라오지 못한다. 로봇이 우리의 현재 직업을 앗아갈 때 우리 인간이 무엇을 할지 엿보고 싶다면 경험을 보라. 우리가 돈을 쓸 곳이 바로 거기이며(무료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돈을 벌 것도 거기다. 우리는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기술을 쓸 것이고, 우리 자신이 상품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경험을 빚어낼 것이다.
*인터넷은 세계 최대의 가장 빠른 추적기이며, 추적될 수 있는 접속하는 것은 모두 다 추적될 것이다. 인터넷은 모든 것을 추적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추적을 하고, 친구를 추적하고, 친구와 기업과 정부에 추적당할 것이다.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 역시 이것이며 기업도 어느 정도는 그러하다. 예전에 추적하기는 드물고 비싸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몇몇 사람들은 이 추적하려는 편향에 격렬히 맞서고, 일부는 결국 이 편향과 협력할 것이다. 추적하기를 길들이는 법, 예의바르고 생산적으로 만드는 법을 터득한 사람은 성공할 것이고, 금지하고 불법화하려고만 하는 사람은 뒤쳐질 것이다. 소비자는 추적당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겠지만, 사실상 그들은 자신의 자료를 추적기에 계속 입력하고 있다. 혜택 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답을 내놓는 기술은 여전히 필수적인 것으로 남아 있을 것이고, 그에 따라 답은 어디에나 있고, 즉각적이고, 신뢰할 수 있고, 거의 무료가 될 것이다. 그에 반해 질문을 생성하는 기술이야말로 더욱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질문 생성 기술은 쉬지 않는 우리 종이 탐험할 수 있는 새로운 대륙, 새로운 분야, 새로운 산업, 새로운 상표, 새로운 가능성을 생성하는 엔진이라고 올바로 인식될 것이다. 한마디로, ‘질문하기’는 답하기보다 더 강력하다.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제임스 우드/ 노지양
*이 이야기(<입맞춤>)에는 우리의 심장을 파고드는 결정적인 문장 두 개가 있다. “그 사건을 이야기하는 데 그토록 짧은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날의 입맞춤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밤을 새도 모자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장을 쓰려면 작가는 얼마나 진지한 관찰자여야 할까? 체호프는 마치 세상만사와 인간의 심리를 전부 다 알아차리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우리가 머릿속으로 그리는 이야기야말로 가장 중요하다는 것, 그 이유가 인간이란 내면의 이야기를 한없이 확장하는 존재이자 우습과 한심한 몽상가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랴보비치의 머릿속에서 그의 이야기는 점점 커지고 또 커져서 언제 어디서나 동행하는 사건이 되고 삶의 리듬이 되어버린다. 체호프는 랴보비치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고통스러울 정도로 청중이 필요하기도 하고 필요하지 않기도 하다는 사실을 안다.
*물론 우리 아이들이 내가 살았던 것과 똑같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그 세계는 보수주의의 정의와도 같은 세계였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이 내가 어릴 때 느꼈던 것처럼 삶의 혹독함에 충격받기를, 세부 사항들의 생생한 격렬함과 낯섦에 습격당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이들이 그것을 관찰하고 기억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