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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CAT Mar 13. 2020

I'm on your side

밀레니얼 세대. 역사상 가장 높은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지난 100년 동안 가난한 세대, 1980년부터 2000년도까지 태어난 지금의 2030세대를 아우르는 말이다.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 극심한 저성장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세대. 


우리의 부모세대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정도로, 어린시절 가난으로 시작하여 자수성가라는 이름하에 점점 더 부자가 되었지만, 오늘날 우리 세대는 어린시절 부유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 할지라도 점점 가난해질 수 밖에 없는 사회를 살아내고 있다.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절망. 많은 나라들에서 이 밀레니얼 세대들이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곤 하지만 유독 한국이 '헬조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건 앞선 세대가 너무나 큰 '성공'을 이뤘기 때문일 것이다. 


큰 성공을 이룬 세대는 우리세대에게 큰 '기대'를 건다. 진흙 속에서 꽃이 피었고 개천에서 용이 났으니 좀더 좋은 환경을 가진 우리들은 더욱 큰 성공을 이룰 것이라며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정서적 학대 속에서 자라왔다. '우리 때는 이 정도도 못해줬는데, 이 정도만 해줘도 넌 더 큰 성공을 거둬야 하는거 아냐?' 라며. 대가족이라는 가족의 형태는, 핵가족이라는 아주 효율적인 형태로 바뀐다. 선택과 집중. 나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둘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집중투자'를 감행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부모들은 그 '투자'를 '사랑'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이전세대의 '기대'를 투영한 '투자'를 받은 많은 아들딸들이 대학입시라는 전장에 나섰다. 모두의 기대는 동일했겠지만 몇몇 천재들을 제외하고는 '투자'가 빛을 발한다. 사교육 열풍 속에서 불꽃 튀는 입시경쟁를 치뤄낸 아이들은, 끝나기가 무섭게 취직을 위한 2차 대전을 시작해야 했다. 


어학연수, 대학원.. 또 다른 '투자'가 이루어진다. 어찌어찌 취직까지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제 한숨 돌리려니, 연봉 4천을 받더라도 10년동안 한푼도 안써야 '집'을 마련할 수 있는 현실과 마주한다. 게다가 이시기에 결혼과 출산까지 병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다시 부모세대에게 '투자'를 요청한다. '집' 혹은 '결혼', '육아'를 도와달라는 명목하에 말이다. 


투자받을 곳도 없는 젊은 세대들은 비혼을 택하거나 딩크족을 택한다. 그러면서 다시 더욱 효율적인 가족형태로 진화해 나간다. 핵가족을 넘어서서 '개인'으로. '혼밥, 혼술, 혼영..' 

결국 '나'에게만 투자를 하는 시대가 되어버린다. 


역사상 가장 높은 고등교육을 받은 세대. 달리 말해 이전세대로부터 가장 많은 '투자'를 받은 세대. 

선택과 집중, 효율의 원칙 속에서 살아왔던 우리 세대들이 선택하는 것은 이전 세대처럼 '부모'가 되어 새로운 세대를 위한 '희생'을 감내하는 매우 비효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가장 고부가가치 상품인 '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


이 개인화의 문제를 간혹 돌연변이 같은 세대의 문제로 치부해 버리는 이들이 있는데, 이유는 명확하다. 

'가난해서'. 더 적어진 자본으로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표본을 좁혀야 했기 때문에. 

그리고 성장이라는 명목하에 '투자'에 매몰되어 많은 것들을 놓쳐버린 이전 세대들의 '실수' 덕분이다. 


바뀌지 않는 사회. 정체된 사회. 그것은 비단 정치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작은 사회의 표본인 가족 안에서도 이 문제는 여전하다. 

'투자'에 실패한 이들은 자식이라는 투자 대상을 향한 분노를 드러내거나, 아니면 아직 멀었다고 집착을 드러내며 끝이 나지 않는 싸움을 이어간다.  '투자'에 성공한 이들은 '효도'라는 명목하에 배당금을 요청한다. 

그것이 우리 부모세대가 말하는 자식 '농사'다.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농사' 지어졌다. 

자식이기 전에 내 피땀을 흘려 길러낸 '농작물'이고 내 삶을 통째로 올-인한 '상품'이었다. 


작물로, 동물로, 부모세대를 대표하는, 전시된 상품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청개구리 처럼 살아왔다. 

사실 우리 세대가, 내가 바라는 것은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네편이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린-난 마음속에 그 빚을 안고 살아간다. 

성공하고 싶지만 성공이라는 것이 너무나 요원해져버린.

그래서 실패한 '상품'이 되어버린 스스로에게 절망하며 마음의 병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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