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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평온한 날이 오긴 올까?

by 알레

'평온', '안온'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무심할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잔잔한 호수 같은 그런 하루가 무척 그리운 요즘이다. 정작 그런 날들이 몇 날 며칠 지속되면 지루해 몸을 배배 꼬울 테지만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잔잔한 그런 날에 머물고 싶다.


근데 돌이켜 보면 그런 날이 있었나 싶다. 몸과 마음이 모두 평온한 상태를 인식했던 날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 날이 있었다 할지라도 실상 그런 상태라고 인지하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 기억의 저장고에서 꺼내올 만한 내용을 좀처럼 찾지 못하겠다.


원래 사람은 지금 없는 것에 갈증을 느끼는 법이다. 여름이면 겨울을 바라고, 겨울이면 다시 여름을 갈망하는 것처럼 평온한 날엔 분주함을 찾고, 반대로 숨 쉴 틈 없이 분주한 날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퍼져있는 하루를 꿈꾼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내가 바라는 '평온'한 날은 과연 존재하는 걸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다른 무엇보다 성격상 그게 될까 싶다. 지난 4년간 이토록 몸이 편한 날들을 보내면서도 정작 마음은 늘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결국 내가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달린 건데 왜 그리 대부분의 날들을 안달복달하며 살았을까 후회가 밀려온다.


내 안에는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하는 갈증을 품고 사는 내가 존재한다. 녀석이 수시로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트리거가 되는 사건을 만나면 모습을 드러나내고 그때부터 나는 아프기 시작한다.


주로 통증이 시작되는 곳이 허리인데, 일전에 배치플라워 상담을 하는 지인으로부터 허리 통증은 '책임감'과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정확히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경험적으로는 전혀 무관하다고 보이지 않는다.


현재 나를 오래도록 짓누르는 책임감은 생계에 보탬이 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못난 마음은 "너는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야"라는 악마의 속삭임을 멈추지 않는다. 딱 이런 상황에서 등장하는 녀석이 내면에 동거 중인 제2의 나이고 그 녀석은 이때다 싶어 책임지지도 못할 또는 마음에서 전혀 원치 않는 무언가를 선뜻 행동하게 만든다. 결과는 뻔하다. 좋은 결과가 나올 리가 없다. 결과가 좋지 않으니 마음이 편치 않다.


늘 이런 패턴으로 삶이 이어져왔으니 평온한 날이 있으래야 있을 수 없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명상을 하나 싶다. 또 이래서 사람들이 산에 가거나, 멍하니 강물을 바라보는가 보다 싶다. 도저히 혼자만의 힘으론 평온함에 도달하기가 어려우니까.


아! 그러고 보니 일상에서 평온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되면 된다. 사람, 전자기기, 온갖 소음, 인위적인 불빛까지. 그러니까 내 말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 같다는 소리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그냥 덜 평온하고 말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나의 독자님들께서 모두 평온하길 빈다.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진 않을 것이기에 일상에서의 평온한 상태에 머무르기 위한 허들이 그리 높지 않다면 적어도 하루 중 한 꼭지라도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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