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엔 상담 선생님과의 일정이 예약되어 있다. 어제도 시간 맞춰 상담센터로 향했다. 처음 상담실을 찾아갈 때의 어색함은 이미 사라졌다. 다행인 건 상담을 예약할 때만큼 마음의 울렁임도 모두 사라진 상태다. 한 편으론 상담을 더 받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마음은 다시 일상의 상태를 찾은 것 같긴 한데, 그럼에도 4-5회기의 만남은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고 했으니 앞으로도 몇 번은 더 만나볼 예정이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려나, 기대하며 자리에 앉았는데 시간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단 한순간도 대화에 공백이 생길 틈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처럼 50분의 상담시간에 나의 이야기를 꾹꾹 눌러 담았다.
우선 지난번 만남 이후 상태 변화는 어떤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현재는 마음을 아프게 한 그 상황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라는 답변에 선생님은 아주 좋다고 말씀하셨다. 상황이 종결된 건 아니기에 앞으로 또 어떤 형태로든 스트레스 반응이 올라올 수 있겠지만 현재는 거리를 유지하며 마음을 살피는 선택을 한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을 해주셨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유독 마음에 떠다니던 단어가 하나 있었다. '회피.' '혹여 나는 어려운 문제를 마주할 때 회피하는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곤 했다. 이번 상황에 함께 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나조차도 '나는 회피성향이 큰 사람이기에 깊이 개입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할 정도로 무의식 중에 나에게 '회피'라는 단어가 꽤 크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엄밀히 말하면 '회피'라기 보단 '평화', '조화'를 선호하는 사람이기에 갈등 상황이 발생하면 잘 해결되는 방향으로 생각을 하는 편이다. 그러나 해결 방법에는 늘 원만한 방법만 작동하는 것이 아닌 만큼 때론 부딪히고 싸울 필요도 있다는 걸 알지만 그 방향으로는 최선을 다해 가지 않으려 하는 게 나의 본능이다. 그런 점에서 만약 본능에 거스르는 상황으로 치닫는다면 상황을 놓아버리거나 피하는 선택을 했던 것 같다.
이번 일을 통해 알게 된 건, 꽤 오랜 시간 갈등을 마주하는 나의 본능적인 반응은 '수용'하거나 '회피'하는 것이었다. 부당하다고 느낄 때 나의 목소리를 내면서 상황에 대응해 보려는 시도는 거의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주변에서 '평화주의자'라고 말할 정도로 대부분 갈등 상황에서 나는 조화로움을 추구했다.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이번엔 전혀 다른 선택을 했으니 그것이 적잖이 나에겐 어려움으로 다가왔을 거라는 말에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동시에 긍정적인 측면은 지금껏 본능적으로 나를 방어하는 선택을 따랐다면 이제는 다른 목소리도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저 수용하고 따르는 것이 아닌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계기가 된 것 같다는 말에 이번 갈등이 나에겐 성장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도 생겼다.
갈등 상황을 즐겁고 달갑게 받아들일 사람이 누가 있겠냐만은, 삶은 무엇이든 거저 주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이 또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이번 일을 통해 상담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이 시간은 또 얼마나 나에게 깊어지도록 할까 생각하면 오히려 기대감이 커진다.
끝이 어떻든 지금의 갈등 상황도 결국 언젠간 끝이 날 일이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언젠간 이 일에 관련된 사람들의 면면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가물가물한 일이 돼버릴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어쩌면 나의 마음은 '회피'가 아닌 '흘려보냄'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일을 통해 배운 건 불어오는 광풍을 무조건 막아서기보다 빗겨서는 것도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내 인생에서 어떤 경우에도 '나' 자신이 가장 우선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기심이 아닌 무엇을 선택해도 괜찮다는 존중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를 지켜주고 보듬어줄 사람은 결국 나 혼자 뿐이라는 걸 기억하자. 다른 누구보다 나를 가장 잘 알아야 하고, 또 잘 아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다. 그러니 너무 애쓰고 버티기보단 때론 흘려보내는 방법을 선택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