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을 나아지게 하는 대화법
"입장 바꿔 생각해 봐." 우리가 자주 듣고 말하는 표현이다. 한자어로 '역지사지', 영어로 'put yourself in someone else's shoes'라고 한다. 이 말을 얼마나 많이 했고, 얼마나 많이 들었을까? 상대를 설득하려 할 때, 또는 누군가 우리에게 부드럽게 이해를 요청할 때, 심지어 억울함을 호소할 때도 이 말을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일은 그리 흔치 않다. 바쁜 일상 속에서 즉각적인 판단을 내리느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 위의 부품처럼 하루하루를 지나치다 보면, 자기 입장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나이와 상관없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브래디 미카코의 책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에서는 '공감'과 '감정이입'을 구분한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것은 '공감'을 넘어선 '감정이입'이라고 설명하며, 단순히 상대방의 신발을 신어보는 것 이상이다. '공감'은 우리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반응이다.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투사하거나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반면 '감정이입'은 의식적인 노력과 연습을 통해 상대의 생각과 느낌을 보다 보편적으로 이해하려는 더 높은 수준의 이해이다.
켜켜이 쌓인 패스트리처럼 복잡한
이러한 이해와 수용의 과정은 타고나는 부분도 있지만, 후천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 각자가 켜켜이 쌓인 패스트리처럼 복잡하고, 서로 다른 경험치, 기질, 배경, 능력,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선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상대를 완전히 알기 어렵다. 아무리 노력해도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노력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대부분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려는 대상은 주로 성인이다. 동료나 상사, 부하 등 대등하거나 수직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의 멋진 구두를 잠시 신어보며 그들의 결정을 예측해 보거나, 우리와 충돌하는 이의 슬리퍼를 신고 우리의 말이 그들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지는 않았는지 고민해 본다. 때로는 그들이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했는지 상상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도 오래가지 않아 "아, 몰라. 나라고 별수 있나? 사는 게 다 그렇지."라며 포기해버리곤 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들의 작디작은 신발을 기꺼이 신어볼 준비가 된 어른은 과연 얼마나 될까? 더 큰 문제는 어른들이 자신의 경험을 기준으로 아이들의 상황을 단정 짓고 섣부른 조언을 쏟아내는 것이다. 이로 인해 아이들에게 새롭게 입혀지는 레이어가 우려된다. 우리의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아이들의 순수한 생각과 감정이 왜곡되거나 억압되지는 않을지, 그들만의 고유한 성장 과정이 방해받지는 않을지 두렵다.
나는 이번에 출간한 <엄마를 위한 멘탈 수업> 1)에서 대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부록 편에서 간략하게 부정적인 대화법으로 무시형, 과민반응형을, 긍정적인 대화법으로 이해&지지형, 공동 문제해결형을 소개했다. 우리는 아이와 대화할 때 특별한 대화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아이의 대화를 통해 단서를 얻고 상황을 파악하며 가르침을 주기 위해 대화를 이끌어갈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없다.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는 가운데 배움이 일어난다고 생각할 때, 대화의 원칙은 의외로 단순하다. 상대의 수준에 맞춰 명확하게 말하고, 상대가 관심 가질 만한 이야기를 나누며, 상대방의 말에서 연결고리를 찾아 대화를 이어가면 된다. 하지만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많은 경우, 가르치는 데에만 집중되어 있다. 가르치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이들이 편안하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감정적인 부분을 적절히 다루지 못한다. 아이들이 하는 모든 말에 교훈으로 되돌려주려 하거나,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 못한 채 항상 가르치려고만 한다. 이럴 때일수록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좋겠다. 과연 아이들은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우리는 무심코 던진 말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을까? 최근 들어 말습관, 말버릇, 어휘 등의 다양한 책들이 출간되는 상황은 우리 사회가 이러한 부분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준다. 내 책에서 소개한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생각해 보자.
위의 상황을 유사한 상황에서 생각해 보자. 회사에서 인간관계로 힘들어하는 당신에게 남편이(또는 아내가) 만일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그 정도로 힘들어할 일이야? 별 거 아니구먼.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몇 번 안 보는 사이인데, 명절에 잠깐 만나서 그런 얘기 듣는 게 뭐 대수라고. 그냥 흘려들어."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당신의 말도 흘려듣고 있을지 모른다. 반대로, 이런 과도한 반응은 어떨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당장 회사에 가서 따지겠어. 그런 사람은 회사에도 피해야."
"말도 안 돼! 당장 시어머니께 전화해. 우리 딸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런 대사들은 마치 드라마에서나 들을 법하다. 이런 반응 다음에는 보통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하지만 성인으로서 이렇게 행동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식의 대응은 실수와 후회만 남길뿐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당신도 무척 당황스러울 것이다. 이는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에는 너무 부족하거나, 때로는 지나치게 과한 반응이기 때문이다.
아이와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긍정적인 대화법을 익히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침에 일어나 이러한 대화법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지각하지 못하는 실수를 줄일 수 있다. 나는 교사 시절, 아이들의 돌발 행동에 화가 날 때면 아침 일찍 출근해 10분 정도 유아교육개론의 원칙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곤 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냥 말하지 말고, 아이에게 한 템포 늦춰 이렇게 말해보는 것은 어떨까? "많이 속상했겠구나. 지금은 좀 괜찮아?" "어떻게 해결하고 싶어? 네 의견을 존중해. 내 생각을 듣고 싶다면 말해줄게." 아이와의 대화법과 어른의 대화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른도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계속 성장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말도 되새김질하고 말과 감정이 이어진다는 것을 좀 더 다듬어가야 한다.
이번 추석, 우리의 대화 방식을 돌아보고 개선해 보는 기회로 삼아보면 어떨까. 순간의 감정으로 인해 나쁜 기억이 남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의 대화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부정적인 대화 패턴을 배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들이 배우는 대화 방식은 그들이 인생을 살아가고 세상을 받아들이는 또다른 레이어가 될 테니 말이다.
1) 저서 <엄마를 위한 멘탈 수업>(2024.9.10 출간) Ⅱ. 균형: 아이라는 거울에 비치는 엄마 편에서 '상황을 나아지게 하는 대화법'을 부록으로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